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고 명랑한 진보정당 만들겠다”
        2008년 03월 31일 0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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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비례대표 김상하 변호사와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의 대담은 주로 ‘어떤 당이어야 하는가?’로 모아졌다. 준비된 주제는 ‘법률’에 관계된 것이었지만, 80년대 학생운동의 ‘동문’이자, 삶의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로 산 ‘동지’였던 두 사람은 당 운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대담을 일관했다.

    김상하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가보안법 ‘올인’을 “균형 감각을 잃은 몰입”이라 비판했고, 조국 교수는 “남쪽의 진보 사상이 김일성주의일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단언했다.

    두 사람은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배경을 다수결로 모든 것을 독점하는 조직형식주의에서 찾고, “단일한 사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리고, 소수에 대한 배려를 통해 반대 경우의 가능성도 살려나가야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런 취지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젊은 세대의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데로 나갔고, 김 후보는 “밝고 명랑한 문화를 가진 당을 만들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 후보는 “적어도 일본 수준인 2:1까지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며 추후 정치제도 개혁에 노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래는 지난 28일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 서울대 법대 교수연구실에서 이루어진 김상하, 조국 대담의 발언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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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이 조국 교수, 오른쪽이 김상하 변호사
     

    조국(이하 ‘조’) – 나와 김상하 후보는 법대 1년 선후배 사이로 Fides(신뢰라는 라틴어, 서울대 법대 학회지. 편집자 주)라는 써클에서 같이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김 후보는 학생운동의 맹장이었고, ‘왕뚝심’으로 불렸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근래 들어 하는 일이 달라진 이후에도 서로 마음의 교류는 있었다고 본다. 이번에 후보로 나섰다니 또 다시 놀랍다.

    김상하(이하 ‘김’) – 당대표들이 비례대표를 예비내각 성격으로 구성하려 했기 때문에 20~30명의 변호사 당원 중 한 명은 나와야 했다. 여러분이 고사하시는 바람에 결국 저한테까지 ‘폭탄’이 돌아왔다. 법조계 지지 세력을 모으는 데 일조하고자 마지막 번호로 달라 그랬다. 어중간한 번호보다는 꼴찌가 더 눈에 띌 것 같기도 하고(웃음).

    – 진보신당에 있는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바도 있겠지만, 자신의 정치활동을 총괄하는 의미도 있지 않나?

    – 그렇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인천에서 출마했던 것의 연장일 수도 있고, 분당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 올바른 진보의 대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사양하는 것보다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조계 조직화 위해, 새 진보 세우기 위해 출마

    – 나 스스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지만, 민노당의 ‘국가보안법 올인론’이나 ‘2중대론’처럼 국가보안법 철폐가 진보운동의 최상의 슬로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노당이 그것에 매몰되었을 때 그보다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 활동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 자신 국가보안법으로 두 차례나 수형 생활을 한 피해자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지켜지고 비정규직 문제 등이 제기된 상황이라면 어느 한 쪽에 몰입하기보다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하는데, 당시에는 너무 몰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정권 초기가 아니라 중기였기 때문에 더 이상 몰아붙이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한 한계도 있었다.

    냉전과 독재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은 청산해야 하지만, 그런 과제의 크기와 중요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 옛날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민주노동당은 PD가 만들고 전국연합이 들어오면서 민노당 내부 세력 구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친주사적, 민족주의적 진보정당과 대중적 기반은 취약하지만 반주사적인 진보신당으로 갈라졌다.

    주사파에 대한 진보신당의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남쪽의 진보 사상이 김일성주의일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또, 진보정당이란 것과 진보적 노동운동이 구별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민주노총과는 당연히 결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결합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정치적 외피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노동조합운동과는 별개 논리, 별개 문법의 진보정당을 결집시키고 조직화하는 데 실패한 것 아닌가?

    옛 민주노동당이 정당정치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 생각해본다. 전민항쟁이나 연합전선론 같은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단병호 의원은 민노당을 탈당하면서도 진보신당에는 합류치 않았다. 진보신당이 단 의원의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나? 대중적 기반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단병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나?

    – 상당히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진보정당운동의 기반이 잡혔는데, 자주파는 조금 뒤늦게 필요성을 느끼고 참여했다. 그분들이 들어오면서 당세가 확장되고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당비대납이라거나 위장전입 같이 부르주아 정치인과 차이 없는 조직전술을 구사하면서 다수파가 됐다. 40%의 소수 의견을 배려하거나 합리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배제했다. 당을 형식화한 것이다.

    정치사상적으로도 옛 NLPDR론이 현재의 남한에 현실 적합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정치노선이 빈약하다 보니 통일운동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당대회에 참석해, 일심회 제명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법률가로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 저도 당대회를 봤는데, 자주파 분들은 국가보안법 피해자이면 노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옳지 않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는 것과 당규를 위반했다는 것을 혼동하지 않았나 싶다.

    – 당규를 위반하면서 당간부 뒷조사하고 보고했다는 것은 당을 오도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탈당했어야 했다. 스스로도 안 하고, 최고위원들도 조치 취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공안세력 아니냐는 반박을 가했다. 결국 분당까지 치닫게 한 연합파가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정확하게는 분당을 강제한 것이다.

