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는 없다, 학원만 있다
        2008년 03월 26일 05: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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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이 학교인가

       
    ▲ 진성고 학생들이 만든 UCC 장면
     

    인터넷에서 광명시 진성고등학교의 진면목을 보았다. 오죽했으면 학생들이 UCC를 만들어 돌렸을까?
    비좁고 더러운 기숙사, 인권 유린과 체벌, 억울한 밥상, 사기 수준의 생활복 강매, 사육 시설인 듯한 감시와 억압의 교정, 무시와 외면의 교육, 그 서글픈 현장 고발의 동영상을 보며 그 기막힌 현실에 참담해졌다.

    더더욱 말문이 막히는 것은 버젓이 교훈처럼 현판으로 내걸은 ‘7무 운동’의 공격적 명령이다. 노예적 굴종을 강요하는, 그래서 공부하는 기계로 숨죽이고 살아가라는 명령은 인권을 넘어 반인간, 반인륜적인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곳이 학교인가? 이런 곳이 10대, 무한한 꿈과 도전 정신을 갖고 미래를 개척해 나갈 우리 학생들이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는 곳이란 말인가?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절망과 절규를 간단히 무시하면서 교장과 학부모가 오히려 큰 소리 칠 수 있는 이유는 그 학교가 입시 명문 고등학교이기 때문이란다. 입시를 위해 인권과 삶, 그 모두를 저당 잡히고 노예처럼 살아야하는 우리 학생들이 모습은 허무 개그 그 자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늘어날 진성고

    이명박 정부는 자율형 사립학교를 100여개, 기숙형 공립학교를 150개를 세우겠다고 한다. 이렇게 입시형 일류 고등학교를 세우면, 그 고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사교육비 걱정 없이 일류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있는 외고, 과학고 등 특목고에 자립형 사립고, 국제고 등을 합치면 약 400여개 정도이니, 이들이 입시 명문고들이 되면 이제 이들 고교에 들어가기 위해 전국의 초중학교 학생들도 입시 지옥에 내몰릴 것이다. 앞으로 진성고 같은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생겨날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진성고는 사립학교이다. 이 땅의 사립학교가 돈벌이 수단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동영상에도 교장이란 분이 ‘학교가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천연덕스럽게 항변하신다. 학생들을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거룩하고 헌신적인 육영 사업을 할 것이라 믿는 우리들이 어리석을 뿐이다.

    사립학교를 치부의 수단으로 믿는 그들이 ‘사립학교법’을 운운한다. 사립학교법을 확실히 고쳐서 학교가 개인 재산이고 개인이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 받으려 한다. 사립학교 민주화를 위해 애쓰는 교사들을 부당하게 탄압, 전출, 해고하는 일이, 새 학기 3월에, 전국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

    흔적만 남은 학교마저 사라져가고

    학교조차 이제 학원의 길을 가려 한다. 우리 학생들을 성적과 등수의 노예로 길들이며, 학부모들의 사행 심리를 부추기며,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몰상식이 ‘경쟁’이란 명분으로 사회의 보편적 흐름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절규는 죽음처럼 깊고 처절하다.

    누구는 왜 그런 학교를 다니느냐고? 가진 것들이 죽는 소리한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비웃기에는 현실이 너무 막강하다. 사립학교는 중고등학교의 60%, 대학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중 건전하고 투명하고 바람직한 사학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학교 환경뿐이 아니다. 학교는 수업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제 수업은 등수 따기, 막무가내 외우기, 문제 풀이만 열심히 하기로 변질되고 있다. 대학 서열화도 모자라 초중고등학교까지 서열화 하겠다는 게 이 정부의 발상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모두 성적 내기, 시험 치기가 되어 버렸다. 이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이 땅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서 ‘네 탓이야’로 간단히 냉소하기에는 아이가 있는 집이면 누구나 겪을 너무나 처절한 공포이다.

    눈물과 분노로 답해야

    이 땅 청소년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미친 현실을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한다.
    인권도 자신의 삶도 없이, 그저 적자생존, 약육강식,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경쟁심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어 오직 시험 문제 찍기에 운명을 거는 이 미친 현실과, 그 현실을 돈벌이로 악용하는 ‘경쟁력 시대’를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미래의 주역’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와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이다.

    그 청소년들의 절규에 기성세대는 책임 있게 대답해야 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당장 고치겠다고,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하겠다고, 인간다운 교육 현장이 되도록 어른들이 나서겠다고, 아니 함께 나서자고 결의하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절규해야 한다. 먼저 ‘교육이 지옥’임을 온 국민이 공감해야 한다.

    청소년기의 죽음 같은 허무를 행복한 희망으로 돌려놓는 일,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땅히 나서야만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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