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회당을 보면 보인다
    2008년 03월 23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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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진보정당 경쟁 시대다.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그리고 얼마 전까지 진보의 대표정당을 자임하던 민주노동당, 마지막으로 노회찬과 심상정 두 스타 의원을 앞세우고 민주노동당에서 딴 살림 차려 나온 진보신당이 누가 진짜 진보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 눈에는 셋 다 민생 얘기하고, 양극화 얘기하고, 운하 반대하고, 비정규직 얘기하니 별 반 차이 없게 보인다. 물론 당사자야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누가 진보의 대표주자가 될까?

이제 총선 선거운동이 불붙고 있는 가운데, 창조한국당은 당의 얼굴인 문국현이 이재오와 은평에서 대운하 반대를 정면에 내걸고 승부를 걸고 있다. 일단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전농의 배타적인 지지를 업고 가장 많은 후보를 내고 있다. 외형상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이제 당을 만들며 선거도 하는 수준이다. 피우진 중령을 비례대표 3번에 올린 것에서 보듯이 발상의 참신함이 쓸 만한 무기다.

그러나 물질적 자원은 역시 부족하다. 이번 총선에는 세 당이 척박한 진보 표밭에서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바야흐로 진보정당 경쟁 시대가 올까?

필자가 사는 네덜란드는 다당제의 나라다. 앞으로 한국의 진보정당의 경쟁을 보기 전에 네덜란드의 경쟁 관계를 참고해 볼 만하다.

네덜란드에서는 지역구가 없고, 백퍼센트 정당명부제를 하기 때문에, 열 개 정도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

2006년 11월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좌 비슷한 사회당이 난데없이 제 3당으로 등장했다. 사회당은 2005년 6월 유럽헌법 부결을 이끌었고,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반대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점령 반대 뿐 아니라, 미국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네덜란드 군의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당인데, 그런 당이 150석 중 25석(17%)을 얻어 제3당이 되었다는 건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노동당이 좌파의 표를 빨아들이는 구도를 깨고 사회당(Socialistic Party)은 어떻게 성장한 걸까?

사회당은 대단한 족보를 가진 정당은 아니다. 노동당(Party of the Workers)은 19세기 말부터 성장한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족보를 이어 받은 정당이다. 그리고 좌파의 또 다른 주자인 녹색 좌파당(Green Left)는 90년대 초 평화주의 정당, 기독 사회주의 정당, 공산당이 합당하여 진보의 재구성 기획을 가지고 만들어진 당이다.

   
▲ 창당 당시의 사회당의 시위 모습
 

그에 비해 사회당은 1972년 유럽에 노동운동이 전성기였고, 68혁명의 영향으로 좌파정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시기에 네덜란드에서 변두리에 속하는 남동부의 작은 도시 오스(Oss)에서 모택동주의를 내걸고 창당했다.

94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2석을 얻어 의회에 턱걸이로 들어가고, 그후 5석, 9석으로 점점 늘다가 2006년 25석으로 비약적으로 의석을 늘렸다. 사회당은 지금까지 각종 선거 때마다 의석이 느는 연승 행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좀 자세히 보자. 

사회당은 모택동주의에 입각해 대중 속으로를 외치며 중앙정치판이 아니라 지역에서 대중들의 요구를 모으는 전략을 구사한 지역연합정당 형태를 가지고 당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가 89년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이 망한 후 마르크스-레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폐기하고, 당의 이념을 인간 존중, 평등, 연대로 좀 더 유연하게 바꾸고, 대중적인 의회정당을 표방하였다.

하지만 이 당은 의회와 거리의 두 공간을 2대 활동공간으로 삼고, 민주노동당이 창당 초에 보여준 것과 같이 지역에서 활발한 일상대중활동을 전개한다.

아래의 표에서 보듯이 94년 처음 2석으로 의회에 진출한 후 네덜란드 정치의 우경화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여 좌파의 대표주자인 노동당의 지위를 넘볼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 주요 정당 하원 의석 수(1994년 이후)
 

위의 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보듯이 사회당은 1994년 의회 진출 후 불과 12년 만에 제 3당에 올랐다.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하던 좌파성향의 표가 대거 사회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아래 그래프에 보면 주황색의 노동당이 하락추세를 그리는 동안 사회당은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좌파정당으로서 신자유주의에 가장 단호하게 반대하는 제도권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래프로 볼 수 있듯이, 같은 좌파라도 노동당(주황색)이나 녹색좌파당(녹색)은 지난 10년간 하락추세에 있다. 이 시기는 1999년 시애틀의 WTO반대 시위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저항이 급증한 시기이며,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중동침략이 시작된 후의 시기이다.

