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함께에 대한 저주는 수명을 다했다”
        2008년 03월 12일 03: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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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다신 동지(이하 존칭 생략)의 다함께 ‘저주’는 적어도 논리라는 면에서 그 수명을 다한 듯하다. 지루하게 길었던 이전 시리즈보다 더 길어진 정다신의 다함께 재비판에는 새로운 것도 없고 논리적 자가당착과 중상(中傷)은 여전하다.

    물론 새로운 주장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아닌 이전 글에서 드러냈던 모순을 확인시켜 주는 새로운 증거일 뿐이다.

    또 지난 번에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연구 결과’가 아니라며 전지윤, 강동훈 동지의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하던 정다신이 이번에는 “본인 외 객관적인 수천 개 이상의 연구 결과”라며 자신의 논리를 ‘비독립적, 비자주적’으로 변호하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우선, 정다신은 자신은 “국유화=사회주의”라는 주장을 한 바가 없다며 앞선 전지윤, 강동훈 동지의 비판을 기각하려 한다.

    그러나 “사적 소유와 시장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자본주의적 축적과 경쟁의 의미를 갖는다는 기초적 사실”을 언급하여 또다시 사적 소유를 체제 판단에 대한 주요한 기준으로 돌려 놓고 있다. 또 다른 문장에선 소련 붕괴 후“사적 소유와 시장의 부활로 먼저 ‘계급’이 부활했다. 자원으로서 정치적 접근 정도에 따른 권력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계급 권력이 부활했다”고 주장한다.

    자본 축적과 재산 축적을 혼동

       
     ▲ 차우셰스쿠 부부를 신격화한 그림. 적지 않은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가족이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을 독점했다.
     

    정다신은 “자본축적의 기본적 상식인 상속권”이 소련 지배자들에게 없었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다신은 맑스주의적 의미의 자본 축적과 개인의 재산 축적을 혼동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시장자본주의에서도 생산수단인 기업을 소유하지 못하는 고용 사장들, 거대 국유기업 사장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자원에 대한 정치적 접근권을 가진 막강한 권한의 고위 관료들(정치적 자본가)의 존재는 또 어떤가. 웬만한 시장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고용 사장직과 관료직을 상속하진 않는다.

    정다신은 계급 개념에서만 혼돈이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축적과 경쟁은 자본주의 이전 생산양식에서도 존재했”고 “사적 소유와 시장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자본주의적 축적과 경쟁의 의미를 갖는다는 기초적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놀라운 주장이다. 개별 자본의 경쟁적 축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기본 동력이라는 것은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출발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맑스는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이며 예언자이다.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을 위한 경쟁!”이라고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을 표현한 바 있다.

    맑스주의의 가치법칙,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과 공황 이론이 모두 경쟁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속성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 시장이 전자본주의 시대의 시장과 다른 것은 시장이 바로 경쟁적 축적을 통해 끝없이 생산관계와 생산력을 혁신해 가는 데 있다.

    그래서 정다신의 초역사적 시장 개념은 결국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모순은 이미 강동훈 동지의 글에서 지적된 바 있다) 레닌 생전 러시아 상황에 대한 그의 비관적 해석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혁명 후 러시아가 사회주의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사적 소유 폐지만으로 사회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요된 후퇴인 기형적 노동자 국가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유럽 혁명의 확산을 통한 지원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레닌과 트로츠키가 ‘국제 혁명, 특히 독일 혁명 없이는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던 것이다.

    정다신의 신경질적 고뇌는 결국 소련이 사회주의라는 오랜 믿음과 시장 경제의 우월성이라는 새로운 확신 사이의 모순에서 비롯한다.

    왜 그런가 검토해 보자. 정다신은 “소련과 경쟁을 한 상대 진짜 자본주의 국가들은 왜 붕괴하지 않았는지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어떤 설명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정다신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쟁에서 패배했는지를 어떻게 설명할까.

    정다신은 초역사적 시장의 우월성을 설파

    이에 정다신은 뚜렷한 답을 내놓진 않는다. 다만, “시장체제가 아니어서 사회에서의 수요와 소비자들의 욕구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했기에 심지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조차 시기에 따라 이전 년도의 통계에 근거한 예측만을 바탕으로 투자의 우선 순위가 정해져서 극심한 불균형이 생겨나는 소련식 명령-계획경제의 기본적 특징”에 대해 주장한다.

