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한 김태희, 아름다운 김부선
        2008년 03월 24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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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 김부선씨는 최근 진보신당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그는 진보신당 창당대회 때 "여러분들의 오래 된 민주화 투쟁으로 저 같은 마약쟁이가 커밍아웃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통해 “정당 참여는 사실 처음이다. 부담이 된다. 노회찬·심상정 의원을 평소 존경해왔다. 총선 때 따라다니면서 얼굴이나 팔까 했는데, 덜컥 정당의 홍보대사를 맡겨서 걱정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돌아이’처럼 된 내가 진보신당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지만, 돈 드는 일만 아니라면 시간이 되는 대로 뭐든 해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글은 <레디앙>에서 곧 펴낼 목수정씨의 책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가칭)의 에필로그 가운데 한 부분이다. <편집자 주>

    이상하게도 김태희라는 이름의 배우의 사진을 거리에서 볼 때면 전 언제나 마음이 조금씩 불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그 사람이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명문대 출신과 ‘지적인 것’은 무관

    김태희. 그녀의 얼굴이 특별히 예쁜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에게는 명문대(서울대-편집자)를 나왔다는 이유로 “똑똑하고 지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언제나 따라 다닙니다. 그녀는 연기를 썩 잘하지 못하는 배우입니다. 배우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연기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투영해냅니다.

    언제나 자기가 아니라 어설프게 남을 흉내 내는 듯한 불안한 음성의 그녀는 아직 배우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자신의 삶에 확신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조작된 이미지를 팔 수 있는 광고모델로 주로 등장합니다. 아파트 광고나 신용카드 광고 등에 등장해서 결국 자신이 부동산투기나 신용불량자 조장에 일조하고 있건 말건, 얼굴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지요.

    언론이나 방송에서 그녀에게 붙여준 ‘지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들을 때마다 사실 웃음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것은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이 탁월함을 의미할 뿐입니다. 진정한 지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지요.

    어느 대학을 들어갔는지 보다는 얼마나 치열하고 솔직하게 삶의 진실과 마주하며 살았는가가 그 사람의 지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됩니다. ‘알파걸’ 하면 떠오르는 여자 연예인 1위로 뽑힌 그녀는 박제된 자신의 이미지에 갇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김태희(왼쪽)와 김부선.
     

    소름끼치게 만든 그의 연기

    김부선. 그녀가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혹은 학교를 다녔는지 말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런 걸 알 필요가 있나요?)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서 분식집 주인으로 잠깐 등장하는 그녀를 처음 보았습니다.

    배우는 시나리오 안에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밖으로 까지 튀어나오는 듯한 그녀의 육중한 연기가 소름끼치도록 놀라웠던 김부선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불새’라는 드라마에서 다시 그녀를 보았을 때에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 몸을 휘감아 오는 뱀처럼, 너무도 리얼하게 온 몸에 착착 달라붙는 연기, 그녀가 배우로서 얼마나 더 큰 자리가 필요한지, 한 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마초 흡입으로 수 차례 감옥을 들락거린 것으로 유명세를 날렸던 김부선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던 사건은, 대마초를 피울 권리에 대한 헌법소원을 감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이 사회가 하지 말라는 짓이었으나, 그녀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었고, 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과연 옳은가를 따져보겠다고 나섰다는 소식. 문득 이 사회에 존재하던 벽 하나가 확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이 사회 벽 하나를 무너뜨린 사람

    물론 그녀는 헌법소원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지요. 그러나, 꼭 법정에서 이기지 않아도, 의미있는 싸움들이 있습니다. 싸움을 거는 것 만으로도 승리하는 그런 싸움도 있지요. 김부선의 대마초 흡입의 권리에 대한 헌법소원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당연히 금지라고 알고 있었던 무엇에 대해 “그래? 왜, 어째서, 그렇지? 한 번 따져볼까” 하고 대들어 보는 태도는 사회를, 지성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도전적 정신의 가장 근본입니다.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단상에 올라가, 그 누구를 흉내내지 않은 자신의 진솔한 어휘와 자신의 체험으로 왜 한미FTA를 반대하는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그녀를 보고, 참 아름다운 여배우가 한국에 있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그토록 살아있는 연기를 할 수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심장과 맥박은 시대와 함께, 파닥파닥 고동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로배우, 미혼모에 대마초쟁이. 이 사회가 던져주는 주홍글씨들을 다닥다닥 이마에 달고서도, 당당하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배우로서의 진실한 삶을 위해 주어진 짧은 순간에 최선을 다 하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참된 것인지를 시험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보탭니다. 그녀가 대한민국의 그 어떤 배우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그녀가 매력적인 이유

    미국 아동심리학 교수 댄 킨들러는 2006년 출간한 ‘새로운 여자의 탄생- 알파걸’에서 “성실하고 낙천적이고, 실용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개인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평등주의자인, 그러면서 관심 영역이 광범위해 인생의 모든 가능성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유능한 10대 소녀집단, 알파걸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발 빠른 한국의 상업주의가 구매력이 탁월한, 고소득의 주눅들지 않은 당당한 워킹우먼을 묘사하는 어휘로 차용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가상의 주류를 만들며, 한국여성들의 소비의식을 자극해왔습니다. CF 여왕으로 꼽히는 배우와 알파걸의 상징으로 꼽히는 배우가 한 사람이란 사실이 어찌 우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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