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같은 진보신당을 기대한다
    2008년 03월 17일 12: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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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이 유독 길었는지, 봄볕이 반갑다. 기억이 잘못 되었겠지만, 운동권 행사라는 건 메이데이조차도 추웠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의 엑소더스가 그리 힘겨웠던 모양이다.

진보신당 창당식이 동대문인 건 꽤 괜찮다. 옷 팔고 사는 이들, 휴일을 즐기는 이주노동자와 관광객이 어우러진 풍경은 집회 시위를 즐기는 운동권에게는 낯설고, 진보정당의 주된 지지자인 고학력 고소득 사무전문직들로서는 오래 전에 잊은 모습일 테니까. 진보신당이 진짜 새로 시작하려 한다면, 제법 그럴 듯한 장소이지 싶다.

식전 문화행사에는 비보이가 나왔다. 진보신당 창당대회에 참가한 대개의 사람들에게 비보이는 TV 광고에서는 많이 봤고, 눈 앞에서 보기는 처음이 아닐까? 진보신당 창당대회의 기획자는 남들 다 알거나 다 본 걸, 새롭지 않은 신당의 구성원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이 이즈음 최고의 정치적 메시지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저 같은 마약쟁이가"

비보이의 출연은 진보신당의 표방이나 지향의 과시(demonstration)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비보이 레드핑크크루’의 낭자한 슬랭에는 아무도 화답하지 못했다. 진보신당은 비보이라는 이미 대중화된 기표(記標)를 선택했으되, 그 상징 안에 무엇을 채울지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념에서 우러나온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념의 불확실성을 문화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이념적 정체성 없음을 유행하는 상징으로 모면한 것이 진보신당이다.

배우 김부선은 “저 같은 마약쟁이가”라고 입을 열었고, 시인 송경동은 “나는 고졸이고, 소년원 출신”이라고 고발했다. 거룩한 자리에서 이런 말은 외설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까지 포함되는 우리 사회의 고상한 분들은 마약쟁이와 소년원 출신을 가여워 하되, 곁에 두지는 않는다. 묵묵히 죽어지내는 것은 무방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은 불경이다.

진보신당에서도 그들이 잘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창당대회 석상에서 쓰임직 하다고 생각할 만큼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멀어졌다. 누구든 불만일 비례명부에서 이선근이 6번, 김석준이 4번을 차지한 것은 노회찬이 8번이었던 4년 전보다는 한 발자국 정도 나간 것이다.

레닌이 즐겨 말하던 ‘막대기 구부리기’는 진보신당에도 적용되었다. 비례 8번 김상봉 교수는 “학문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소질은 분노”라고 말했다. 학문이 그러할진대, 정치는 더욱 그러해야 할 텐데, 진보신당은 세련된 다양함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창당대회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분노’ 같은 것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생경한 분노를 삭여야 하는 막대기 구부리기였다면, 앞으로 진보신당의 미래는 다시 분노를 조장하고, 조직하고, 표출하는 막대기 곧세우기로 바뀌어야 한다.

급조 진보신당의 문화 충격

급조된 진보신당은 날 것 그대로의 문화 충격을 주었다.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와 소년원 출신과 비보이가 그 출발을 장식했다. 비록 그 내용이 부실할지라도, 이념적 정체성이 부족할지라도, “나는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간다”고 외치는 것이 옳다.

정체성 없음은 진보신당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했던 모두에게 닥친 문제였고,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이들은 섣부르고 무모한 도전에 나선 자들 중에서만 나왔다.

물론, 새 것은 언제나 옛 것과 공존한다.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대표 그리고 직함을 가지게 된 여러 사람들은 “반드시 승리…” 어쩌구 하는 결의를 스무 여남은 번쯤 되뇌었다. 공적 인간이 공적 자리에서 그리 말치레하는 것이 과히 탓할 바는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 이겨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찬찬한 준비를 허장성세로 대체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진보들과 구별되는 민주노동당만의 고유한 특질이 아니던가?

노회찬 대표 말처럼 “진보신당은 만 년 이상 갈 것이 분명하다”고 믿기는 싫다. 이제 막 끝낸 장정(長征)과 또 다시 나서야 할 장정 사이의 봄 소풍 같은 진보신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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