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착오 짝퉁 진보와 대립각 세워라”
        2008년 04월 01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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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92,389명, 48.7%의 지지와 기대 속에서 얼마 전 이명박 시대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국민성공시대’라는 허울에 감춰진, 예고된 고통과 상실감과 분노의 쓴 맛을 우리는 생각보다 좀 더 일찍 맛보고 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가중되는 생활고와 경제적 삶의 피폐함, 가진 자들만의 돈 잔치 속에 중병에 신음하는 사회 현실, 비정규직 파업현장에 ‘묻지마’ 공권력 투입과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고통 받는 대학생들 집회장에 체포조 투입 시사 등 잘못된 질서를 바꾸려는 도전과 항의에 대한 국가권력의 상식 이하의 대응…. 이명박 통치 5년이 가져올 절망의 전주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4월 9일 18대 총선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선거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이번 총선 결과는 이명박 시대 5년의 정치, 경제, 사회의 방향을 가늠하는 첫 번째 척도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형 신자유주의 기업국가’를 정착시키려는, 그 과정에서 빈곤의 악순환과 사회 양극화의 심화를 필연적으로 가져올 이명박 시대, 유권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명박 시대의 야만적 광폭함에 누가 누구와 함께 어떻게 맞설 것인가?

    난파선이 된 민주노동당과 그 족쇄에 묶인 민주노총

       
     
     

    일각에서 예견하는 ‘한나라당 의석 200석’이 가져올 파괴력과 두려움 속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진보의 대응이며, 특히 진보의 재구성과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을 주창한 진보신당의 움직임이다.

    진보임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대중적 파산선고를 받은, 종북-패권주의와 문화적 보수주의로 무장한 시대착오적인 진보의 집결지인 민주노동당은 논외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과정과 2월 3일 임시당대회의 결과는 반성과 성찰이 없는, 따라서 작은 혁신조차 불가능한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웅변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신뢰의 붕괴와 소통의 부재와 대중적 지지의 철회. 그것은 한 배를 타고 서로 다른 방향을 나아갈 때 만나게 되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손님들이 떠난 배는 난파선이 되었으며, 유령선이 되기 전에 내려야 했다. 잘못된 길을 가는 난파선을 방향타를 바꾸지 않은 채 단결과 화합으로 수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의 회피이자 오히려 문제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역사적 유사 사례를 해방정국 당시 이승만이 내건 무조건 대동단결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분열은 죽음이라는 명분 아래 난파선에 몸을 실은 민주노총 현 지도부의 결단 아닌 ‘절딴’, 그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중단된 반발과 침묵의 지속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보의 핵심 거처여야 할 조직 노동 부문이 변화를 거부하고 진보를 포기한 민주노동당의 족쇄에 묶인 채 ‘진보신당 죽이기’에 힘을 쏟는, 차마 웃지 못 할 소극(笑劇)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인지도와의 전쟁을 벌이는 진보신당

    지난 3월 2일 진보신당은 새로운 10년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신뢰의 붕괴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숨 막힘 속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굶어죽거나 질식사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와서 얼어 죽겠다는 각오로 나온 사람들이 만든 진보신당.

    걸음마 단계에도 채 진입하지 못한 그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조금씩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노원병과 덕양갑에서는 승리와 선전의 소식도 들린다.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보신당 그 자체로 볼 때 총선을 힘 있게 맞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유권자들은 노회찬과 심상정은 아는데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다. 민주노동당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그래도 아는데, 그 과정에서 탈당 사태가 속출하고 분당을 통해 진보신당이 창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물론 시간의 절대적 부족을 유력한 한 근거로 댈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을 탓하기에는 진보신당이 안고 가야 할 역사적 짐은 너무나 무겁다.

    ‘득표 결과는 긴 과정의 마지막 세리모니’라고들 말한다. 정당은 선거철에 두 가지 상징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간다.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그 하나의 상징이라면, 다른 하나의 상징은 정책과 공약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정당의 기본 노선과 지향 이념이다. 이 두 상징을 유권자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도록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진보신당의 인지도, 호감도, 지지도, 득표율은 높아질 수 있다.

    진보의 딜레마, 즉 불확실한 미래를 설계하는 가운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면서, 희망과 신뢰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새로운 신생 진보정당의 경우 이 두 상징은 기성 정당들과는 달리 특히 더 부각된다. ‘긴 과정’을 불가피하게 생략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대중적 각인의 시간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노회찬과 심상정을 진보신당 후보가 아니라 여전히 민주노동당 후보로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민주노동당과의 예각적 선긋기에 진보신당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지역 곳곳에서 진보신당의 후보들이 악전고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것의 자연스런 귀결일지도 모른다.

    진보신당, 낡은 진보, 짝퉁 진보와 대립선을 그어라

    비록 시간이 얼마 없지만 인지도 제고와 그것을 통한 호감도 지지도의 상승을 위해서는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며, 여기에 두 후보의 대중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야 하겠다.

