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는 교육기관? No, 돈버는 하마
        2008년 03월 14일 05: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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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선홍열인 것 같으니 유치원에 보내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출근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다. 이럴 때 평소 하고 싶었던 걸 하게 하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되새겨 평소 엄마 눈치 보느라 못했던 일들을 진탕 한다.

    아예 봉지째로 사탕을 사고, 동생 유모차에 태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장난감이란 장난감에는 죄다 건전지를 넣어 소리 내어 방바닥을 돌아다니게 한다. 고작 이걸 일탈이라고 하니, 아이나 아빠나 참 소심하다.

    음악이 나오는 탬버린을 꼭 쥐고 있는 아이는 잘 논다. 그리 아파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해도 되겠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온통 우울하다. 딱 동네 아저씨인 아빠는 불행히도 부자가 아니니 오죽 할까.

    ‘가진 자만의 자율화’ 시대라서

    여기저기서 떠들어댄다. 대학들은 대학입시 이렇게 바꾸겠다고 지저귀고, 교육청들은 시험본다며 날개짓하고, 서울시 의회는 학원 규제 풀어 올나이트 학원을 만든다며 퍼덕퍼덕 거린다. 새처럼 저 하늘을 날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조류의 비행은 멋들어지게 보일지 몰라도, 지능은 별루다.

    이들은 규제가 무조건 나쁜 것인 양 짹짹 거린다. ‘약자에게는 자율을, 강자에게는 규제를’이라는 말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자율이란다. 그것도 자기들만 자율이란다.

    당연히 민생을 생각하는 날개짓은 아직 없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자율은 보이지 않는다. 입시와 사교육에 찌든 학생들을 위해 ‘자율적으로’ 대학평준화를 하겠다는 대학도 없고, 사람 잡는 등록금을 낮추겠다는 대학도 없고, 시험 부담을 걱정하여 시험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교육청이나 학교도 없고, 사교육비 덜고 학생들 건강을 위해 학원영업 시간을 줄이겠다는 지방의회도 없다.

    교육의 중심은 학생이니, 대학본부나 교육청 따위가 아니라 학생에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없다. 어느 누구도 등록금 책정 권한, 대학입학 권한, 시험 안 볼 권한, 머리 기를 자유와 안 맞을 권한을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일제고사에 항의하며 답안지 제출을 거부하는 교사의 자율성을 다양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뭉개기 바쁘다. 하긴 2MB의 자율화가 ‘가진 자만의 자율’이요 ‘돈 벌 자율’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공룡부처 기획재정부의 자율성

    기획과 예산 편성권을 가지고 있는 티라노사우르스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자율성은 가관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교육부가 아니라 경제부처에 의해 좌지우지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에는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예산을 들먹이며 ‘된다/ 안된다’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힘있는 자의 자율성’ 기조에 맞게 교육정책의 골간을 경제부처가 알아서 마음대로 할 태세다. 지난 10일 기획재정부는 업무보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밝힌다.

       
     
     

    올해 안으로 외국교육기관의 과실 송금을 허용하고, 국내 법인이 외국인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며, 우리나라 학생이 외국인학교에 쉽게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단다. 이 모든 게 경상수지 안정과 경제 성장을 위해서란다.

    과실송금 허용이라~. 송도나 제주 등의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온 외국교육기관이 돈을 벌면, 그 돈을 자기 나라에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사실상 영리행위를 보장한다는 게다.

    학교법인은 비영리법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현행 우리나라 법령인데, 이를 뒤엎겠다는 뜻이다. 2003~2005년 교육운동하는 사람들의 외국교육기관특별법 반대 운동으로 한 차례 무산된 바 있지만, 정부가 바뀐 기념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리고 외국인학교 설립주체 자유화라~. 직접 대놓고 하건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서 우회하여 하건 간에, 삼성이나 현대가 외국인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내국인 입학요건 완화는 물 건너 3년만 있다가 오면 외국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학교로 돈벌이’를 보장한단다. 일단 외국교육기관의 돈벌이가 보장되면, 다음은 우리 학교들 차례다. 등록금 등으로 돈벌이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학들께서 일찍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니, 국내 사학의 영리행위 허용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보는 것과 같다. 여기에 우리 기업의 외국인학교 설립을 허용한다.

