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 실컷 뛰어 놀게 하기
        2008년 03월 24일 03: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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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십년 만에 일제고사가 실시되었다. 사교육 시장의 첨단을 추구하는 서울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가 학원 교습을 24시간 허용하는 조례개정안을 올렸던 것이다. 국민성공시대에는 학원도 편의점처럼 24시간 문을 열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위의 예들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 앞으로 교육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평준화를 폐기하고 자립형 사립학교도 늘려나갈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영어 과목이 아닌 수업까지 영어로 하겠다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이게 뭔 오뤤지 같은 세상인가. 아무튼 어릴 때부터 사교육 시장에 내몰려 학원 다니고 과외 받느라 바쁜 우리 아이들, 참 걱정이다.

    정말이지 요즘 우리 아이들, 도무지 놀래야 놀 시간이 없다. 시간만 없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땅마다 아파트 짓고 빌딩 세우고 건물 올리느라 놀 수 있는 공간도 없다. 그나마 예전에는 놀이터라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요즘 놀이터에는 자기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더러 어디에서 놀라는 말인가? 대운하를 파줄 테니 거기에서 헤엄이라도 치라는 것일까?

    대운하에서 헤엄칠까?

       
     
     

    김기정은 어릴 때부터 입시 준비로 착취당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라는 화두를 던져주고자 『박뛰엄이 노는 법』(계수나무, 2008)을 쓴 것 같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박뛰엄 할아버지는 증손자 주먹이가 “요상한 컴퓨터 놀이에만 빠져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것은 매우 적절한 현실의 반영이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잘 놀 줄 모른다. 기껏해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게임기를 붙들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는 것이 잘 노는 것일까? ‘잘’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부담스러운 말이 되기 일쑤이지만, 잘 노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저 실컷 뛰어노는 것, 그것이야말로 잘 노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계에 의존하여 유희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자연을 벗 삼아 동무들과 어울려 뛰어노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유희성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전작 『바나나가 뭐예유?』(시공주니어, 2002)에서도 도시와 괴리된 깊은 산골 마을 아이들의 건강한 유희성을 잘 그려낸 바 있다. 그러나 전작에서의 놀이가 배경 묘사의 한 요소 정도에 그쳤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작품 전반에 걸쳐서 놀이가 부각되어 있다.

    그래도 전작과 동일한 점이 있으니, 바로 공간적 배경을 외부와 단절된 깊은 산 속의 환상적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환상적인 공간 설정은 환상적 서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된다. 실제로 주인공 박뛰엄이 겪는 일들은 도저히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판타지이다.

    그러나 작품의 판타지는 이질적이라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특히 도깨비에게 뛰엄병을 파는 장면이라든지, 불을 뿜어대는 용 대신에 멧돼지를 잡아먹으려고 할 만큼 거대한 학이 등장하는 대목을 보면, 이 작품의 판타지가 지극히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특징을 나타내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작품 속에서 놀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유희성에 집중하지만, 동화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교훈성도 결코 놓치려 하지 않는다. 박뛰엄 할아버지는 한 가지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증손자 주먹이에게 당부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지나치게 직설화법으로 말하는 바람에 조금은 설교조로 들리기도 하지만, 계몽의 방식이 문제이지 계몽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계몽이 필요하다. 할아버지가 증손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에 덧붙여 생각할 거리를 짤막하게 던져주는 방식이라면, 설령 그것이 계몽이라 한들 문제될 것은 없다.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에는 놀 때는 죽기 살기로 뛰면서 놀아야 한다는 것, 동무를 사귈 때에는 그 생김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것, 심심할 때 가만 귀를 기울이고 요리조리 살피면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은 줄 알게 된다는 것, 동무를 사귈 때에는 네 하는 짓이 동무에게도 좋은 일인가 아닌가를 잘 따져 생각해 보라는 것, 그리고 일하는 재미 등이 있다.

    줄기 살기로 놀라는 교훈

    무엇 하나 요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훈이 아니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특히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들은 하나같이 제도권에서 요구하는 것들이라기보다는, 인간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교훈이며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교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지닌다.

    작품의 서사 방식이 근대적인 인과율의 구조를 따르지 않고, 우연성이 강조되는 전래동화의 서사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놀라운 입담인데, 천연덕스럽게 과장된 서술을 풀어놓는 작가의 말투는 영락없이 전래동화의 문법과 맞닿아 있다.

    작품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바로 주석의 활용이다. 어려운 전문서적에서나 볼 수 있는 딱딱한 주석을, 흥미진진한 숨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통로로 활용한 점이 무척 돋보인다. 이는 주석이 갖는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와 활용 가능성을 부여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이와 같은 주석의 색다른 활용이 어느 정도 시도되고 있으나 동화의 영역에서는 무척 낯선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교육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동화를 읽으면서 어렵지 않게 주석을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들 수 있겠다. 전작들, 특히 『해를 삼킨 아이들』(창비, 2004)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직접 반영된 대목인 것 같은데,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 분위기, 내용 전개와 호응을 이루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한국전쟁이 상당히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냈다는 점을 비롯하여 전쟁과 무기에 반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명확하게 전달해주는 점 등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소를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갑자기 역사의 무대 한복판으로 주인공을 불러들이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작품 전반에 걸쳐 노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 자신은 무언가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그것도 근현대사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거나 게임기만 붙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실컷 뛰어 노는 것이 진짜 잘 노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교훈은 충분하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교훈도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훈이고 뭐고 없이, 그저 실컷 뛰어 노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욕심이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김기정은 놀라운 이야기꾼이며 건강한 세계관과 아동관을 가진 동화작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다음 작품으로 돌아올 때에는 조금 더 노는 데 집중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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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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