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전략 성공을 기원하며
    2008년 03월 28일 10:19 오전

Print Friendly

   
 
 

진보신당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시작으로 사회연대전략을 주창했다. 1년 전 민주노동당에서 이 사업을 담당했던 간부로서 기존 사업 경험을 기초로 몇 가지를 전한다.

진보운동과 사회연대

사회연대는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상호의존성을 증대하는 사회운동적 활동을 의미한다. 사회연대가 절실한 이유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평등하지 못한 까닭이다. 동일한 계급 내부에도 격차가 존재하고, 다양한 계급, 집단 사이에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사회연대를 향한 활동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다. 고전 사회학은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드러난 사회분화(엄격히는 자본주의적 계급 분화)를 통합하는 개념으로 ‘연대’를 제안했고,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표방하거나 유토피아 공동체사회의 사회원리를 이야기할 때 ‘연대’를 강조했다.

이후 뒤르껭, 베버 등이 중심이 된 고전 사회학은 주류 사회과학의 토대를 이룬 구조기능주의 패러다임으로 이어지고 맑스주의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양하는 비판적 혹은 급진적 사회과학의 원조가 되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 모두 ‘연대’를 자신의 기원으로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시민사회가 구조화되면서 사회연대는 진보주의 운동의 가치로 자리잡아갔다. 보수주의가 주창하는 ‘연대’란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 안정’ 이상을 넘지 못하기에 역동성도 사라지고 지배체제의 위기관리를 위한 시혜 정도에 머무르게 되었다.

반면 진보운동에게 사회연대는 자신의 진보적 이상사회가 운영되는 가치이면서, 노동자, 농민 등 서민계급의 단결을 강화하는 활동전략이기도 했다. 서구 사회운동의 역사를 보더라도 ‘연대’는 진보주의의 핵심에 있었으며, 동구권에서 시작된 민주화운동도 ‘연대’(폴란드의 연대노조)를 이름으로 내걸었다.

민주노동당의 사회연대전략 좌절 경험 

한국 진보운동에서도 사회연대는 중요한 가치로 존중되어 왔다. ‘연대투쟁’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연대는 노동자, 진보진영의 단결을 지칭하는 ‘실천적’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지만, 진보운동의 이상적 가치를 담은 개념으로도 공유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진보운동에서 사회연대가 논란거리가 되거나 심지어 금기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2006년 하반기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 반 년 가량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서 전개된 ‘사회연대전략’ 공방이 낳은 결과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노동운동이 선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활동 양식을 고심하고 있었고, 대표적 실험으로 ‘저소득계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을 제안했다. 이 사업은 국민연금 개정 공방, 심각한 연금 사각지대 등으로 연금 문제가 뜨거웠던 당시 정세에 맞추어,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정규직 노동자의 실천을 부각시키고 진보운동의 가치로 사회연대를 공론화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사업은 644만 명의 저소득계층에게 5년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기 위하여 17조원을 조성하는 대형 사업이었는데, 정규직 노동자가 약 4조원을 부담하고, 정부에게 6조, 자본에게 7조원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시까지 진보운동에서 노동자가 먼저 무엇을 내놓는 사업은 없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사회연대전략’이라고 불렸던 이 사업은 초기부터 거센 내부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권영길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이를 선언하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찾아가며 사업 홍보대사 역을 자임하였고, 문성현 당대표는 공중파가 모두 생중계하는 신년 연설회에서 오직 이 사업만을 원포인트로 다루며 승부수를 던졌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당내에서 기존 NL, PD 정파 구도와 무관하게 찬반 논란이 전개되었다. 사업의 당사자인 민주노총에서도 때마침 벌어진 위원장 선거에서 이 사업 찬반이 뜨거운 선거 쟁점으로 등장했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내용을 일부 수정하며 사업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민주노총 선거 이후 형성된 반대 분위기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였다.

진보신당을 통해 다시 등장한 사회연대전략, 반갑다

최근 ‘진보의 재구성’을 내걸고 새로 살림을 차린 진보신당이 사회연대전략을 다시 제기하고 나섰다. 진보운동이 선도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을 극복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 진보운동에서 엉뚱하게 내팽겨 쳐진 사회연대 의제를 진보의 핵심 가치로 재정립하겠다는 포부이다.

이를 위하여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이 실패했던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복지소득연대) 뿐만 아니라,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사업(임금소득연대), 노동시간 상한제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노동시간/일자리연대) 등도 함께 내걸었다.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보험료지원사업이 좌절되는 과정을 아프게 지켜보았던 나는 새로 진보진영에서 사회연대전략이 제기된 것이 무척 반갑다.

