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진보 과제 ‘칼퇴근 사회’
    2008년 04월 02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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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린,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노무현 정부 내내 구호처럼 되뇌던 ‘2만 달러’인데, 막상 2만 달러 사회에 살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다. 도대체 2만 달러가 됐다고 해서 달라진 게 뭔지 실감이 안 나기 때문이다. 사는 게 더 신나기는커녕 우릴 피곤하게 하는 일만 더 늘어나는 것만 같다.

사실 목표에 미달하거나 거기까지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은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다. 그것은 어쩜 오히려 생의 의욕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덧 목표를 달성해놓고 보니 그게 아무런 실익도, 긍지도 안겨주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누구든 환멸 혹은 좌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딱 그러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누군가는 또 ‘3만 달러’를, ‘4만 달러’를 이야기한다. 그럼 그 때는, 국가 통계에 지금보다 1만 달러, 2만 달러가 더 기재되면, 이 공허함이 다시 채워질까? 그 기대로 우린 다시 우리의 남은 몇십 년을 아낌없이 ‘성장’의 용광로에 던져 넣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되는 걸까?

낡은 진보가 하지 못했던 것 – 제대로 된 선택지의 제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이른바 진보 세력, 진보 운동의 몫이 무엇인지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반공 분단 체제 때문에 진보 좌파가 오랫동안 시민권조차 갖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87년 이후 진보 운동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4년 전 지난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라는 틀로 제도 정치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수 우파가 ‘7% 성장, 국민소득 2만불’을 이야기하고 다시 그 속편으로 ‘747’을 내걸며 살 길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부르짖을 때 진보 세력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했던가?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 보수 우파가 이야기하는 그 방식으로는 ‘7% 성장’은 혹세무민에 불과하다는 점은 분명히 짚었다. 하지만 기업과 국가 회계 장부의 숫자놀음에 갇힌 동시대인의 삶 자체를 정면으로 비판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랬다. 정책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이념과 노선을 다툰 적은 있었지만, 정작 ‘삶’을, 우리의 삶의 방향과 그 방식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과연 어떠한 삶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바람직한 삶인가? 잔업에, 특근에, 야간근무에, 연장노동으로 종이 위의 성장률 수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조국 근대화’의, 아니 이제는 ‘경쟁력 향상’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가족을, 자신을 그리고 남아 있는 삶을 돌아볼 여유는 지닌 그런 삶인가? 한국의 진보 세력은 이런 물음을 던지지 못했다.

필자 역시 진보정당운동에 참여해온 한 사람으로서 뼈아프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왜 그랬을까? 혹시 우리는 이런 물음을 던지길 두려워했던 게 아닐까? 야근이라도 해서 임금 소득을 한 푼이라도 더 늘리지 않으면 복지 제로, 입시 지옥의 사회에서 버텨 낼 수 없는 노동자들(이 점에서는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별로 차이가 없다)에게 차마 이런 물음을 꺼내기 힘들었던 것일까?

여기서 이런 의문까지도 든다. 혹시 지금껏 이 나라의 이른바 진보 세력은 외국 교과서를 따라 읊조리며 ‘개혁’이니 ‘혁명’이니 떠들기는 했지만, 사실은 보수 우파가 만들어놓은 ‘경쟁’과 ‘성장’의 쳇바퀴로부터 스스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이 쳇바퀴 안에서 남보다 한 걸음 더 내딛으려고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은 바퀴 굴리는 노역에 힘만 보태주는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운동은, 진보정당은 무엇을 이야기했던가? 지금의 일자리를 지키고, 임금을 더 받고, 그러니까 남보다 한 걸음 더 내딛는 그 일을 도와주겠다고 당장의 달콤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것은 아닌가?

그 결과가 곧, ‘낡은’ 진보라는 소리를 듣게 된 진보 세력의 총체적 위기다. 모두 다, 진보 운동이 마땅히 해야 했던 일, 즉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잘못된 선택지(성장이냐, 죽음이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지(죽음과 다를 바 없는 삶이냐, 인간다운 삶이냐)를 제시하는 일을 하지 않은 탓이다.