    다시 한 번, 초역사적 시장의 우월성을 설파하는 정다신은 소련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 체제의 우월성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불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을 논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적 사회 변화의 전망을 포기한 정다신이 트로츠키의 정신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트로츠키를 심각하게 모욕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죽기 직전, 이런저런 실수는 있었을지언정,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나의 확신은 변함 없다”고 남긴 바 있다.

    무엇보다 트로츠키는 실천적 혁명가였다. 정다신이 ‘트로츠키의 정신’을 참칭해 트로츠키주의자들 뿐 아니라 트로츠키의 삶과 사상마저 왜곡 중상하는 행위는 그래서 정당하지 못하다.

    시장 경제가 선천적으로 생산성 면에서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한 국가자본주의론의 고전적 반박은, 이 주장이 초기 소련 경제가 수십 년간 급속하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경제 규모와 성장률, 복지에서 70년대 중반까지 남한보다 우월했다. 50년대에 가능했던 것이 왜 30년 뒤에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40~60년대의 추세였던 자기완결적 경제 전략(흔히 수입대체전략이라 표현된)은 이윤율 하락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세계경제의 국제화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경제의 재구조화라는 압력에 직면했다. 이것이 정다신이 말한 60~70년대 이후 소련과 동방 블록 국가들에게 처해진 세계경제의 압력이었다.

    이처럼 소련 경제의 성공과 위기는 세계 경제의 추세와 동떨어져서는 설명할 수 없다. 국제 자본주의 경쟁 관계 속에 있는 소련 경제에서 끊임없는 확장과 생산성 혁신의 압력은 국제 경쟁의 압력에 바탕한 것이다. 소련 관료들은 끊임없이 서방 경제와 노동생산성과 생산 비용을 비교했다.

    더구나, 시장 체제가 “사회에서의 수요와 소비자들의 욕구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시장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의 풍토병인 과잉 축적, 또는 과잉 공급에 따른 주기적 공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 관료’들은 권력과 생산수단을 세습했다

    자본주의 시장은 생산자가 불특정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따라서 시장 쟁탈전과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 낭비는 자본주의 시장의 풍토병이다. 생산은 필요가 아니라 판매-이윤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인민’의 필요가 아니라 소련 국가(또는 국가경제와 국유기업)의 이윤을 위해 경제가 작동했던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인 것이다. 소련 관료들의 재산과 상속 여부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지만 1차 기준이 되질 못한다. 더구나 구소련과 중국, 북한 등에서 관료들이 생산수단과 정치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권을 세습 상속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한편, 정다신이 군비 경쟁의 효과를 단지 상품 수출로만 이해하는 것도 맑스주의에 대한 천박한 이해를 보여준다. 자본주의에서 시장 경쟁이 군사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은 바로 레닌의 『제국주의론』이었다.

    자본간 경쟁이 일국 범위를 넘어서 국제적 경쟁으로 발전하면서, 자본과 국가의 결탁을 통한 제국주의 군사 경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리다. 미소간 군비 경쟁은 생산비 경쟁을 포함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정학적 영토 분할을 포함한 제국주의 경쟁이었다.

    체코와 헝가리의 민중 봉기에 무력 진압을 시도한 것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바탕한 군사 행동이었나? 아프가니스탄을 무단 침략한 것이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 ‘혁명’을 방어하기 위한 노동자국가의 결정인가?

    반대로, 36년 프랑코의 파시즘 반혁명에 맞선 스페인 혁명에서 소련이 군사적 지원을 꺼렸던 것은 또 어떤가. 소련에서 군비 증강은 노동계급의 자주적 결정은 고사하고, 국제 노동계급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수많은 증거들이 소련, 북한 등 국가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성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정다신 스스로 “강제노동을 이용할 수 없게 된 그 순간”이라는 문장을 통해 관료들의 무지막지한 특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관료들이 경제 자원에 대한 정치적 통제권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다신이 무시하는 바로 그 통제권의 독점 덕에 교육, 경력 등의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여 자신들의 계급 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급격한 사유화를 특징으로 하는 급격한 시장자본주의 전환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새 백만장자 중에 관료 출신이 아닌 자가 일부 있다고 해서 이 논리가 기각될 필요는 없다. 한국에도 노무현, 이명박처럼 계급 상승을 이룬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국가자본주의 관료가 새 자본가로

    정다신은 “어느 자본주의 국가가” “다른 국가의 생산 비용과 비교하며 항상 자문해야 하는 해괴한”의 “경제적 운용을 하고 있는지 보여” 달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 역시 그 몇 줄 아래 단락의 “세계 자본주의 경제로의 편입 정도가 심할수록 국제적 수준의 가격의 압박을 받는 것은 상식”이라는 주장과 모순된다.