사회당은 초국적 자본이 시장 쟁탈을 위한 국경 없는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현 체제는 잘못된 체제이기 때문에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과 이라크 침략에 확고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회당은 제도권 정당으로는 유일하게 나토의 유고전쟁에 반대했다. 노동당이나 녹색 좌파당은, 전쟁은 안 좋지만 유고 정규군의 코소보인의 학살을 막기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인권을 위한 전쟁론을 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당시에도 유럽의 대다수 좌파 정당들은 탈레반의 여성 억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쟁 반대를 일관되게 주장하지 못했다. 사회당은 신자유주의 반대, 전쟁 반대를 가장 분명하게 밝히는 정당으로 네덜란드의 유권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회당의 성공은 네덜란드의 좌우연정, 노사 합의 모델의 해체 덕분이기도 하다. 2002년 총선에서는 우파 돌풍이 불었고, 가장 우파적인 연정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우파 연정의 욕심은 너무 컸다. 노조에게 일방적으로 임금 동결을 요구하고, 조기 연금제 폐지, 연금 연령 상향, 기업이 해고하기 쉽게 노동법 변경 등을 시도하다가 2004년 노동자들의 강한 저항을 받는다.

정부가 노사합의의 전통을 깨고, 기업 편을 노골적으로 들자, 네덜란드 3대 노조가 단결하여 2004년 가을을 뜨거운 거리 투쟁으로 이끌었다. 최고조로 잡은 10월 2일 암스테르담 시위에는 전국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30만이 넘는 노동자,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인구 천 6백만의 나라에서 30만이면, 한국에선 90만이 모인 거나 마찬가지다. 백만 민중대회를 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백만 민중대회

우파 바람에 대한 좌파의 역 바람이 분 것이다. 2006년 11월 총선에서 사회당은 점점 유명무실해지는 네덜란드의 의료, 교육, 노인 복지, 주택 등 복지국가의 위기를 쟁점화하면서 좌파 연정을 주창하였다.

노동당과 사회당, 녹색좌파당 3당이 좌파 연정을 하자는 주장은 좌파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역사상 한 번도 보지 못한 좌파 연합정권이 들어설지 모른다는 기대를 낳은 것이다.

아쉽게도 노동당은 좌파 연정에 미지근했다. 사회당의 성장이 두려웠고, 기업들과 안정 성향의 중간층의 표를 의식해서 연정 파트너는 선거 결과를 보고 정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결국 좌파 3당은 과반수를 못 얻었고, 독일과 비슷하게 기독민주당이 제1당, 노동당이 제2당을 차지하여, 두 당 주도로 6석의 소수당 기독연합을 끌어들여 연정을 구성하였다.

사회당의 강점은 무엇일까? 사회당은 서민정당이다. 노동당이 좌우의 중간지대로 넓히는 득표전략을 구사하는 데 반해서 사회당은 날로 악화돼가는 복지체제의 사각지대에 놓은 저소득층, 저임금 노동자를 주요 지지층으로 삼았다. 이미 10%대에 이른 극빈층의 문제를 선거 쟁점화하면서 세계 10대 부자나라에서 10%가 빈곤 속에서 사는 현실을 고발했다.

또 서민정당답게 서민의 눈높이에 맞는 말을 썼다. 사회당의 선거구호는 항상 간단했다. 1994년에는 “STEM TEGEN! STEM SP!(반대표를 던질 겁니까, 그럼 사회당을 찍으세요)” 2002년에는 정반대로 “STEM VOOR! STEM SP!(찬성표를 주세요. 사회당을 찍어주세요)” 2006년에는 “NU SP(이제는 사회당)”을 구호로 내걸었고, 노동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했다.

선거 구호만 단순한 게 아니었다. 사회당 당수 얀 마라이니슨은 십대에 이미 정치운동에 뜻을 품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는 용접공으로 일했고, 소시지 공장라인에서도 일했다. 그의 말은 항상 쉽다. 먹물 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정치인처럼 말을 돌리지 않고, YES OR NO를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여러 차례 책으로 냈다.

서민의 눈높이, 서민의 말, 확고한 입장

유럽의 대다수 좌파처럼 네덜란드의 노동당이나 녹색좌파당은 신자유주의는 대세라는 걸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 범위 내에서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완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런 논리에서 이들은 유럽연합 헌법을 지지하고, 유럽연합을 통해서 사회보장체제를 지켜나가려 한다.

사회당은, 유럽연합은 단일시장을 위한 구상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이 체제의 타파를 목적으로 삼는다. 200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유럽헌법안이 국민투표로 부결되었을 때, 사회당은 적극적인 반대 캠페인을 벌였고, 보기 좋게 유럽헌법을 부결시켰다.

또 다른 강점은 일사분란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당은 당원수로도 제 3당이다. 그리고 다른 당들과는 다르게 선거 때 말고도 길거리에서 각종 캠페인을 벌인다. 아래에는 주요 정당의 당원 수 변동이 표로 나타나 있다.

