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만 생각해도 그들은 종북주의
        2008년 03월 22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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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결심하고, 창당 기획문건을 쓰기 시작한 지 119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3월16일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창당됐다. 어떤 동지가 나에게 물었다. “네가 뜻한 대로 다 되었는데, 속이 후련하냐?”고.

    숨막히는 고통에 신음하다

    그렇다. 내가 바라는 대로 다 되었다. 그것도 목표를 훨씬 초과했다. 그런데 나는 창당 후 3일간, 기쁨 때문이 아니라 답답하고 힘들어서 술독에 빠져 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에 신음했다.

    그 이유가 민주노동당과의 경쟁구도 때문은 아니다. 나 또한 “민주노동당은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망할 것” 이라는 진중권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8년간의 이름값만으로도 일정한 성과를 내겠지만, 그런다고 민주노동당이 계속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머지않아 스스로 주저앉을 것이다.

    내가 힘들어 하는 이유는 총선 전 창당의 결과가 가져올 후폭풍이 두려워서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을 위한 투쟁은 짧게 10년, 길게 20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것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냉혹한 정치현실을 깨달으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리 10년, 20년을 내다보았더라도, 진보신당이 지금의 총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많은 시련을 겪을 것이다. 활동가들은 잠시 낙담하다가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겠지만, 노동대중과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사람들은 진보정치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질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정말이지 요즘은 노회찬, 심상정 두 의원이 지역구에서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 절절하다. 또한 비례대표도 몇 석 정도 당선시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골백번 생각해도 그들은 종북주의가 맞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종북 논란이 한창일 때, 나는 그들이 왜 종북파인지 후속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쓰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관련된 글을 썼기에, 굳이 더 보태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의 논평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진보신당을 향해 "더 나아가 반북을 중심으로 해서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보수언론,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하는 삼각정치동맹을 자신의 정치적 생존전략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해명도 필요하다"고 비난했다.

    그것을 보면서 나의 답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내가 그들을 종북파라고 딱지 붙인 문건을 썼던 당사자니까.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다. 또한 북한권력은 인민의 식량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남쪽의 김일성주의자들은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사상노선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 공간에서 운동을 함께 하던 사람이 그들의 사상노선을 끄집어내어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내가 쓴 기획문건은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운동가의 자세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나의 그러한 행동이 잘 한 것인지 아닌지, 내 스스로도 솔직히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명백한 종북주의자다.

    첫째, 남북한 UN 동시가입에 대한 그들의 태도다. 1991년 남북한이 UN에 동시가입 했다. 그런데 동시가입하기 직전까지, 남쪽의 그들은 북한권력의 입장에 따라 남북한 UN 동시가입은 한반도의 영구분단 책동이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북한권력이 입장을 바꾸어 남북이 동시가입하자, 남쪽의 그들은 곧바로 입장을 바꾸었다. 동시가입을 찬성했다.

    나는 그들이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입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의 머리로 고뇌에 찬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해명 없는 입장 전환

    둘째, 낮은 단계 연방제(연합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다. 2000년 평양에서 6.15선언이 발표되었다. 6.15선언의 핵심은 낮은 단계 연방제(연합제)와 경제교류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일대 진점임에 분명하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전까지도 북한의 고려연방공화국 방안보다는 국가연합단계를 거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남과 북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에서, 고려연방공화국 방안은 오히려 북한을 남한자본주의에 흡수하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쪽의 그들은 나 같은 생각의 사람들을 향해 반통일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즉각 고려연방공화국이 되어도 주체사상으로 단련된 북한 인민이 남쪽의 민중들을 설득하고 교화해서 북한식 사회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선언에 서명을 해버리고 말았다. 남쪽의 그들 중 일부가 잠시 동안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남쪽 그들의 대다수는 곧바로 입장을 바꾸어 6.15 선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이 또한 나는 그들이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입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 어떠한 형태로도 진지한 성찰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해명도 들어보지 못했다.

    셋째, 북핵에 대한 그들의 태도다.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은 남쪽 그들의 상징적 구호였다. 그러나 북한이 핵 실험에 성공하자, 그들은 핵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미국과 맞서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며, 북핵을 찬성했다.

