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개입 때만 인권이 '문제'가 되나
    2008년 04월 04일 08: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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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티베트,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국

2006년부터 광화문에서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한 평화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2006년에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아이들을 위하여, 2007년에는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리고 올해에는 티베트의 평화를 위한 촛불이 켜지고 있다.

한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왔다. 이는 각 시기마다 이 이슈들에 대한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관심을 이끌어 낸 탓이기도 하지만 해외여행의 대중화와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로 한국사회가 나름 국제화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티베트의 친구들’ 모임이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유혈 폭렵진압을 규탄하고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각 이슈들에 대한 한국운동의 반응은 차이를 보여 왔다. 팔레스타인, 버마, 티베트 중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나라는 어디일까? 당연히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이라크전 파병으로 인하여 우리와 직접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였지만 오랫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저지른 일들은 한국 운동에 깊은 공감과 분노를 이끌어내었다.

버마의 민주화 시위는 많은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80년 광주를 연상하게 하는 버마의 투쟁은 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다시 한국사회에 제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한 버마의 민주화 시위는 한국 진보진영 내부에서 논란으로 떠올랐다.

중국과 북한, 쿠바 및 베네수엘라에 미국이 가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 공세와 버마 상황이 겹치면서 미 제국주의의 음모에 한국운동이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티베트 시위와 관련해서도 이러한 문제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지난번 버마 시위와 비교해 보았을 때 다행히 ‘미얀마 반제정권을 지켜내자’라는 황당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홍보대사인 임순례 감독이 적극적으로 티베트 문제에 결합하는 것과 달리 국내 주요한 진보진영의 하나인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동당에서 티베트 관련한 공식입장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번 티베트 사태가 촉발되자 티베트를 여행했던 한국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섰다. 그들에게 CIA 음모설이나 티베트 불교의 봉건성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만나 함께 정을 나누었던 그곳의 친구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뿐이었다.

그들에게 티베트 사태가 미 제국주의의 내정 간섭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세상은 단순한 것이 아니지만 음모론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설사 자기 친구가 좀 못된 짓을 했더라도 너무 심한 처벌을 받으면 욱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더구나 버마와 티베트인들은 총조차 들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사람부터 좀 살리자고 호소하는데 침묵하는 건 살리기 싫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호소의 대상이 평소에 인권을 위해 억압에 맞서왔던 대상이라면 더욱 배신감을 클 것이다.

미국이 지원하든 중국이 지원하든 간에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면 그것을 멈추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것이 인권이다.

우리의 운동은 언제부턴가 모든 일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왔다. 고통 받는 어떤 누군가는 당장 그 억압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데, 그것을 관전하는 우리는 고통을 주는 주체가 미국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혹은 그 반대로 평소에 국내인권 문제에 별 관심도 없던 사람들도 북한 인권에 거품을 물고 옹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리면 아프고 가족이 죽으면 슬프다. 자신이 연대하고 있는 운동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결국 모든 사람은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결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티베트에 연대해야하는 이유도 오지랖이 넓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의 억압에 연대하지 않고 다른 억압에 맞서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연대로 진보의 지평을 넓히자

진보진영이 거리를 두고 있는 동안 북한 인권문제와 중국 내 여러 인권문제는 보수진영의 몫이 되어버렸다. 한국기업과 선교사들이 세계를 누비고 있는 동안 한국의 운동은 한반도에만 머무르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공세에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저항을 하고 있는 한국의 운동은 전선을 더욱 확장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억압받고 있는 민중들에 먼저 가슴을 열고 다가가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당장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조건을 달아 손을 내미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그들의 아픔과 고통부터 나누고 나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게 순서다.

아무리 가난한 한국의 활동가 상근비도 제3세계 민중들에게는 큰돈이 된지 오래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고 영어를 못해서 다른 나라 일들까지 신경 쓰기 힘들다는 것은 핑계이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때 반짝 연대하는 척이라도 제발 했으면 좋겠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낙인 제3세계 민중들에게 한국단체의 연대 성명 하나가 큰 힘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서구의 연대가 제국주의적이라면 한국은 민중적인 방식으로 연대하면 되지 않는가?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연대를 통해 우리의 운동도 풍부해질 수 있는 사안이 너무나 많다.

UN의 안보리에서부터 작은 티베트의 시골마을에까지 인권이라는 담론을 두고 곳곳에서 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를 동원하여 현란한 수사들을 동원하고 있지만 결국 인권을 지키는 것은 작은 일상적 실천이다.

티베트 문제를 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밝혀질 것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티베트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인권 문제도 그랬으면 좋겠다. 거리 두고 침묵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먼저 접근하고 그 안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옳다.

정말 우리가 티베트 민중들과 연대하는 것은 그리도 힘든 일일까? 시간을 내서 티베트를 위한 촛불하나 켜는데도 정치적 고려가 앞서야만 하는 것일까? ‘인권’이라는 문제를 두고 오늘 티베트는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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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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