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고 사태가 보여준 세 가지
    2008년 03월 31일 11:51 오전

Print Friendly

   
▲ 진성고 학생들이 만든 UCC 장면
 

우리가 사는 세상엔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아주 특이하고 놀라운 사건인 경우, 아니면 사회구조의 본질이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인 경우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강력범죄 중에 유독 지강헌 사건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이 사건은 단지 사회면 사건 기사가 아닌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대의 상징이 됐다.

최근 기숙형 스파르타 입시학원인지 학교인지 구분하기 힘든 진성고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학교의 학생들이 인터넷에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그것이 엄청난 반향을 낳았다.

단지 특이한 사건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큰 사태로 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성고에는 현재 한국 교육의 문제를 상징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자유로운 학교의 문제

1990년대 이래로 사교육비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입시시장에 자유로운 요소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자유롭게’ 논술, 특기자 등 복잡한 전형을 했다. 고등학교 부문엔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학교들이 생겼다. 특목고나 자사고다.

그 결과 사교육비가 늘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자율성을 대폭 신장시키겠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진성고는 ‘자율학교’다. 1990년대 이래의 흐름과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이번 진성고 사태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외쳤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학교는 이렇게 대답한 셈이다. “먼저 공부나 하세요.”

학생들의 주장은 틀렸고, 학교의 정책이 맞았다. 한국에서 학생은 사람이 아니고, 한국에서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구상에 그 유래를 찾기 힘든 ‘학벌사회’라는 이상한 구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중등학교는 교육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학생은 인간다운 교육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 형성을 위한 전사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선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이 가장 이상적인 학교 형태다.

학교에게 자율성을 주면 학교는 점점 더 기숙학원에 가까워지고, 학생은 점점 더 일체의 인간성이 사라진 ‘입시 병정’에 가까워진다. 이런 현실에서 1990년대 이래 한국 교육정책은 자율성을 확장해왔고 새 정부는 자율성을 결정적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진성고 사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선구적으로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유로운 수요자의 문제

이명박 정부는 수요자들의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 이른바 수요자 중심주의, 교육에서의 소비자 주권 확립이다. 소비자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상품을 평가하고 선택하는 사람이다. 고교평준화는 소비자로부터 학교 선택권을 몰수한 것이었다. 새 정부는 이것을 다시 돌려주려 한다.

고교 선택권은 이미 어느 정도 복원이 됐었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통해서다. 새 정부의 목표는 전면적 복원이다. 진성고가 있는 광명시는 아예 비평준화 지역이다. 즉 새 정부가 학교 선택권을 100% 복원하는 데 성공하면 광명시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진성고는 광명시의 명문고등학교다. 학벌사회에서 명문학교의 기준은 얼마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잘 하느냐가 아니라 학력평가석차, 일류대, 일류학과 진학자 숫자로 정해진다. 때문에 학생인권사태는 시장에서 인정받는 명문학교의 형성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육 수요자(소비자)들은 일류학벌 형성에 유리한 학교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자들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면 수요자들은 시장에서 입시학원과 유사한 학교를 선택할 것이고, 그런 선택에 의해 입시학원형 학교들은 높은 시장평가로 명문브랜드 가치를 얻게 된다.

학력평가석차, 일류대, 일류학과 진학과 학교 브랜드 가치가 교환되는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꿈꾸는 세상에서 자유로운 공급자인 자율형 학교와 자유로운 소비자, 즉 학부모 사이의 거래에 거칠 것은 없다. 진성고가 그 현장을 미리 보여줬다.

사립학교 문제까지

사립학교의 부정비리전횡 문제 해결은 한국사회의 숙원이었다. 진성고 사태엔 사립학교인 진성고 운영의 투명성 문제도 걸려 있다. 이렇게 때문에도 더욱 시대모순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새 정권은 각 학교에 입시와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교경영 자체에 기업경영에 준하는 자율성을 주려 한다. 아니, 기업경영 그 이상이다. 한나라당은 사학이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한다. 사유재산인 기업에조차도 사외이사가 들어가고 회계투명성이 강제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사립학교에 이런 감시장치를 하면 ‘빨갱이’세상이 온다고 주장해왔다. 사립학교법을 대표적인 좌파 법안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태다.

첫째, 학교의 자유로운 교육활동에 의한 강압적인 입시교육의 문제. 둘째, 그것에 환호하며 명문학교라고 떠받드는 소비자의 문제. 셋째, 사립재단의 부정비리 족벌경영, 이 세 가지가 겹쳤다. 세 개를 모두 더하면 ‘시장이 선호하는 자유로운 사립학교’가 된다.

즉, ‘자사고’다. 이명박 정부의 목표는 ‘자사고’ 대폭 확대다. 자사고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진성고 사태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문제도 예측되고 있다. 자사고 연간 학비는 일단 수백만 원부터 시작해, 자율성이 계속 유지되는 한, 곧 수천만 원선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가면 ‘진성고 문제 +엄청난 학비’의 성격을 가진 학교 사태가 터져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결말을 향해 이명박 교육은 나아가고 있다. 상식적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럴까? 답을 아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란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