    핵에 대한 20년간의 원칙을 바꾸면서 그들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는 말을 나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중대한 노선을 전환하면서 논쟁은커녕, 우리가 언제 무조건적인 반핵이었냐며 시치미를 떼었다.

    넷째, 남쪽의 그들이 종북파인 결정적 근거는 북한체제 비판에 대한 그들의 태도다. 남쪽의 그들은 남한의 누군가 북한체제를 비판하면, 부당한 내정간섭이라고 하며 막 화를 낸다. 특히 북한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면 히스테리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정작 북한정부가 남쪽을 향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써 모르는 척한다. 내정간섭 논리로 접근하려면 남과 북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정간섭 논리는 올바르지 않다. 남과 북은 서로가 통일의 대상이고 주체이다. 따라서 남과 북은 서로를 향해 체제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남과 북의 체제가 긍정적 방향으로 서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한편으로 협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 인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반대해도, 남한 진보진영이 북한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까지 반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계속 그렇게 할 거라면, ‘우리 민족끼리’ 라는 주장을 차라리 하지 말던가.

    일반인들은 남쪽의 그들이 하고 있는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단순하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로 사고하지 않는다. 또한 북한 인민이나 남한 민중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권력의 입장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것만 알면 미래의 한반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 우리는 남쪽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족집게 점쟁이처럼 맞출 수도 있다.

    누가 민주노동당을 지배하고 있는가

    민주노동당을 종북정당이라고 하면, 아직도 민주노동당에 남아있는 ‘민주노총 국민파’와 ‘다함께’, 그리고 이수호, 지금종, 박승흡 같은 분들은 억울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들은 민주노동당이 북핵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냐고도 한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억울해 하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노동당에서 자신들과 동거하고 있는 그들의 사상노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또 그들은 누가 민주노동당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북핵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유감표명이 어떠한 내부투쟁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진정 민주노동당의 종북딱지가 억울하고 그것을 떼어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총선기간에 북한 인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진지한 공약을 만들어 국민들 앞에 제출할 의향이 없냐고.

    이수호, 지금종, 박승흡 같은 분들에게 감히 외람되지만 한마디 한다. “종북주의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을 하지 마시라. 세상 사람들이 알고, 또 본인들도 알고 있는 것을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 자기 발목 잡지 마시라.”

    딱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설 것을 호소한다

    나를 비롯한 신당파는 ‘총선 전 창당’을 주장했다. 심상정,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우려했지만, 결국 신당파의 뜻대로 되었다.

    그런데 벅차다.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모든 일이 급박하게 처리되었다. 한 달 만에 창당하고, 지역구 후보와 비례후보를 만들면서, 4월9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기본적인 총선자금도 제 때 마련하지 못해 모두 쩔쩔매고 있다. 오죽하면 몇 년 째 실업자 신세로 담배 값조차 빌붙어 사는 내가 수백만 원을 빌려 이곳저곳에 기금을 내야 할까.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보니 일부 동지들의 입에서 “왜 총선 전에 창당하자고 해서 이렇게 고생시키는 거야”라는 푸념이 튀어 나온다. 그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만약 내가 혁신파였다면….

    신당파가 ‘총선 전 창당’을 주장했던 그 순간, 신당파가 가졌던 각종 문제의식은 총선 이후로 유보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도로 민주노동당이 아니냐는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에 대한 비판을 달게 받고자 한다. 그리고 그 비판을 책임 있게 받아들이는 것은 총선 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총선 후의 실질적 창당과정에서 신당파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혼신의 힘을 다해 관철시키겠다는 다짐을 한다.

    민주노동당을 깨고 나온 상황에서 총선이라는 눈앞의 정치일정에 참여하지 않고, 그래서 대중들이 민주노동당을 다시 선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오로지 그 충정이었다.

    그 취지에서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설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종자돈을 챙겨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아닌, 새로운 진보정당이 노동대중과 민중들에게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빈털터리가 되어서는 대중들에게 유력한 대안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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