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초 권해줄 친절한 어른이 필요해"
        2008년 04월 04일 04:5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2005년 문화예술인 수 백 명이 대마초 비범죄화 선언을 했을 때 나는 늦었지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대마초를 경험하고 온 터라 대마초가 중독성이 있다는 둥, 환각 작용을 하는 나쁜 마약이라는 둥의 인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식되고 있던 차에 문화예술인들이 수면 위로 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라고 하면 나쁜 마약이라는 생각부터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학계의 공식적인 보고서가 담배나 술이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강하며 건강을 해치는 약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에 나는 주목한다.

    우리 사회의 욕망에는 분명 약물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술과 담배라는 약물에 손대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약물인가라는 문제이다. 대마초는 많은 흑색선전과는 달리 중독성이 없으며 약효도 카페인 정도의 수준이고,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대마초에 대한 비범죄화 논의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마초에 대한 억압이 파시스트의 통제수단이었다는 점이다. 독재자는 청바지, 락, 통기타, 신중현, 대마초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해 대대적으로 억압을 가했다. 그 중 대마초에 대한 통제는 청년문화를 매도하기 딱 좋은 수단이었다. 청년들은 마약에 취해서 일탈을 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소년들은 본드를 마시고 …

    두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는 청소년기에 본드와 부탄가스를 흡입했던 친구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성장한 이후에도 그의 몸과 마음은 많이 망가진 상황이었다.

    달동네에 재개발 소식이 들리고, 포크레인이 집을 허물기 전 자신의 텅 빈 집에서 소년들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본드와 부탄가스를 나눠 마셨다고 한다. 그 순간 소년들은 우주의 특공대로 돌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눈에서는 광선을 쏘아 포크레인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 소년들은 본드나 부탄가스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죽음의 마약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가 하면 대마초가 죽음의 마약에 맞서는 삶의 마약이며 죽음의 마약에 대한 유혹을 조절하고 대항할 수 있는 약물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기 위해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죽음의 마약에 대한 유혹 앞에 놓여있는데 감시와 처벌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중독성이 적으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고, 잠시 동안 망각의 기쁨을 주는 대마초와 같은 삶의 마약이 그 처방은 아니겠는가? 자신의 집을 잃은 소년들은 세상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었을 것이다. 정든 집을 허무는 포크레인, 가족들을 공격하는 용역깡패들. 이쯤 되면 마약을 권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아이들의 약물에 대한 욕망을 금기라는 쉬운 단어로 통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욕망의 미시정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죽음의 마약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삶의 마약을 권하는 새로운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얘기가 아주 우습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약에 맞선 마약이라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대마초는 혼자서도 충분히 조절가능하고, 중독성이 담배보다 훨씬 미약한 매우 유리한 약물이다. 아마 그 버림받은 소년들에게는 대마초를 친절히 권해줄 어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삶의 마약과 죽음의 마약을 구별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유럽 공동체에서는 약물들이 사용되었고, 그들은 약물에 대한 실험에서 삶의 마약과 죽음의 마약을 구별하였다고 한다.

    삶의 마약과 죽음의 마약

    그들은 다른 마약류와는 달리 대마초를 삶의 마약, 활력의 약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삶에 도입했다. 공동체에 활력을 주고, 몸과 마음에 해롭지 않으며, 중독성이 없다면 그것은 건강한 삶의 욕망의 산물임에 분명하다. 네덜란드라는 국가에서는 죽음의 마약에 대한 사회적 조절수단으로 대마초를 사회적으로 허용하고, 심지어 경찰관에게 대마초 파는 곳을 물어보면 친절히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암스테르담의 대마 가게. 관광안내책자에서 이런 업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연방법정에서 시한부 삶을 살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대마초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법안이 논의되었던 적이 있다. 이 법정에서 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이 대마초 없이 살 수 없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욕망에 대하여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권력집단들은 그들을 마약집단으로 매도하였다.

    나는 대마초 비범죄화 선언이 매우 진지하며, 현명한 문화예술인의 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약물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버리고, 솔직하게 담배와 술을 즐기는 사람처럼 대마초를 흡입하는 사람들로 보아 달라, 라는 진실 되고 용감한 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다. 그 만큼 지금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살아있고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대마초를 통해 청년문화를 탄압할 여지를 보았던 파시스트 집단이 남겨둔 오래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왔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그보다 해롭지 않은 대마초를 금기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마초를 금지시켰던 군사독재자나 파시스트의 과거 행각이 국가주의의 정통성을 보장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대마초에 대한 욕망은 아주 건강한 욕망이며, 죽음의 마약에 맞서는 욕망의 교두보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사회가 이 약물에 대한 욕망을 수용하고 개발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