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사파를 이해하기 위한 한 시도
        2008년 03월 21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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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주위의 소위 말하는 ‘주사파’에 평소에 많이 시달려오신 한 지인 분과 점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알 것을 다 알게 된 요즘 세상에서 1980년대말의 이 정치적인 ‘유물’이 어떻게 이렇게 잘 ‘보존’될 수 있는가 라는 것은 저희 두 사람의 공통된 궁금증이었습니다.

    같이 생각하다 보니 현실과 주사파의 상상 세계가 사실상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현실이 아무리 바뀌어도 주사파는 바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주사파의 ‘상상의 정치’를 표현하자면 이게 성교 상대방의 실질적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종의 ‘자위 행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성욕을 극복치 못하는 보통 중생이 실질적인 성행위를 못하는 경우에는 대개 자위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러한 표현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실제로 성인의 절대 대다수는 자위의 경험이 있는 것이고, 이는 정상적인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상(내지 상상)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수 없는 이들은 대개 상상 속에서 가상의 유토피아를 만들고 그 완벽한 유토피아에 대한 찬양을 하면서 충성을 다짐하지 않습니까?

    일부 서구 중산층 출신의 불자들이 보는 ‘오로지 명상에만 잠기는, 평화로운 샹그릴라와 같은 티베트’도 그러한 유토피아에 속하고 (실제로는 티베트 역사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의 서구 마오이스트들이 생각했던 ‘혁명적 열정에 가득찬 신 중국’도 그랬고 (실제로 문혁은 혁명이라기보다는 대규모의 야만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조선 사대부들의 ‘요순시대’나 ‘세종대왕 시대의 치국’도 그러한 ‘행복한 상상’에 속합니다.

    세상이란 바로 고(苦) 그 자체라는 진리, 중생이 있는 곳에 모순과 갈등이 늘 있다는 진리, 국가라는 폭력 조직이 – 그게 달라이라마의 국가든 모택동의 국가든 – 그 성질상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진리는 인간에게 참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입니다.

    그 진리를 안고 산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지요. 가는 데마다, 심지어 본인이 속하는 집단에서까지 모순을 발견하고 자아를 집단과 분리시켜야 하니까요. 그러기에 차라리 집단적인 ‘행복한 상상’, 어디에선가의 유토피아 찾기에 정신을 파는 게 더 쉽습니다. 그것이 광의의 집단적 자위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족’이라는 코드가 아주 잘 통하는 병영형 국가주의적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집단적인 사상적 수음의 행복한 시간’은 필연적으로 ‘민족’을 그 소재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기꾼과 각종 소인배들이 제 이익을 추구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서울 한복판에 앉아서 ‘어진 어버이 수령님’, ‘완벽무구한 사회주의 조국’, ‘어버이다운 배려에 감사를 하면서 조화롭게 사는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운 인민’, 그리고 ‘미제를 언제나 쳐부술 수 있는 민족의 귀중한 핵’을 상상하며는 얼마나 행복해집니까?

    특히 저 악취나는 앙키놈들을 일격에 박멸할 수 있는 ‘민족’의 페티쉬, 핵 미사일을 상상하면 아마도 진정한 극렬 민족주의자라면 거의 클라이막스로 갈 듯합니다. ‘남’들을 언제나 제압할 수 있는 ‘우리’ 강성대국의 ‘힘의 잔치’…

    현실 속에서는 그 놈의 영어와 씨름하면서 나날을 보내야 하지만, ‘외래어를 더 걸러낸 순수한 우리 말’과 ‘충성/효성’ 그리고 핵무기의 고장을 수시로 생각하면 절로 혈액 순환이 빨라집니다. 마르크스가 종교보고 인민의 아편이라 했지요? 요즘은 그 아편이 다양화, 다변화돼 꼭 정통 종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자위 행위가 성생활의 필수적 일부일 것입니다. 집단적인 ‘사상적 자위’는 어떤가요? 아마도 특정 제도 내지 정치적 장치에 대한 비현실적인 집단적 미화는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대다수에게 거의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학교에 올 때마다 성조기라는 역겨운 페티쉬 앞에서 ‘충성 맹세’를 하는 미국 아이들을 보시기를… 그런데 수천만 명이 아사, 폭사했던 모택동 시대의 중국이나 적어도 10만 명 이상의 정치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오늘날 북한을 집단적인 ‘사상적 자위’ 대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도덕적으로 죄가 됩니다.

    아무리 폭력적 포르노를 좋아한다 해도, 사람을 진짜 죽이면서 촬영하는 ‘snuff film’을 그래도 보통 안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문제이기에 ‘민족의 핵’을 운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해서 안될 행위인 셈이지요…

                                                        * * *

    *이 글은 ‘박노자 글방’에 올라와 있는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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