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가건물을 부수자"
        2008년 04월 08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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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9일 이후를 준비하자.  18대 총선이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참 막바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총선 결과에 무관하게 총선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총선은 지난 대선의 연장전으로서의 성격과 새로운 경기로서의 성격을 모두 가진 선거였다.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민심이 급격히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선 대선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는 점에서는 대선의 연장전이었지만, 보수정치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공천 파문과 탈당 사태, 진보정치의 분화 과정이 그대로 투영된 선거였다는 점에서는 대선전과는 분명히 구분된 정치지형 속에 치러진 선거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보다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할 점은 진보진영 내에서 녹색정치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녹색정치(초록정치)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던 초록정치연대는 물론이고, 진보신당 내 녹색그룹의 적극적인 활동, 공약 발표 및 지지 선언, 한국사회당의 ‘초록좌파’ 선언 등은 이후 녹색정치의 저변을 넓혀가는 데 중요한 매개가 될 것이다.

    그동안 녹색정치는 생태주의, 환경운동을 중심으로만 고민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나마도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 선언’으로 인해 환경운동진영 전체로도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이들이 녹색정치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이를 현실정치에서 구현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이때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3월 몇몇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녹색정치의 저변을 넓히고자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든 것은 단지 선거공약이나 선언 수준이 아니라 이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3월 12일 집담회를 계기로 약 50여 명의 활동가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4월 9일 총선이 끝난 이후에는 보다 광범위한 의견 교환과 진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정당을 위한 집담회 (사진=초록정치연대)
     

    급박한 선거준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던 이들, 조금은 더 지켜보고 싶었던 이들, 그동안 고민을 많이 진전하지 못했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와 생각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창조를 위한 파괴, 그리고 재창조

    그러나 시간만 되었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우리 앞에는 그동안 몇몇 이들이 ‘가건물’이라고 칭해 왔던 진보신당이 버티고 있다. 이 ‘가건물’은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만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지만, 상황논리는 무엇보다 무섭기 때문이다.

    굳이 새로 건물을 짓지 말고 가건물을 적당히 보수하여 손쉽게 건물을 짓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상황논리는 총선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논리이며, 이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논리이기도 하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할 이들은 민주노동당, 한국사회당을 탈당한 이들, 아직 탈당하지 않았지만 탈당을 고민하고 있은 이들, 한국사회당과 초록정치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이며, 이들이 서로 뒤엉켜 앞으로 자신의 행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진보신당 깃발 아래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그렇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새로운 진보정당의 깃발 아래 모을 것인가? 그리고 그 새로운 진보정당의 주요 가치로 녹색정치를 만들 것인가?

    이것의 승패는 철저하게 기존의 ‘가건물’을 제대로 잘 부수고 지금보다 탄탄한 기초를 만드는 것에 있을 것이다. ‘가건물’을 잘 부수는 것은 18대 총선을 제대로 평가하고 나가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급하게 준비한 선거이다 보니 생긴 다양한 불협화음들, 대표적으로 명망가 스타를 중심으로 한 선거 마케팅, 통합민주당과의 단일화 논의과정에서의 이견 등은 시간을 갖고 충분히 평가되고 이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원칙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명망가 중심의 정치에 대한 비판은 총선 결과에 따라 이후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소수의 명망성에 기대지 않고 힘든 현실정치의 어려움과 취약한 풀뿌리 조직의 상황이 있기에 그 속에서 진보정치의 원칙을 지키려는 시도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명망성에 기대어서는 살아갈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거창한 말을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소수의 명망성에 기대어 살아가는 정당의 말로는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문제는 ‘잘 부수기’에도 있지만, ‘잘 만들기’에도 있는 것이다. 취약한 조직 상황에서는 언제나 ‘명망성 있는 인사’의 발언을 요청하고, 조직이 탄탄한 정책역량을 갖추지 못할 땐 ‘뛰어난 이론가’의 역할이 필요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공당으로서의 진보정당이 아니라, 사당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진보정당의 기초를 잘 만들 것인가는 지금부터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새로운 강령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의 정당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당의 실험을 할 것인가?

    민주노동당, 한국사회당, 초록정치연대 등 기존의 실험들로부터 배울 것은 무엇이고 버릴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개의 물음표로 시작되지만, 하나하나의 물음표가 마침표를 찍어갈 때 기초공사와 골조공사는 완성되어갈 것이다.

    중국집 찌라시 수준 벗어나야

    녹색정치를 열망하는 이들의 결집이 필요하다. ‘가건물 부수기’와 ‘기초공사와 새집짓기’를 하는데 하나 더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종종 지역에서 반대집회를 하기 위해 유인물이나 스티커를 만든 것을 보면, 중국집 찌라시나 스티커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내용은 분명히 반대 유인물인데 형식은 영락없는 중국집 찌라시이다. 이는 광고물을 인쇄하는 곳에서 유인물이나 스티커를 만들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 많이 보아온 모양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는 사람의 습성이다.

    새로운 집짓기에는 새로운 디자이너와 작업공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며 뒷짐지고 있던 시민단체 활동가, 학계에서 열심히 이 문제를 고민했던 이들, 생태주의를 구현할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들, 녹색정치를 고민했던 많은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은 중국집 찌라시 같은 유인물 꼴이 날 것이다.

    내용은 녹색정치인데 무언가 잘못 끼워진 단추 같은 정당의 모습 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지만 이것으로만은 부족하다. 새 부대를 설계하고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또다시 방관하거나 밖에서 비판만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진보정당운동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황사로 인해 간혹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완연한 봄이다. 따스한 햇살과 생기로운 나무들의 모습들이 마음을 설래게 하는 봄이다. 이러한 봄. 새로운 진보신당을 만들기 위해 ‘가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한 여정에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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