    와, 돈 벌자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뻔하다. 삼성, 현대 등 굴지의 재벌들이 외국인학교를 빙자한 학교를 만든다. 대교, 웅진, 메가스터디 등 사교육 기업들도 동참한다. 이 학교, 외국인학교 간판이지만 대부분 우리나라 학생들로 채워진다. 3년 동안 해외에 거주할 수 있는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렇게 있다가 국제화특별전형 등으로 외고나 일류대에 진학한다.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과실송금만 허용되면, 미국의 영리법인 대학들 중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려고 하는 학교 좀 있다. 왜? 돈이 되니까. 여기에 삼성, 현대, 대교, 웅진 등이 숟가락 놓기도 어렵지 않다.

    이미 중앙일보의 경우, 미국 내 76개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영리법인 카플란(Kaplan Inc.)과 제휴하여 2001년에 카플란 어학원을 설립한 바 있다. 조세회피지역을 활용하는 방법도 나올 수 있다. 미국 영리법인 대학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내 학교와 파트너쉽’ 방법은 기본이다.

       
    ▲ 30만 명의 학생이 다니는 미국 피닉스 대학에는 단 한 명의 정규직 교수도 없다.
     

    뭐, 어찌 되었든 외국의 영리법인 대학이나 우리나라 재벌에게는 신천지가 열리는 셈이다. 2007년 4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사교육비 총액 33조 추정, 이 중 지하경제 14조원 정도’라고 발표하여 한나라당을 비롯 여기저기에서 열심히들 인용하였다.

    하지만 불온하게도 그 보고서를 보면서 “사교육비 부담을 걱정한 게 아니라 뒤늦게 시장조사를 했군”이라고 읊조렸는데, 이제 33조원 또는 세금 내지 않아도 되는 14조원의 광활한 시장이 그들에게 펼쳐진다.

    비싼 값에 부자들만의 교육을 팔아서 돈을 긁어모을 수도 있고, 미국 최고의 영리법인 아폴로(Apollo Group Inc.)가 운영하는 피닉스 대학(90개 캠퍼스 30만 학생)처럼 모든 교수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 인건비를 절감하여 돈벌이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수익을 보장하여 경제가 성장되면 그것으로 OK란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학교들

    한창 부처별 업무보고가 진행 중이다. 17일 월요일에는 지식경제부가 예정되어 있고, 20일 목요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대기하고 있다. 2MB 교육공약 중에서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300개 일류고 계획’이 예상된다. 300개 일류고 중에서도 핵심은 100개 자사고다. 2100개 고교 중 5%가 채 안되는 100개.

    앞으로 열흘 안에 외국학교와 100개 자사고로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학교의 윤곽이 그려지지 않을까 한다. 물론 노동자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다. 한 바퀴 굴러갈 때마다 500원짜리 동전이 우수수 길에 널린다는 현대 에쿠스를 아무나 살 수 없지 않은가.

    돈 많으면?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학교를 가서 다시 대한민국 1%를 꿈꾼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 부쳐 먹나? 일단 돈 없는 사람들에겐 자율도 없다.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나 교육에 대한 기대는 일치감치 버리는 게 속편하다.

    열심히 돈 벌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지는 극소수 성공을 제외하고는 20여 년 넘게 꿈으로만 머문다. 그래서 제일 좋은 건 사회복지도 잘 되어 있고 빈부격차도 적고 학벌도 없고 입시도 없고 교육이 환상적인 핀란드로 이민가는 거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민은 아무나 가는 게 아니다.

    어미가 퇴근 길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다. 선홍열이 아니라고 의사가 말했단다. 이런~ 제길. 나중에 소아과에 가서 인상 한 번 팍 써줘야겠다고 아비는 생각한다. 하지만 동네 돌팔이야 그렇다 치지만, 큰 돌팔이들은 어이 할꼬. 그러면서 아비는 오늘도 아이에게 목말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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