    한미FTA를 추진하며 노무현 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은 국가 경쟁력이었다. 이중 농업 구조조정의 핵심 명분은 미국 등 대규모 농업과 경쟁하기엔 생산성, 국제 가격에서 손해라는 것이다. 정다신의 궁금해하는 ‘해괴한 경제’는 바로 여기 2008년 한국에 있다.

    정다신이 경제신문들과 조중동을 주의깊게 본다면 ‘다른 국가의 생산 비용과 비교하며 항상 자문’하는 자본가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가들이 높은 토지 가격과 인건비에 대해 투덜대는 것은 국제적 경쟁의 징표이다. 국제 시장에 물건을 내다파는 자본가들은(다국적 기업이든 소련식 국유기업이든) 국제 가격과 생산성 비교라는 가치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유럽 블록이 서방 블록보다 더 낮은 무역 가격을 고수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제국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소련의 막대한 보조 때문이었다. 보조금을 통한 가치법칙의 왜곡은 이후 구조조정의 부담을 더 크게 했을 뿐이다.

    정다신은 또 국가가 제공하던 무상교육, 무상의료, 각종 할인 혜택이 사라지고 복지에 대한 국가 보조가 크게 후퇴했던 현상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후퇴라고 설명한다.

    물론, 소련 노동계급의 삶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환 이전의 상품이 부족한 상점이나 살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해진 상점이나 노동계급이 삶이 경제 성장에서 소외됐다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볼 순 없다.

    또, 90년대 이후 이런 후퇴는 소련과 동유럽에만 한정된 지리적 현상이 아니었다. 소련 몰락 이후 지구적 차원에서 세력 관계와 이데올로기에서 우위를 점한 서방 시장자본주의 진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복지 국가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국유 기업과 공공서비스들이 사유화됐고, 노동시장은 유연화됐다.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은 후퇴했다.

    장기적 이윤율 하락에 직면해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표방한 국가자본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세계 경제의 국제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왜소한 동유럽 블록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동방 블록의 붕괴는 이 과정의 일부였고, 이후 벌어진 복지 후퇴는 신자유주의적 공격이라는 전 세계적 과정의 일부였다.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정다신의 악질적인 ‘아니면 말고’식 왜곡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벌써 몇 차례나 전지윤 동지와 강동훈 동지가 사실무근이며 근거를 대라고 반박했고 조나선 닐의 책까지 근거로 들며 반박했다. 따라서 정다신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최일붕은 신학 아니라 종교사회학 전공

    그런데 정다신은 여전히 아님 말고식 왜곡과 중상비방을 계속하고 있다. 정다신은 “모든 자료가 한국에 있다”며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보여줄 터”라며 빠져나가고 있다. 정다신이 언급한 해외 조직의 과거 자료는 모두 그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검색할 수 있다! 영국 좌파 조직의 과거 입장에 대한 자료가 왜 한국에 있는지도 납득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그는 근거도 못대고 한국에 땅 속에 파묻어 둔 귀한 자료라도 있다는 듯이 발뺌하고 있는가? 정다신의 이런 태도는 명백히 사실을 왜곡하며 사회주의자들을 모독하고 우롱하는 명예훼손 소송감이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베트남 민족해방 전쟁을 무조건 지지했던 것은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위대한 전통이다. 이 전통은 오늘날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국제 반전운동에 국제사회주의자들이 기여한 바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남한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다신이 비겁하게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식으로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역사와 전통을 왜곡하는 것은 참을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행위다.

    비겁함도 여전하다. 예를 들어, 최일붕 동지가 ‘영국으로 유학을 간 신학도라 영국 SWP를 추종하게 됐다’는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자 사실 관계가 뭐 그리 중요하냐며 한 발 빼더니 이제는 다시 “내가 틀린 것은 딱 하나, 순간 착각한 유학국”이라고 강변한다.