진보 좌파가 진보 좌파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용도 폐기의 위기에 놓인 것도 결코 뜻밖의 재앙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연 2,0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로 꿈꾸는 진보신당의 ‘진보’

진보신당은 ‘진보의 재구성’을 내걸고 등장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진보의 내용으로 거듭나겠다며 민노당을 박차고 나와 광야에서 부르짖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외치는가? 과연 ‘진보의 재구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어온다. 이 물음에 대한 한 답변이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제출한 사회연대전략, 그 중에서도 연 2,000시간으로의 노동시간 상한제에 담겨 있다.

노동시간 상한제는 법 형식적으로만 보면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공약일지 모른다. 현행 근로기준법도 주당 연장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조항(제53조 ‘연장 근로의 제한’)을 담고 있다. 연간 노동시간을 2,000시간으로 제한하자는 것은 이 규정을 좀 더 강화하여 적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뜯어보면 여기에는 심각한 물음이 담겨 있다. 기본급은 적고 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현재의 임금 체계로는 잔업 특근 축소는 곧 임금 총액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행 임금 체계를 바꾸는 노동운동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입시 전쟁에 종전을 선언하고 복지 혜택은 늘려서 임금 소득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공약한 것처럼 일정 기간 임금 손실분을 정부 지원으로 보전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연장 노동 축소가 잔업 특근을 통한 수당 확보 경쟁과 상충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확실히, 우선순위를 따지는 문제다. 수당이냐, 시간이냐,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 당장에 현금 소득을 좀 더 늘리는 게 먼저인가, 아니면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이 먼저인가?

각 개인에게는 이것이 도덕 이전에 기호의 문제일 수 있지만, 노동운동에게는, 진보정당에게는 그렇지 않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먼저여야 보다 바람직한 사회인지, 분명히 답하고 설득해야 한다.

진보신당은 ‘노동시간 단축’ 쪽을 확실하게 선택한 셈이다. 이것은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도 있다. 당장 진보정당의 1차 지지층인 노동자들 자신으로부터 배척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은 노동시간 상한제를 힘주어 이야기할 것이다.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논쟁이라도 하겠다. 그리고 이 과정을 노동운동의 방향을 다시 잡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보신당의 출범 이유인 ‘진보의 재구성’이 뜻하는 바다. 또한 진보신당과 낡은 진보 사이의 차이다.

우리의 소원은 ‘칼퇴근 사회’ 

진보신당의 정책 제안 게시판에 필명 ‘징검다리’인 한 네티즌은 “칼퇴근법”이 필요하다는 정책 제안을 올렸다. 야근을 금지하고 노동자의 저녁 시간을 가족에게 돌려주자는 야근금지법을 이 분은 이렇게 이름 붙였다.

이 기발한 표현법을 차용한다면,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사회는 ‘칼퇴근 사회’다. 공장에서든, 사무실에서든 모두 다 칼같이 퇴근하는 사회다. 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조와 휴식의 시간을 칼같이 찾아먹는 세상이다. ‘사회주의’니 ‘생태주의’니 어려운 말 하기 전에 2008년 지금 한국에서 자칭 진보 세력,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은 ‘칼퇴근 사회 건설’이다.

‘칼퇴근 사회 구현’의 역사적 사명에서 본다면, “미안하다, 이명박. ‘747’은 안 되겠다. 우린 좀 더 놀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다. 그렇게 손에 손 모아 확실하게 놀다 보면, 20대를 위한 새 일자리도 늘고 영어에 몰입해볼 여유도 생기고 대운하도 막을 수 있다.

이게 진보신당의 신념이고 또한 진보신당이 말하는 ‘진보’다. 진보신당은 앞으로 퇴근 시간만은 칼같이 지키겠다는 이런 목소리를 늘리는 일을 필생의 과제로 삼겠다고 다짐해본다.

다만 이에 더해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기왕에 이 새 진보의 깃발에 동의하는 분들은 4월 9일 전부터 진보신당의 손을 확실히 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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