• 평화자치체 운동과 ‘민중의 집’ 운동
        2008년 04월 09일 0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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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과 민노당, 양당 간에 북한 인권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펼쳐졌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를 양당 간의 ‘선명성 경쟁’이나 ‘정쟁’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총선 국면 속에서의 문제제기는 일견 뭐든지 ‘정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번 논쟁은 오히려 때늦은 숙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진보신당의 북한 인권 관련 정책에는 아직 거친 부분이 있다. 좀더 신중했어야 할 부분도 있고,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보신당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때 이것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가 명확해져야 한다(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참세상> 3월31일자)”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총선국면 속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논쟁은 ‘북한과 남한 진보’의 관계설정에 대한 고민의 출발이라고 보았으면 한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진보신당이 전면에 내걸고 있는 진보의 재구성, 특히 ‘평화(운동)와 통일(운동)의 재구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에서의 기획과 실천의 필요성

    물론, 그 과정에서 진보신당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진보신당은 총선 이후까지를 바라보는 전망 속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평화(운동)와 통일(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지역에서의 ‘평화(운동)와 통일(운동)의 재구성’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2.3 민노당 당대회’에서 부결되었던 ‘심상정 비대위’의 평가혁신안에서도 평화통일전략의 혁신 과제 중 “지방(혹은 지역)정치 차원에서의 반핵, 평화, 군축 사업의 발굴과 확산”을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은 풀뿌리 평화역량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론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평화 통일운동이 풀뿌리 차원의 운동과 과제 수행능력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는 현실적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 해군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의 자건거 시위 (사진=현애자 의원 블로그)
     

    특히, 전국적 규모의 조직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정당의 경우 풀뿌리 수준에서 평화의 과제를 발굴하고 전국적으로 유통, 확산시키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기획이 전체 당의 기획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면, 진보정당의 ‘풀뿌리 평화 이슈’에 대한 대응능력을 기르고 진보정당 지역활동가들을 평화운동의 주체로 육성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평화의 과제와 평화운동을 전부 책임지고 수행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필자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으로서 평화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 특히 지역에서의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과 실천에 있다는 점이다.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

    ‘평화주의’라는 것은 평화교육과 평화문화와 같은 평화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힘’을 얻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과 실천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국제정치학자이며 저명한 평화운동가인 사카모토 요시카즈는 일본의 전후 평화(시민)운동에 대해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필자) 전후의 시민운동은 운동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다했지만 … 시민이 스스로 시민사회를 만들고 그 제도를 만들어 그 위에 시민의 정부를 만든다는 의식이 결여되는 경향이 있다.

    … 평화주의의 이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그 이념을 한 걸음이라도 현실화시키기 위해 정책과 제도를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 사카모토 요시카즈, 『상대화의 시대』, 소화:1997, pp. 175~176

    일본의 전후 평화(시민)운동에 대한 평가이지만 한국에도 적용되는 평가라고 보여진다.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에는 국방개혁과 군(軍)의 구조조정, 국방감시와 군에 대한 문민통제, 해외파병에 대한 제도적 통제와 군축조치 등 다양하다.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 최근 시민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고 제한적이나마 성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 출마한 피우진 후보와 같은 군 출신 전문가들이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평화주의의 제도적 실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에서의 평화 혹은 평화와 관련된 이슈영역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물론, 지역사회의 경우에도 미군기지 문제 등과 관련해 이슈파이팅을 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진보정당의 활동은 다른 사회단체들과 함께 하는 ‘공동 투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 현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보신당이 지역에서의 평화운동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또한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과 관련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평화주의를 지역에서부터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실현시켜 가는 것이다.

    찾아보면, 지역 차원에서 ‘평화주의의 제도적 구상’을 실천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도의 ‘(비핵)평화조례 제정’운동과 광주의 ‘평화조례 제정’ 운동이다. 이것은 해외의 ‘비핵평화자치체 운동’을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실현해보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제주도의 경우, 필자가 활동해온 NGO의 제안도 있었지만 ‘제주해군기지 건설 추진’이라는 이슈가 계기가 되었다. 지역사회단체들의 참여와 민노당 현애자 의원의 관심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역의 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 시민사회의 평화조례(안)을 제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06년에는 광주YMCA는 ‘대량살상무기 배치 금지’ 등을 포함하는 광주시 평화조례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패트리어트 미사일부대는 2006년 경북 왜관으로 옮겨갔다)’ 와 ‘2006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 개최라는 모순된 정책에 대한 광주 지역사회의 대응이었다.

    ‘We Can’ 프로젝트와 ‘민중의 집’ 설립 운동

    사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진보신당도 지역차원에서 평화의 재구성을 실천할 만한 소중한 재료들을 발굴하고, 계발해 냈다. 총선 이후 평화의 재구성 과정에서 그 토대가 될 수 있는 자산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표공약으로 제시한 We Can 프로젝트와 진보신당 마포지역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민중의 집’ 설립운동이다.