    그가 틀린 것은 유학국만이 아니다. 정확한 사실은 최일붕 동지는 미국 유학 시절, 신학이 아니라 종교사회학을 전공했다. 이런 지엽말단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건 정다신 본인이다. 이런 문제를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도 정다신 자신이었다.

    아울러, 베네수엘라에 대한 정다신의 얘기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공사 외에는 아직도 친미적 대자본가들의 사적 기업 체제가 우세하다. 차베스가 국가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정다신의 일면적 주장과 달리 오히려 차베스의 약점은 대자본가들의 권력 원천인 사적 소유권에 충분히 도전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복지국가 해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지지하듯이 차베스의 개혁과 베네수엘라 민중운동의 개혁 수준이 아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변화에 머물고 있다 해서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종파주의자들의 것이지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전통이 아니다.

    우리는 차베스의 제국주의 도전이 아래로부터 노동자 운동을 고무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물론, 차베스의 미래가 결정돼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차베스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독립적인 혁명 조직과 대중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이론적 규정과 실천적 전략 전술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정다신은 남한 국제사회주의자들이 김대중과 조순 지지를 엄청난 비밀을 폭로하는 듯한 태도로 다룬다.

    그러나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숨긴 적이 없다. 독자적 노동자 정당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당 독재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선진적 부위조차 선거에서 자유주의 야당을 지지함으로써 억압적 국가 체제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자 했던 시절이 있었다.

    노동자 정당 없어서 자유주의 야당 지지

       
    ▲ 1992년 대선 당시의 김대중
     

    그래서 1992년 전노협은 대선에서 거대 여당 민자당의 김영삼에 맞서 김대중 지지를 결정했다. 1995년에는 전교조 탄압 주역인 신한국당 정원식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야당 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광범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선거를 통한 집권 그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비판적 투표 전술은 말 그대로 선거 당일 표 찍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제가 되는 건 당시 자유주의 야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 추종’했던 일부 좌파들의 태도였다.

    우리는 민주노총이 1997년 독자 대선 후보를 낸 이후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상징하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승리21)을 지지해왔다. 정다신은 독립적 노동자 정당도 없던 시절의 비판적 투표 전술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지를 드러냈을 뿐이다.

    구체적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은 구체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예컨대 레닌은 1905년 혁명 당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가퐁 신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했다. 짜르에게 청원하는 방향으로 노동자들을 이끌던 가퐁 신부가 경찰첩자로까지 의심되고 있었지만 레닌에게는 그가 노동자들의 요구와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그를 지지하며 운동에 개입하고 노동자들과 접촉하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남지구당 사건’을 짚어 보자. 정다신은 처음에는 어마어마한 불법과 당규 위반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호들갑을 떨더니 점점 후퇴해서 이제는 ‘도덕률의 위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관성 면에서 확실히 정다신은 자격 미달이다.

    다함께는 중앙당 지도부 뿐아니라 당시 강남 지도부와도 협의해 강남지구당으로 단체 이적을 했다. 어떤 당규 위반 판결을 받은 바도 없다. 학생위원회로 속해서 활동하고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던 당시에 당규상 모든 당원이 지구당에 소속돼야 했기 때문에 학생 부문의 독자 활동을 유지하고 의견을 대의하기 위해 단체 이적을 했던 것이다.

    문제는 비현실적 규정에 있었고, 이 점은 지금 학생위원회가 당규를 통해 독자 활동을 보장받고 활동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것이 어떤 ‘도덕률’에 미달했는지 정다신이야말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다신은 내용없이 글을 길게 늘어놓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정다신의 길고 지루한 글(과 논리)는 결국, ‘다함께가 싫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거창한 수사들 속에 숨겨진 속내 – 시장이 계획경제보다 더 우월하다 – 를 드러낸 정다신이 변혁 좌파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고, 그러한 의사 표현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곳곳에서 발견되는 비문(예컨대 “비조직적 비정규직 문제보다 대규모 조직 노동 운동이 혁명 구상에 가장 적합하기에 정규직 노조의 입장을 더 대변하기도 한 현장의 상황과 다른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라는 문장은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은 감정에 치우친 그의 장황한 논리를 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 엄청난 분량의 왜곡과 우기기가 다함께가 펼쳐 온 운동들의 정당성과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그것은 활동가와 급진적 청년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며 자신의 정치 노선을 선택할 줄 아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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