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뛰어 비례후보 한분이라도 더..."
        2008년 04월 06일 10: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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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총선에서 전국 최고의 관심 지역으로 급부상한 서울 동작을. 이계안 통합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이곳은 지난 대선 때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고 그 대항마로 한나라당에서 정몽준 최고위원이 출마하면서 주민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양당의 자존심 싸움에 심판자가 됐다.

    4년간 지역을 책임질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 보이지 않는 뉴타운과 특목고 유치 등 날림공약이 쏟아지고 있는 이 지역에, 양강으로 불리는 두 후보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안겨주고 있다.

    양자 대결로 굳어진 동작을 지역에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는 역시 정몽준 한나라당 후보로 조선일보와 SBS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는 58.7%를 차지해 27%에 그친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 등 스스로 만든 악재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정몽준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 거물들의 틈바구니에 도전장을 낸 진보신당의 김종철 후보는 같은 여론조사에서 1.9%를 차지하며 3위에 올랐다. 3위라고는 하지만 양자 구도에 완전히 눌린 모양새다. 열악한 환경에 여론에까지 소외당하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김 후보를 첫 걸음에서 오후 유세까지 <레디앙>이 동행 취재했다.

    뉴타운에 홀린 동작을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한 중앙대학교 의료원 앞에서 7시 김 후보의 첫 유세가 시작되었다. 피곤한 얼굴, 만성적으로 쉬어있는 목소리에서 그 동안의 고생이 묻어났지만 "피곤하냐"는 재미없는 질문에는 경쾌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답한다. 

       
    ▲흑석동 골목골목에는 ‘부동산’과 ‘뉴타운 대책위원회’가 들어서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산악회들이 집결장소로 이용하는 중앙대학교 병원 앞은 금세 5~6대 가량의 버스들이 모여들었다. 도착하자마다 숨돌릴  여유도 없이 운동원과 함께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진보신당 김종철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김종철입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인사를 나누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봤지만 종종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진보신당은 역시 ‘노회찬’과 ‘심상정’. 한 등산객은 “심상정, 노회찬은 꼭 다시 국회를 가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며 김 후보에게 한탄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직접 찾아가 악수를 나누기는 스타 정치인인 정동영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7시 40분경 이 지역에 도착한 정 후보 역시 김 후보보단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긴 했지만 시민들이 먼저다가와 악수하는 대통령 후보 때와 같진 않았다.

    등산객들이 어느 정도 떠난 8시, 이번에 김 후보의 목적지는 조기축구회다. 김 후보와 따로 떨어진 뒤 흑석동 뉴타운 지구에 올라 선거 공보를 보고 있는 이주호씨 부부를 마주쳤다. “김종철 후보가 제일 잘생긴 것 같아요”라고 입을 뗀 이주호(53)씨,

    이 씨는 “김 후보의 정책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 동작구엔 뉴타운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몽준 후보가 힘도 있고 여권 실세와도 가까워 그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씨의 부인(익명, 48)도 “흑석동에 한 빌라에 사는데 뉴타운이 완성되면 집값이 많이 뛰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뉴타운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 얘기하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좁은 골목에 가득 차 있는 부동산들, 여기저기 제각각 생겨나고 있는 뉴타운 추진위원회는 이 지역이 ‘뉴타운’이란 이름에 얼마나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단면이다.

    교육에 고민하는 동작을

       
    ▲조기축구 회원들과 악수하며 지지를 당부하는 김 후보, 고개를 워낙 많이 숙여 얼굴 정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사진=정상근 기자)
     

    간신히 합류한 김 후보와 함께 사당동에 위치한 한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김 후보는 시민 한 명 한 명을 만나기 시작했다.

    성당의 신도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어떤 노인은 김 후보의 명함을 받고 “진보가 뭐여?”라고 했고 어떤 노인은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해서 좋아”라고 격려했다.

    바로 앞에는 한나라당의 선거운동원들과 통합민주당의 선거운동원들이 함께 지지를 당부했다. 하지만 후보가 직접 고개를 숙이고 악수를 하며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진정성 깃든 모습에 많은 노인들이 격려하고 응원했다.

    이어 1시간여 동안 식사, 휴식시간을 거치고 12시 30분부터 유세가 재개되었다. 이번엔 사당4동 사거리 앞에서 유세였다.