    우선, ‘We Can’ 프로젝트는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대안적인 복합프로젝트로 제출된 공약이다. 지역에서 평화의 과제와 관련해 특히, 주목해 볼 부분은 생태 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 문제를 이유로 반환 미군부대를 상업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억제하고, 시민을 위한 공공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재정적 법률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 부분은 군사시설의 민간부문으로의 ‘전환(conversion)’과 그와 같은 전환의 과정이 지역적 차원에서 중요한 평화 과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것은 미군기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군사기지, 군사시설, 군부대 부지 등이 모두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군사기지, 군부대 부지, 군사시설 등의 이전, 축소, 폐쇄 문제가 지역적 현안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대구의 K2비행장 이전 문제나 전주의 향토사단(35사단) 이전 문제 등은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적 이슈가 되고 있다.

    ‘We Can’ 프로젝트의 발상에 따른다면, 해당 지역의 ‘숙원사업’이 평화 복지 생태 이슈와도 접목될 수 있다. 특히, 지역의 군사기지, 군부대 부지, 군사시설의 이전, 축소, 폐쇄 문제는 국방개혁과 군의 구조조정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다시 말해서, 지역적 차원에서의 실천이 진보신당이 ‘국방 군축 분야’의 전면에 내걸고 있는 ‘평화와 복지의 선순환’을 실현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군부대 이전 과정에 대한 시민적 참여와 이전 부지의 친생태적 활용이라는 문제까지 감안한다면 훨씬 풍부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보신당의 서울 마포지역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민중의 집’ 사업이다. 당의 공약으로는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민중의 집’ 운동은 진보신당의 지역조직들이 지역정치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민중의 집’ 설립 운동의 의미는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들이 저렴한 값에 사무실 입주가 가능하다는 ‘경제적 필요’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지역의 복지 생태 평화 노동 등 다양한 영역의 운동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더 나아가, 개방 연계 운영 모델을 잘 계발한다면 문화와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지역 문화거점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민중의 집’과의 연계망을 구축할 수 있다면, 국경을 뛰어넘는 ‘지역과 지역’ 차원의 국제연대 거점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민중의 집’은 무정부주의자 단체, 진보단체, 시민단체들이 함께 입주해 공동의 공간을 활용하면서, 지역정치활동의 거점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까페나 교육장, 문화공간 등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단순히 ‘빨갱이들(?)의 복덕방’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공간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경우도, ‘민중의 집’이라고 명명하지는 않지만 지역에 그와 비슷한 개념의 공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도쿄 중심부의 분쿄구에 있는 ‘평화와 노동 센터’에는 전국노동조합총연합(全勞聯, 젠로오렌)과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原水協, 겐스이쿄오), 전국적인 피폭자단체 등 굵직굵직한 단체들이 입주해 공동의 활동 공간을 이루고 있다.

    평화는 ‘남북의 창’과 ‘W’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신당의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감안한다면, ‘민중의 집’ 설립운동은 지역정치의 차원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일궈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총선 이후 실질적 창당의 과정은 2010년 지방선거, 아니 2012년 총선거, 어쩌면 더 멀리 내다보고 이루어져야 할 과정일 것이다. 긴급한 창당 일정과 총선 대응으로 인해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총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We Can’ 프로젝트와 ‘민중의 집’과 같은 진보신당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제주도의 평화조례 제정 운동과 같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 평화운동의 사례들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가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와 같은 지역에서의 실천 과정과 경험을 통해 진보신당 내에 ‘평화(운동)를 이끌어갈 주체들’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의 평화 ‘주체 형성’이 지역조직들에 ‘~위원회’, ‘~국’ 만들기로 환원될 필요는 없다.

    평화는 생태와도 함께 할 수 있으며, 젠더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권과도 뗄 수 없는 관계다. 따라서, 진보신당의 ‘평화(운동) 주체’는 녹색 생태의 관점에서 평화의 문제를 접근할 수 있고, 북한 문제를 전공하는 학생당원이 될 수도 있으며, 노동운동을 하는 당원이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당원이 평화(운동)의 진보신당 지역정치활동에 있어 평화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평화의 과제와 실천이 ‘남북의 창’과 ‘W’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지역에서부터 평화를 위한 실천은 가능하다.

    진보의 평화와 통일의 재구성을 위해

    ‘평화(운동)와 통일(운동)의 재구성’은 기존의 ‘반미통일운동’과의 분별정립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종북주의 논쟁’을 다시 재론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비판할 때에도,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에도 일관된 평화지향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또한 그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과 설득력 있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대중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대안과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평화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맥락에서, 평화(운동)와 통일(운동)의 재구성을 제기하는 것은 진보신당이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진보신당 스스로 ‘평화’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정당으로서 온전히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신당의 문제의식과 실천이 우리 사회의 ‘평화(운동)와 통일(운동) 재구성’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역에서의 평화과제와 평화운동에서 진보신당의 역할 찾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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