   
▲ 네덜란드 주요 정당의 당원 수 증감
 

사회당에도 단점은 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사회당이 요 근래에는 지지율이 떨어졌다. 여론조사에서 20석 미만의 지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년 지방선거 후의 당내 분란이 주요 원인이었다.

먼저 배경을 보자. 사회당은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다. 공직에 임용된 사람은 평균노동자의 급여만 받고 나머지는 특별당비로 납부한다. 국회의원은 혹독한 학습을 받아야 한다. 당수인 얀 마라이니슨의 권위는 대단하다. 그래서 그의 권위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몇 명 있었지만, 결국 당을 떠나야 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은 선전했다. 2006년 총선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굳혔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선거와 겸한 상원선거 결과 때문에 일어났다. 모든 선거에서 정당명부제를 하는 네덜란드에서는 정당명부에서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다. 그래서 명부 하위권에 있는 후보도 표를 많이 받으면 당선될 수 있다. 아랍계 출신의 한 상원후보가 표를 많이 받아 당선되게 되었다.

그러나 당에서는 후보들이 선거 전에 정당명부 순서대로 임명되기로 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 후보는 당의 규정에 따라 상원의원이 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런 분란을 좋은 기사거리로 삼은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당은 당의 규율을 내세워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얀 마라이니슨의 확고한 지도력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당의 구조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고, 당의 지지가 떨어졌다.

당수의 카리스마가 강하면 의원들이나 간부들은 당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내의 건강한 토론 풍토가 살아나지 못하고, 내부 민주주의도 정체될 우려가 있다. 소수정당일 때는 이런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내 제 3당이 된 마당에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반영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과제가 되었다.

사회당의 알짜는 무엇인가? 사회당이 의회에 진출한 지는 이제 고작 14년밖에 안 되었지만, 사회당 창립부터 계산하면 역사가 36년이다. 당수인 얀 마라이니슨은 한 평생을 사회당 건설에 바쳐왔다.

처음에는 모택동주의에서 출발하여,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폐기하고, 반세계화 운동이 활발해진 상황 변화에 맞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사회당은 시대의 변화 흐름을 잘 잡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했고, 성장했다.

사회당이 진보적인 유권자들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좌파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가장 근접한 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동당이 중간 성향의 표심 잡기에 치중하고, 녹색좌파당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언제 올지 모르는 원대한 꿈을 접고, 가장 합리적인 정치세력이 되려는 와중에, 사회당은 투박하지만 선명하게 좌파의 길을 걸어왔다.

투박하지만 선명한

어설픈 중간층 끌어안기보다는 좌파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지지층을 확대하는 전략이 다른 좌파정당들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사회당은 2006년 총선에서 네덜란드의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냉전 시절 소련에 맞선 서방국가들의 집단안보체제) 탈퇴 공약을 나토의 개혁으로 바꾸고, 왕정을 공화정으로 바꾼다는 공약을 핵심공약에서 빼면서 지지층 확대에 나섰다. 그리고 경제기획원에 의뢰해 당의 공약이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음을 입증해서 좌파정당은 무조건 선심을 베푼다는 선입견을 깼다.

   
▲ 거리 캠페인 중인 네덜란드 사회당원들
 

한국에서는 세 당 중 누가 살아남을까?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진보정당 하면 대부분 민주노동당을 꼽았다. 4년 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빈련 등 대중단체와 학계, 법조계, 영화계, 문화계의 연이은 지지선언과 후원을 받으며 진보세력의 시민권을 획득했었다.

그러나 그 후의 모습은 열린우리당이 지갑 줍는 사이에 흘린 돈 주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지자들의 높은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4년이 지나고 다시 총선이 오고 있다. 누가 앞으로 살아남을까? 네덜란드 사회당이 보여준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가장 근접한 답을 제시하는 세력이 살아 남을 것이다.

한 가지 예로 통일방안이 있다. 통일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최고의 목적은 평화여야 한다. 평화는 또 군축과 연결된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한반도에 전쟁위협을 없애고, 핵전쟁 위기를 완전히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가 주변국들까지 확산되어 동북아 지역 전체를 평화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의 불평등이 지역 갈등을 낳고 평화를 위협하는 점을 생각해서 낙후된 북한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고, 주변국을 경쟁 상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함께 푸는 동반자로 보고 상생하는 길을 찾기 위해 진보정당의 독특한 경제, 외교 정책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중국-북한-남한-일본-러시아가 다 얽혀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나 환경오염 문제, 자원 문제 같은 지역의 공동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면서도 연대의 범위를 국경 너머로까지 확대할 수 있는 참 진보정당의 성장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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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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