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텔로 피서를 떠난 이유
        2008년 04월 07일 04: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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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연인이 음침한 여인숙을 들어가 비밀스런 사랑을 나누던 시절도 있었다. 모텔의 변화를 보면 이젠 그런 이미지는 전혀 없는 것 같다.

    후배 연인들은 시험기간이면 모텔을 잡아서 공부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고 말한다. 모텔에서 인터넷도 되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비디오도 시청할 수 있으니 젊은 연인들이 즐기기에는 좋은 공간인 것도 사실이다.

    러브호텔이 교육기관 옆에 있는 경우에 학부모들은 그것을 문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대학 옆의 모텔들은 대학의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젊은 대학생 연인들은 리포트를 쓰고 시험공부를 하며 자유롭게 섹스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대학가 모텔이 이러한 자유로운 성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같다.

       
    ▲ 젊은이들의 놀이 공간이 된 모텔
     

    프랑스 68년 혁명이 낭테르 대학 여자기숙사의 전면개방에서 시작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성의 질서는 젊은 세대의 해방된 욕망에 부적절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이미 사회 곳곳은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68혁명과 여자 기숙사

    여관에서 장기투숙하면서 동거를 시작한 젊은 대학생 연인의 방에 놀러간 적이 있다. 대학가에 위치한 그들의 공간은 술 먹은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서 문제긴 하지만, 참 신혼방 같이 꾸며져 있었다. 당장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젊은 커플에게 가구와 부대시설이 잘 차려진 이 공간은 참 좋은 보금자리가 아닐 수 없다.

    러브호텔은 중년외도의 온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러브호텔들이 수요가 없지 않고서는 그렇게 많이 생겨날 턱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불륜을 부추겼다는 혐의를 두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때는 물침대 완비랄지 비밀보장이랄지 모텔이 러브호텔로 불리며 불륜의 공간으로 인식된 적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전쟁과 폭력의 시설보다 사랑과 섹스의 공간인 러브호텔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랑과 욕망, 쾌락을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잘못이란 말인가?

    더운 여름 출장 나가서 모텔에 들러서 나는 에어컨을 틀어 놓고 시원하게 비디오를 대여해서 영화를 보고, 야식을 시켜 먹으며,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받은 느낌은 모텔이 향유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풍부한 향유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모텔은 고급화되어 있고, 가격도 저렴하고 여러 가지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여관의 문화는 어찌 보면 쪽방과 고시원이라는 불안정 주거 문화와 같았었다. 뜨내기들의 여관의 이미지는 불륜남녀의 러브호텔이라는 이미지로 바뀌었으며, 다시 자동차를 운전하고 와서 쉬는 모텔이라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불안정 주거 공간에서 다양한 욕망의 문화로

    기존의 여관문화는 불안정하고, 문화적으로 아웃사이더였으며, 매우 음침한 욕망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모텔의 문화는 매우 청결하며, 문화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건강한 욕망의 공간의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하고 있다.

    하숙집을 빼내고 모텔에 장기 투숙했던 민석이라는 나의 친구는 이러한 향유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하숙생활의 불편함을 느끼고 모텔로 주거지를 옮겼다. 그런데 민석이는 묘한 공포심을 느꼈다고 한다.

    방에 누워 있으면 자신의 모텔방에서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특히 축축이 젖어 곰팡이 슨 곳에 대한 그의 의혹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 모텔방에 들어간 이후부터 온몸이 아파왔다고 한다. 어느 날이었나 잠에 어렴풋이 들어 있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어떤 팔이 그를 향해 쑤욱 다가왔다고 한다.

    민석이는 가위에 눌려서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점점 다가오는 팔을 바라만 보았다고 한다. 사실 민석이가 느꼈던 공포는 모텔의 공간이 익명의 사람들이 출입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것에 익숙하지 못해서 느끼는 공포였을 것이다.

    물론 다음날 민석이는 방을 옮겼는데 그 모텔 주인은 그 방에 얽힌 비밀을 그때서야 솔직히 고백하였다. 사실 장기투숙을 받았던 이유가 다름 아닌 그 방에 수맥이 지나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맥에 대한 것은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⅝ 우리의 몸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또한 모텔은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부동산 매매업을 하던 한 친구도 모텔방을 집처럼 지내는 친구 중에 하나다. 그 친구는 거의 모텔방에서 사업상 만남을 갖고 거래를 하는 등 개인 사무실로 모텔을 쓴다.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러지 않고서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나 기동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사무실을 운영할 형편이 아닌 그로서는 모텔이 그의 사업에 귀중한 사무실인 셈이다.

    또한 모텔은 차-밥-술-비디오방-모텔이라는 스케줄을 갖고 있던 기존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를 단축시켰다. 차와 밥, 술, DVD방, 게임방 등을 모텔에서 모두 해결하니까 아무래도 비용 면에서 저렴한 것이 모텔의 열풍을 만든 이유다.

    예를 들어 내 친구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DVD방에서 1만원으로 한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면 DVD가 구비된 모텔에서는 5~6만원으로 수많은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모텔을 잡아 DVD를 감상한다고 한다.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친구들과 모이면 어떤 모텔이 좋더라고 얘기를 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친구들도 이젠 모텔 앞에서 서성거리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연인들의 공간이자 새로운 욕망의 영역인 모텔이 우리에게 부끄러운 영역이랄지 불륜의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전에는 없던 습관이 있다. 모텔에 가면 그곳의 시설과 분위기를 명함 뒤에 적어 놓는 것이다. ‘수원의 ○○모텔, 안양의 ○○모텔 그런 곳이 주말에 가면 좋더라’ 그런 식으로 적어두며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려준다.

    그리고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모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모텔에 대해 좋은 점에 대해서 칭찬의 글을 적는다. 그리고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할 일이 있으면 모텔방을 잡아서 작업을 한다. 2~3명이서 프로젝트를 해야 할 경우에 인터넷이 되며, 조용하고, 저렴하며, 장기간 있을 수 있는 곳이 모텔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모텔은 이제야 러브호텔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공간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모텔은 욕망이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에 더 친근한 영역으로 사고되는지도 모르겠다. 모텔에서 펼치는 다양한 이벤트들은 다양한 욕망의 실험 속에서 모텔이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에 갔던 모텔에서는 생일파티를 할 수 있게끔 파티에 대한 모든 준비와 시설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모텔은 사무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무기기에 대한 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모텔은 다변화된 욕망의 매뉴얼을 읽어나가고 시대의 욕망의 코드를 읽어나가는 것이다. 지금 모텔은 다양한 욕망의 코드를 읽고 새로운 욕망을 개발하여 새로운 욕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 새로운 문화가 우리의 욕망의 코드를 어떻게 혁신시킬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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