    김 후보는 처음 연단에 올라 연설을 했지만 오가는 사람이 있을 뿐 서있는 사람은 선거운동원들을 제외하곤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 후보는 목이 쉰 소리로 두 정 후보의 뉴타운 공약의 허점, 교육공약의 거짓성, 기만성을 조목조목 비판했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 어떤 지지자는 차 문 밖으로 주먹을 내밀어 환호와 함께 휘둘렀다. 김 후보는 “이런 분위기라며 당선 될 것 같은데요”라며 여유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말했다.

    뒤이어 대림아파트 등 대형 아파트 단지가 몰려있는 사당 3동 주민센터 앞에서 다시 한 번 유세를 가졌다. 대형 아파트라고 하지만 상당부분 서민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이곳은 학생들이 많아 교육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지역이다.

    두 정 후보는 서로 특목고, 자율형 사립고를 유치하겠다고 큰 소리를 외치고 있다. 학군을 없애 이 지역 학생들도 서초구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썰렁한’ 분위기의 유세현장, 김종철 후보는 아랑곳 없이 열정적인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하지만 학부모들의 고민은 자녀를 가장 가까운데 보내면서도 그 학교가 우수한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비롯된다. 김 후보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학군을 없애 아이들을 서초구로 보낸다는 것은 동작의 교육, 동작의 학부모들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우리 지역에 있는 동작고등학교와 같은 학교들에 교육 예산을 주어 우수학교로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박수 소리가 터졌다. 유세 내용에 반응이 온 것이다. 일요일 낮 시끄러운 선거운동에 주민들은 짜증내기 마련이지만 어느새 김 후보의 연설에 베란다 문을 열어본 몇 몇 아파트 주민들이 보내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 소리였다. 

    “정말 가슴 속에 와닿는 말이었어요, 필요한 말만 하시더라구요, 우리 아이도 동작고등학교를 다녀서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파트 유세 도중 김 후보의 연설을 베란다에서 들었다는 한 학부모의 말이다.

    서민의 마을 동작을

    분위기 좋았던 아파트 유세를 뒤로하고 사당 2동 신동아, 극동아파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유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앵커 출신으로 말 잘하는 정동영 후보, 말은 잘 못해도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스타들을 대거 동작으로 끌어들인 정몽준 후보와는 달리 김 후보는 순수한 자원봉사 운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느덧 3시가 가까워져 오는 시간, 힘들고 지쳐버린 김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지만 웃음은 잃지 않았다. 진실성 있는 유세에 많은 주민들은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고 진보신당을 응원하는 주민들도 꽤 많았다. 기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인기였다. 당장 표로 답을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는 진보의 뿌리를 보는 듯했다.

    김 후보는 “이 지역에 서민들이 많아서 진보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많아요”라고 말했다. 그런 동작을에 3조원이 넘는 재력가나 대통령 후보를 지낸 원내 제1당 후보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개발욕을 살살 건드리며 여론을 몰아가는 두 후보의 노련함에 다른 후보들의 설자리는 별로 없었다.

    당선이 어려운 상황, 김 후보를 이렇게 열심히 뛰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주민분들을 만나보면 정책도 좋고, 제가 나쁘게 살아왔던 것도 아니고 호의적이세요, 하지만 워낙 강 대 강 구도라는 게 아쉽죠. 하지만 더, 더 열심히 뛰어서 진보신당을 알리고 비례대표 한 분이라도 더 당선 시키는 것이 남은 3일 선거운동 기간의 목표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진보정당 지역구 후보들이 자신의 당선보다는 자신이 소속해 있는 진보정당, 나아가서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희생적 전투’를 힘겹게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울컥해지는 무엇이 올라온다.

       
    ▲김혜경 진보신당 고문과 재래시장을 돌고 있는 김종철 후보, 김 후보의 인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사진=정상근 기자)
     

    오후 4시 김혜경 고문이 합류하며 김 후보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다시 힘을 낸 김 후보가 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동행취재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도 저녁 늦게까지, 그리고 남은 3일여 동안도 새벽부터 저녁늦게까지 쉰 목소리로 김 후보는 동작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주민들이 몰라주더라도 언젠가는 그의 진심이 다가올 것이라 그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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