당시 이 사업을 둘러싸고 임금양보론, 정규직책임론, 계급분열론 등 갖가지 비판이 되돌아왔지만, 여전히 난 사회연대전략이 진보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서 사회적 신뢰를 획득하는 헤게모니전략이며,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는 계급형성전략의 단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업당사자인 노동조합과 진지한 소통 필요해 

그래서 또 걱정도 앞선다. 지난 사업의 경험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이 사업에 실패한 이유는 사업 내용 자체에 있지 않았다. 정파 구도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문제는 이 사업을 실제 담당할 민주노총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이 사업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정규직 책임론’이 더 거세질 것을 우려했다.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먼저 치고 나가는’ 정치를 벌이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만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사이에 ‘소통과 신뢰’가 부족했다. 2004년 원내진출 이후 사실상 화석화된 당-노조 관계에서, 고도의 내부정치가 필요했던 이 사업은 결국 좌절되었다.

사회연대전략을 다시 제기하고 공론화하려는 진보신당의 진정성을 존중한다. 다만, 총선을 앞 둔 시점이라 당사자인 노동조합과는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업이 단지 총선용이 아니라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진보의 재구성’의 핵심 토대라는 점에서 긴 호흡으로 당사자와 소통하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이 사업의 당사자인 정규직 노동자를 객체화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게 하는 치밀하고 세심한 노력 말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연대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의 노동정치가 현실화되어야 한다. 당과 노동조합 사이에 공식적 소통구조가 유기적으로 자리 잡는 것뿐만 아니라 당원이 자신이 속한 지역 당원 조합원과 사회연대전략을 토론하고, 다시 주변 조합원이 당원이 되어 이 사업을 노동조합 내부에 실현해나가는 당-노동 정치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사회연대전략 실험이 당-노동 정치의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의 본령은 계급형성전략, 헤게모니전략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노동조합도 수세적 모양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세력이 되고자 하면서, 언제까지 ‘정규직 책임론’을 해명하는 틀에만 머물 것인가? 축구경기에서 골은 언제나 먹는 법이며, 이기기 위해선 더 많이 넣어야 한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6백만 명의 저소득계층을 위하여 중상위계층 이상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일부 더 내는 것이, 3백만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위하여 고용보험료를 일부 더 내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초강도의 노동시간을 일부 단축하는 것이 그토록 노동자가 행해선 안 될 일이란 말인가!

이미 국민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3~4배의 고수익 국민연금 혜택을 누릴 예정이지만, 보험료도 내지 못한 사각지대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현직의 노동자를 둘로 가른다면, 국민연금 수익구조는 퇴직한 노동자들을 다시 둘로 가르고 있다.

또한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에 따른다면 임금의 0.1~0.4%를 고용보험으로 더 부담하게 될 테지만 장기적으로 최저임금 상승이 일반 노동자 임금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노동시간 상한제로 일부 초과노동이 사라지지만 그만큼 자신의 여가와 동료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의 경제적 이익은 분명하다. 사회보험료 납부로 노동자의 직접 임금이 줄어들더라도 사회복지로 주어지는 사회임금이 더 커지면 노동자의 총임금은 증가할 것이다. 저소득계층들이 더 큰 혜택을 얻을 것이기에 사회형평성도 강화된다.

하지만 사회연대전략의 본령은 경제적 이익에 있지 않다. 사회연대전략이 ‘전략’인 까닭은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연대 과정에서 노동자 내부에서 형성되는 ‘공통의 경험, 의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보의 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뿔뿔이 개별화되어 있는 노동자가 노동자 계급으로 전화하는 계급형성전략이다. 또한 사회연대전략은 사회적 격차를 해결하는 계기를 주류 지배계급이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며 사회변혁의 주도권을 쥐어가는 헤게모니전략이기도 하다.

마무리하며: 대담한 실천과 진지한 소통

나는 현재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의 조합주의적 경향을 우려한다. 일자리 불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일반 조합원의 현실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있는 현실을 인정하되, 이를 뛰어넘는 대담한 실천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럴 때일수록 상급단체, 노조운동 지도부의 선구적 리더십이 필요하고, 논의가 가능한 몇몇 노동조합부터 거점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진보신당 역시 노동조합과 소통하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 사회운동의 성패는 ‘사업 자체의 정당성’보다는 그것을 공유하고 조직화하는 실천과정에 더 달려 있다.

특히 진보운동 내부 신뢰가 약화된 우리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진보신당이 되살리려는 사회연대전략이 총선 공약을 넘어 한국 진보운동의 활로를 개척하고 진보가치를 재구성하는 역사적 실천으로 발전하길 고대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