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과 협력, 적절한 조절이 바람직
        2008년 04월 13일 05: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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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권, 즉 참정권이 없는 해외 영주권자인지라 총선의 날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멀리에서 응원만 했을 뿐입니다.

    진보신당의 원내 진입 실패에 많이 낙담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이가 한 달도 안되는 ‘꼬마 정당’이 ‘거의 3%’를 얻는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외정당, 전화위복 계기 될 수도

    그만큼 ‘구태를 벗어나는 진보’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이고 그만큼 희망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 국가 차원에서는 진보신당이 전혀 의회 권력에 4년간 접근 못하는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권력에 접근을 못하는 만큼 조금 더 대중적으로, 투쟁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지금 다가오고 있는 세계공황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는 투쟁하는 자만이 정치권에서 ‘진보’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잔류)민노당에 계속 남아 계시는 ‘다함께’ 급진주의자 분들께서 찬동하지 않으실 듯하지만, 저는 오히려 진보신당이 (잔류)민노당보다 더 왼쪽"으로 갈 가능성이, 일부 방면에서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신당은 의회 권력뿐만 아니고 정규직 대형 노조라는 ‘이권’으로부터도 비교적으로 자유로워 운신의 폭이 더 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잔류)민노당의 모든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제가 진중권 교수와 달리 (잔류)민노당이 "결국 자멸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원, 사천에서의 선거 결과를 보시지요. 조직화된 노동자와 농민의 표로 민노당 후보들이 재선의 꿈을 이룬 것은, 거기에서 그 당이 이미 ‘지역적인 계급 정당’으로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청소부 국회의원 진심으로 축하

    즉, 노동자, 농민 입장에서는 민노당의 활동가들이 그들을 대변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잔류)민노당을 어떻게 생각해도, 그 비례투표 명단 덕택에 비정규직 노동자(미화원) 대표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진심으로 축하드릴 일이지요.

    참, 비참한 현실이지만, 이 민노당이 아니었다면 노동자, 농민이 70% 이상 되는 나라에서 국회에서 노동자와 농민 한 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즉, (잔류)민노당 지도층 일부의 대북관이 어떻든간에 그들이 농민과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걸 한 순간도 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계급정당이라면 그 지도층의 대외관이 아무리 해괴하다 해도 그렇게 쉽게 ‘자멸’하는 경우들은 별로 없어요. 1980년대 초반까지 소련을 맹종했던 불란서의 공산당을 보시지요. 소련이 망한 뒤에 아주 위축되긴 했지만 노조라는 기반이 있는 만큼 자멸은 안됐지요. 그러니까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화되든 어떻게 되든, 한국의 ‘자주파’가 대형 노조에서 기성의 지분이 있는 만큼 자멸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잔류)민노당은 분명히 표면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사민주의'(통일지상주의와 사민주의적 복지 국가 지향의 결합) 정당이자 엄연히 계급 정당입니다. 계급 정당이라고 해서는 꼭 진보 정당은 아닙니다.

    1968년에 불란서 공산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조직화된 노동계급의 계급정당이었지만 혁명의 불을 끈 것은 궁극적으로 바로 공산당의 공로(?)이었지요. 노조 관료들은 드골 장군보다 어쩌면 기존 체제에 훨씬 더 얽매어 있는 골수 보수주의자들이었거든요.

    아니면 1900년대에 ‘백호주의 정책’의 입안자로 나선 호주의 노동당은 어떤가요? 노조를 기반으로 한 정당인데 보수주의적이다 못해 정상적 보수주의자 이상으로 인종주의적 광기를 발산한 것이지요. 하기야, 김씨 족벌 독재 체제를 어렵게 벗어나 중국에서 은신하는 탈북자를 가리켜 "경제 유민" 운운하는 것은 또 하나의 ‘통일지상주의적 광기’로 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진보신당-민노당, 비판과 협력 관계로

    그런데 그러한 분들의 ‘진보성 지수’가 어떻게 되든간에 10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 농민, ’88만원 세대’들이 그들을 믿고 찍은 것은 사실이니 만큼 일단 진정한 진보의 입장에서는 비판과 협력을 잘 조절하는 게 득책(得策)이 아닐까요?

    정파 연합 식의 ‘패거리적’ 당 건설 방법, 위계 질서와 ‘작은 수령주의’, 책임 있는 당직에서의 20대들의 부재, 북한과 중국에 대한 온갖 괴이한 환상들과 다민족화돼가는 현실의 외면 등은 우리로서는 반면 교사지요.

    그런데 특히 보수주의 광풍이 지금처럼 세게 부는 만큼 많은 이슈에서 긴밀히 협력해야 할 필요성도 클 듯합니다. 물론 1930년대 초반의 독일 진보만큼 지금의 한국의 계급 정당들이 힘을 갖지도 못하지만, 서로 싸우느라 히틀러 등장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비극을 막지 못한 독일의 공산당과 사민당의 전철을 제발 우리가 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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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박노자 글방(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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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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