    민주노동당과의 경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 짝퉁 진보’ 대 ‘미래지향적 참 진보’의 명확한 분별 정립이 필요하며, 이런 점에서 얼마 전 진보신당 주요 활동가의 인터뷰 내용에 등장한 ‘진보 양당’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정책과 공약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별화, 진보신당의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진보신당이 내건 공약 가운데는 이전 민주노동당의 것과 유사한 내용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노동당이라는 낡은 틀 속에서, 종북-패권주의와 문화적 보수주의에 사로잡힌 주류의 내부 반발로 인해 그것들이 힘 있게 추진되지도 못했고 결국 의미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진보신당이 발표한 22대 총선 공약에는 만약 제대로 알려지기만 한다면 대중들의 호감과 지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참신한 것들도 많다. 그것은 2008년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와 위험, 긴장과 갈등에 대한 긴급 처방과 함께, 18대 국회가 4년간 실현할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대안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에서는 제대로 할 수 없던 것들, 새롭게 만들어낸 좋은 정책과 공약들을 진보신당을 통해 실천하고 실현하겠다는 것을 더 강력하게 내세워야 한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에서 중단된 것을 새롭게 부활시킨 3대 사회연대전략(생활임금, 노동시간 상한제,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그 중에서도 사회연대 생활임금으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160만원) 이상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은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새로운 연대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또한 88만원 세대 사회초년생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경제적 압박 없이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월 60만원 수준의 ‘힘내라! 실업수당’ 도입, 1가구 1주택 법제화 및 국회의원과 장관부터 1가구 1주택 실현, 한반도 대운하 반대와 ‘WE CaN'(복지 중심 지역발전계획) 프로그램, 영어부터 입시폐지 및 국공립대학부터 대학 평준화 등등은 오늘을 힘들게 사는 보통사람들의 공감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책 공약이다.

    한편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비판적 논평(“남북의 긴장완화와 대화협력을 강조해도 모자를 판에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북한의 선택은 지지받기 힘들다”), 한반도 인권 향상을 위한 남북 인권 대화 추진, 개성공단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남북 노동협약 추진,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 북한 인권 개선 공약, 녹색평화외교 추진 등은 민주노동당과는 달리 평화적 남북관계와 외교관계 정착의 핵심을 잘 짚고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민족지상주의-통일지상주의의 부산물이 아니라, 분단과 전쟁과 항상적인 군사적 긴장이 남긴 상처와 상흔들을 평화의 기치 아래 실질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깊은 고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덕양갑, 노원병이 아니어도 노회찬, 심상정에게 한 표를 던질 수 있다

    이러한 공약, 정책들과 후보들의 면면은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를 잘 드러내주며, 또 진보신당이 어떤 성격과 색깔을 지향하고 어떤 꿈을 꾸는 정당인지 잘 보여준다.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의 공간, 보통사람들의 희망과 잠재적 지지의 공간이 어렵기는 하지만 진보신당 앞에 열려 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통합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민생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 창조한국당이나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의 이해와 열정을 조직할 수 있는 바로 그 가능성을 노회찬과 심상정과 진보신당에게서 보았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학계와 법조계, 문화예술계 등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신당의 바람개비가 되기를 자처한 바람돌이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노원에서, 덕양에서, 여의도에서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하는 바람개비들이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바람이 비례후보와 지역 후보들을 통해 많은 바람개비들을 돌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노회찬, 심상정은 국회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난 4년간 이들이 보여준 성실하고 활기찬 의정 활동의 결과다. 그러나 사람들은 덕양갑, 노원병이 아니어도 심상정, 노회찬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두 지역 외에 32개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희망의 전사들에 대한 투표와 기호 13번 진보신당에 대한 정당투표야말로 제2, 제3의 심상정, 노회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아가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내고 그들의 아픔을 해결할 디딤돌이기도 하다. 진보신당이 정당투표에서 3.8% 이상의 득표를 하면, 이랜드 투쟁의 상징인 진보신당 비례후보 2번 이남신을 국회로 보낼 수 있고 또 이랜드 투쟁의 불씨를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미약하더라도, 나는 진보신당이 가는 길이 역사의 물줄기와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철저한 자기성찰과 깊은 사색 속에 새로운 혁신의 길로 나선 진보신당, 열과 성으로 지난 8년간 가꾸어온 보금자리를 떠나며 새로운 10년의 항해를 시작한 진보신당의 길은 진보의 재구성과 민주주의의 재성찰을 위한 화살이 되고,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을 향한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총선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후회가 없어야 한다. 후회 없는 18대 총선의 과정과 결과는 2년 뒤, 4년 뒤, 그리고 10년 뒤 진보신당이 사회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며 우뚝 설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함께 나누는 희망과 신뢰의 몸짓 속에서 평등 생태 평화 연대라는 사색의 바람개비가 어우러져 힘차게 돌아가는, 새롭게 다가오는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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