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은 왜 녹색후보를 내지 못했나
        2008년 03월 18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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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드디어 진보신당이 출범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생존조차도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발걸음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민주노동당 탈당파’만의 그저 그런 재미없는 진보정당이라고 하겠지만, 목소리 높여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희망이 필요하지 않냐고 말할 뿐이다.

    어쨌든 희망은 필요하기 때문에

    내 기억이 맞다면,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이 자신의 이름 앞에 ‘생태’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지식인들과 환경운동세력으로부터 시작되어 몇 번의 선거에 참여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녹색평화당’ 등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찌 보면 작은 진전이자, 크나큰 도전이다.

    그러나 제대로 걸어보기도 전에 실망부터 맛봤다. ‘생태’라는 앙상한 단어로 수식될 뿐인 진보신당은 소위 ‘신당파’의 슬로건―‘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에 비해서 명백한 후퇴였다. 발기인 대회에 앞서, 선호하는 당명이 무엇인지 묻는 인터넷 투표에서 ‘초록사회당’이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덧붙여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실망에 결정타를 안겨다 준 것이 16일 발표된 비례대표 명단이다. 창당대회를 통해서 발표되고 투표에 들어간 비례대표 후보에 ‘녹색후보’가 빠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 ‘생태’를 내세우고 출범한 진보신당에서 어떻게 ‘녹색후보’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냐고. 대단히 의아하고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 시기 진보신당의 녹색화 시도의 ‘화룡정점’은 녹색비례대표 후보에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그랬다. 다만 상징성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당장 총선에서 시민사회와 풀뿌리 진영의 지지를 구하고 당내 녹색파를 결집시킬 튼실한 고리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총선 이후 진보정당운동의 근본적 혁신을 위한 ‘재창당’의 길을 열어나갈 중요한 지렛대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실망과 유감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었다. 비례대표 3번. 되었더라면 그것이 녹색비례대표의 순위였을 것이다.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녹색비례대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며 공개적인 비례후보 추천과 심사를 하였고, 섭외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활동을 주목한 당 지도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의 의사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녹색비례후보 추천위까지 구성했는데

    ‘멍청한’ 지도부의 탓이 아니었다. 곤혹스럽게도 “우리의 실력 문제”였다. 1~2주일 안에 녹색비례대표를 만들어내야 했던 시간의 촉박함 탓으로 돌릴 수도 있고, 시민사회와 풀뿌리 진영의 무관심과 거리두기를 탓할 수도 있다.(사실 하고 싶은 말이 여럿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배워야 할 일이다. ‘생태’를 내세운 진보신당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 될지, 시민사회와 풀뿌리 진영의 참여와 협력을 얻어내는데 얼마나 많은 소통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려스러운 일은 진보신당이 녹색비례대표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 사실로 인해 당 안팎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게 될까 하는 점이다. 우선 초록의 가치를 중시하는 당원 혹은 예비당원들이 진보신당이 녹색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진보신당의 평당원으로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저간의 사정을 아는 수준에서 말하자면 이번 경우는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히려 충분한 기회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과하고, 녹색비례대표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실력에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다.

    또다른 우려는 혹시나 ‘녹색비례대표 무용론’이 제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난번 발기인 대회에서 일부 나타났지만, 환경․생태를 이야기하고 시민사회와 풀뿌리 진영의 참여와 협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진보정당운동의 우경화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

    무능력과 연대의 미숙

    이런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과하고 비례후보 하나 내놓지 못한 무능력과 연대의 미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아예 불필요하다고 누군가 주장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진보의 재구성’의 필요성과 그 속에서의 녹색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공유가 부족하다는 자기반성이 이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든다.

    이번 녹색비례대표 후보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녹색화는 포기할 수 없다. 이는 가능하다면 한번 해보는 부차적인 과제가 아니다.

    한편 녹색비례대표 후보는 하나의 전술일 뿐이며,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서 걸어야 할 수많은 길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아쉬움 하나. 워낙 긴급한 일정 탓이라고 하지만, 당 안팎의 많은 당원 혹은 예비당원과 녹색비례대표 후보의 추천 및 섭외 과정에서 충분히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새로운 진보정당, 게다가 녹색후보에 대한 논의라면 결과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과정의 충실함도 더욱더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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