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시간 학원’ 파동, 해프닝이 아니다
        2008년 03월 18일 10:5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서울시의회의 학원 영업 자유화 시도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여론의 역풍이 거세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에 따라 시의회 본회의에서 원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신에 밤 11시나 12시까지 정도로 규제 시간을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학원 24시간 영업 소동은 단지 해프닝인 것으로 봐야 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일단 이번 영업자유화 결정을 내린 주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결정은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가 내린 것이었다. 위원들의 면면은 아래와 같다.

    정연희 위원장, 한나라당, 강서구. 김황기 부위원장, 한나라당, 동작구.
    김배영 부위원장, 한나라당, 구로구. 김영로 위원, 한나라당, 영등포구.
    김진성 위원, 한나라당, 비례대표. 김정재 위원, 한나라당, 서대문구.
    김원태 위원, 한나라당, 송파구. 김철현 위원, 한나라당, 노원구.
    김철환 위원, 한나라당, 중랑구. 김현기 위원, 한나라당, 중랑구.
    나재암 위원, 한나라당, 종로구. 나주형 위원, 한나라당, 성북구.
    배상윤 위원, 한나라당, 성북구. 양영식 위원, 한나라당, 금천구.
    최병환 위원, 한나라당, 중구.
    – 자료출처 :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보도자료

       
    ▲ 서울시의회 모습 (사진=뉴시스)
     

    현 정권 코드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었다. 탈규제 자유화 코드 말이다. 자유화는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실현되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강수를 뒀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 ‘오해였다’, ‘검토했을 뿐이다’ 물러나고, 저항이 없으면 통과시키는 ‘간보기’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탈규제 자유화는 공교육을 파괴한다. 공교육은 애초부터 자기 자식을 자유롭게 교육시킬 자유를 국가가 몰수한 것으로부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자유와 공교육은 서로 상극의 관계에 있다(귀족으로부터 자식 귀족교육 시킬 자유를, 빈자로부터 자식 무식자로 만들 자유를 국가가 몰수한 것이 공교육임).

       
     
     

    이번 학원 영업시간 자유화 파동은 이런 맥락 속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결코 일회적인 해프닝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이어질 것이다.

    탈규제 자유화 바람을 잡은 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학원 영업시간 규제 완화를 제기한 건 서울시교육청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영업시간 늘리기 안을 제안했었는데, 서울시의회가 한 술 더 떠 완전자유화 안을 제출했던 것이 이번 소동의 전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처음 제출한 규제 완화 안은 학원 영업시간 규제를 10시에서 11시로 늦추자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도 대단한 반발이 있었다. 지금 완전자유화를 폐기하는 대신 11시~12시 수정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애초의 서울시교육청 안보다 더욱 강하게 규제완화 되는 것이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새 정부의 급진적, 원리주의적 탈규제 자유화 기조는 여전하다. 서울시교육청의 태도도, 각 지자체의 사고방식도 여전하다.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원칙적인 차원에서 확고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

    교육에 필요한 건 탈규제가 아니라 규제강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교육 부문을 보자.

    1. 가치판단

    사교육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사교육은 ‘선’인가 ‘악’인가?

    첫째, 사교육은 돈이다. 사교육 부담은 모든 국민을 재정적으로 압박한다. 그 댓가로 얻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서울 강남 지역부터 시골 농어촌 지역까지 켜켜이 이어지는 성적 서열구조만 재확인할 뿐이다. 얻는 것 없이 가난해지기만 한다.

    둘째, 한국에서 사교육은 입시 사교육을 의미한다. 입시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아이들의 창조성과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셋째, 사교육은 각자의 재력으로 교육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빈부에 다른 교육격차가 발생한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세습의 사회를 만든다. 아이들은 아무 죄도 없이 부모에 의해 인생이 갈린다. 신분세습과 연좌제다.

    그러므로 사교육은 ‘악’이다.

    2. 정책효율성

    ‘악’을 근절하거나 줄이기 위해선 ‘악’에게 자유를 주는 정책이 효율적인가, ‘악’을 규제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마약 줄이기를 위해 마약 규제정책을 펴는 것이 효율적일까, 마약 자유화가 효율적일까? 도박을 줄이기 위해 도박장 규제가 효율적일까, 도박장 영업 자유화가 효율적일까? 노예노동, 아동노동을 줄이기 위해 노동시장 규제정책이 효율적일까, 노동시장 자유화가 효율적일까?

    이건 상식적인 문제다. 나쁜 것은 규제해야 한다. 나쁜 것을 풀어주면서 나쁜 것을 줄이겠다는 건 거짓말이다. 누구라도 알 만한 일이다. 이제 가치판단과 정책효율성을 연결해보자.

    ① 사교육은 악이다. ② 악을 줄이거나 근절하기 위해선 악을 규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교육 정책은 규제가 정답이다.

    3. 전두환만도 못한 기념비적인 자유화 ‘헛발질’

    탈규제 자유화 원리주의가 이런 상식을 뒤엎는다. 자유화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이다. 사교육 자유화, 학원 자유화. 도박장 자유화와 다를 바 없었다.

    전두환 정권의 정책 중에 딱 하나 칭송 받는 것이 과외금지 정책이다. 서울시의원들에겐 전두환 정권 만큼의 상식도 없었던 것일까? 그 사이에 약 삼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한국에서 ‘상식’은 거꾸로 자라는 나무였다. 완전자유화가 좌절되자 11시니 12시니 하면서 규제 완화를 모색하고 있다.

    현 정부는 탈규제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있다. 결국 사교육 기업 ‘프렌들리’ 소동이었다. 사교육 시장이라도 융성하면 경제 살아난다고 좋아해야 하나?

    불행히도 그간 사교육 시장이 사상 최대로 융성하는 사이 한국경제는 민생파탄 황으로 내달았다. 사교육 시장은 나쁜 시장이다. 이번 규제 폐는 교육적으로도 나쁘고, 경제적으로도 나쁘고, 인간적 가치에 비추어보아도 나쁜, ‘헛발질 프렌들리’였다. 자유화 원리주의가 ‘헛발질’의 원흉이다.

    자유화 기조가 유지되는 한, 사교육 만 아니라 모든 공공영역에서 ‘규제 철폐, 안 되면 규제 완화’ 공세는 ‘쭈~욱’ 이어질 것이다. 자유화 이름 아래 전두환만도 못한 정책들이 연이어 나올 수 있다. 마음 꽤나 단단히 먹어야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