    – 일심회를 옹호하는 분들의 멘탈리티, 그러나 공개하지 않는 생각은 북의 공작원이면 통일 사업하는 것 아니냐는 것은 아닌지? 확실히 다른 사회구성체인 두 나라를 자신의 의지로 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51%로 모든 것을 다 먹는 표결 만능주의로는 정당이 깨질 수밖에 없다. 51%를 가진 다수파가 소수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는 진보신당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 브라질노동자당을 보면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낳더라. 우선 단일한 사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려야 한다. 진리가 51%로 확보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소수에 대한 배려를 통해 반대 경우의 가능성도 살려나가는 것에서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 아니겠냐. 진보신당에서는 정파들이 상호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

    진리는 51%가 아니다

    – 민노당 쪽에서는 ‘진보적 인텔리 정당’이라는 비판을 하던데,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

    – 진보신당은 인텔리 정당이 아니다. 장애인이 공동대표를 한다든지 하는 예도 있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대학을 졸업했다 할지라도 20여 년을 노동자로 활동해왔고. 금속노조, 공공노조, 사무금융노조에서는 광범위한 지지세를 얻고 있고, 울산 인천 등의 주요 공단 지역에서도 큰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 민노당 모두를 주사파라 딱지 붙이기는 곤란하다. 주사파는 아니면서도 헌신적인 분들이 많이 있는데, 진보신당은 왜 그분들 마음을 얻지 못했느냐?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

    – 맞다. 소박한 마음으로 통일과 노동해방을 바라는 평당원들이 많다. 이분들도 진보신당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잘 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어떻게 되는가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과는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 김 후보가 달고 있는 진보신당의 뱃지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민노당이 포괄하지 못한 진보세력이 많이 있다. 예전에 민노당 간부가 “동성애는 자본주의의 퇴폐적 산물”이라 말했던데, 진보신당은 성소수자, 생태 같은 세력의 포괄에 대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예전에 기본계급만 강조하고 그 외 사회적 약자들을 소홀히 한 것을 인정한다. 진보정당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계급 이외의 각계각층 약자를 보듬는 운동이고, 그들에게 당활동 참여의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열린정당으로 활동하겠다.

    당에 참여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걸맞는 역할을 배치하지 못했다. 이런 점도 고쳐나가야 한다. 당이 사회여론을 주도할 수 있게 지식인들을 포괄해야 한다.

    단병호 의원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노동에 대의원을 할당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노동분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대상화, 소외됐었다. 본격적인 창당은 총선 후에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쿨’하고 현대적인 문화 가져야

    – 진보란 계급적 가치를 국민적 가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8년 한국 현대사회에 맞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 일제시대의 민족해방문화처럼 지금에 맞는 문화. 학번 따지고 서열 따지는 전근대적 운동권 문화로는 안 된다. 요즘 말로 ‘쿨’해야 한다.

    – 운동가의 엄숙주의를 가지고는 사람들과 결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다운 청년정신과 패기가 있어야 한다. 원리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듯도 하다.

    지금 진보정당은 40대의 지지는 받지만, 젊은 층 지지는 못 받는다. 이 세대에게 진솔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진보신당 창당대회 때 보니 락 공연도 하고 나름 노력하더라. 문화적 계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 학교에서 19세~23세 사람들만 만나는데, 그들은 생각이 다르다.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이더라도 젊은 세대 노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자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두 진보정당은 여기에 접근 못하고 있다. 두 당에는 ‘빨간 머리띠 시위’ 그런 모습만 있다.

    김 후보, 춤도 배워 보시라. 노래방에서 어떤 노래 부르나? 옛날 노래만 부르지 않나. 우리들도 나훈아, 남진 노래 부르는 윗세대를 ‘꼰대’라 놀리지 않았던가. 개인주의로만 비추어지는 젊은 세대들은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대학 나와봐야 취직도 안 된다.

    – 독일에 여행갔을 때, 락페스티벌을 하는 것을 보니 축제 중에 모여 토론도 하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소주 먹는 것밖에 없지 않나. 독일처럼 지역에서 다양한 만남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밝고 명랑한 문화를 가진 당을 만들겠다.

    – 노래든 꽃꽂이든 지역에서 소모임과 생활정치를 퍼뜨려야 한다. 진보정당은 중앙정치에는 강한데, 생활정치에는 약하다. 비주얼에 강한 젊은 세대들은 딱 보면 안다. “쟤는 재미 없어”, 그런다. 386 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 만약 국회에 입성한다면 어떤 분야에 힘쓰려 하는가?

    비례의석, 일본 수준은 돼야

    – 지금 조망하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는 고용불안이라 본다. 대학교 졸업해도 정규직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을 고치기 위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에 최우선하려 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더 구체화해야 하고. 최근 이야기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와 등록금 문제에도 열심히 움직이겠다.

    특히 정치제도 자체에 신경 쓰고 싶다. 국회의원이 지역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도록 하고, 국회에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반영하려면 비례의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독일처럼 1:1이 바람직하지만, 적어도 일본 수준인 2:1까지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

    – 2007년에 보건의료노조는 임금인상분의 1/3을 비정규직에게 돌렸다. 비정규직보다는 강자인 정규직 노조들이 법 이전에라도 이런 모범을 따라야 한다. 진보신당에서도 이런 사례를 권해야 한다.

    – 비슷한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단위 기업 안에서 비정규직을 우선하거나, 사회적 기금을 만들거나 해야 한다.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안에서 더 풍요로운 사람이 덜 풍요로운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끝>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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