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고사는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다"
    By mywank
        2008년 03월 11일 0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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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신당은 11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시험지옥 일제고사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전국에서 시험을 봐서 등수를 매긴다는 자체가 마음에 안 들고, 못하는 애들은 얼마나 상처를 받고, 부모님들께 혼나는지 어른들은 모른다. (중략) 이봐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 하루 종일 공부에 썩어가며 살고 있다고 알겠냐? 공부만 잘하면 뭐하니 행복하지 못한데….

    지난 6일 전국연합 일제고사를 본 직후, 서울의 어느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이야기다. 나는 이 글을 곰곰이 보면서, 학창시절 생각이 났다. 풋풋했던 추억이 아니라, 가슴 아픈 기억 말이다.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다른 학교들처럼, 우리 중학교는 학구열이 높았다. 가끔 학교에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틀어주었지만, 우리를 비웃는 듯 행복은 성적순이었다. ‘인정과 낙오’. 복잡한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나는 ‘인정’이란 단어를 택했다. 그리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중간, 기말고사 때만 되면 친구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질투 경쟁 열등’이란 단어가 친구의 눈빛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무서웠다. 특히 내 앞뒤 등수에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더 이상 나는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사각사각’ 문제집을 푸는 연필소리가 ‘으르렁’거리는 정글의 야수의 소리보다 살벌하게 들렸었다.

    가슴 아픈 기억은 빨리 잊고 싶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난 6일 그리고 오늘(11일) 전국의 중학교 1학년들,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은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가혹한 아픔을 겪고 있다. 이제 조그만 교실에서만 싸우는 게 아니라 전국의 친구들과 성적을 볼모로, ‘맞장’ 떠야 했기 때문이다.

    11일 오전 11시,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는 진보신당 주최로 ‘시험지옥 일제고사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은 서울을 포함한 11개 시도교육청에 속해있는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보는 날이다.

       
      ▲신장식 관악 을 예비후보가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집회에는 진보신당 김석준 공동대표, 장혜옥 이명박 대항 서민지킴이 본부장, 박창완(성북 을), 신장식(관악 을), 정경섭(마포 을) 진보신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들, 김민석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학부모들의 등골 휜다. 사교육 조장 일제고사’ 등이  적힌 피켓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는 흡사 초상집 분위기다. 중학교 1학년에 이어 초등학생까지 일제고사를 본 오늘은 ‘참교육의 장례식’ 같았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집회 현장에 나와 있는 ‘어른’들과 그들 뒤로 비치는 교육청의 ‘어른’들의 생각은 사뭇 달라 보였다. 진보신당 박창완 예비후보가 마이크를 잡았다. 박 후보는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자녀들 둔 학부모다.

    “교육당국이 초등학생들까지 교육지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저번에 중1 일제고사를 본 첫째는 시험보고 집에 오자마자, ‘이런 걸 왜 보냐’며 저한테 투덜거렸죠. 또 초등학교를 다니는 우리 작은 아이 같은 경우는 이번 일제고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죠. 아빠보다 일찍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 가르쳐 달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정말 아픕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둘째는 저번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교장선생님이 되면 우리를 괴롭히는 시험을 없애고, 수업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더군요. 오죽했으면 어린 아이가 이런 말을 했을까. 우리 어른들이 곰곰이 고민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어서 장혜옥 본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장 본부장은 교육계에 오래 몸담았으며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다.

    “아이들을 볼모로, 교육을 통해 경제성장의 동력을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은 철저한 ‘시장논리’에 입각해 있죠. 경제성장의 동력이 사교육시장 활성입니까. 또 그동안 아이들에 대한 평가가 왜 서술형으로 이루어졌는지 이명박 정부는 알아야 합니다.

       
     ▲ 사진=손기영 기자
     

    오늘은 참교육이 죽은 날입니다. 또 일제고사는 아이들에 대한 폭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친구들은 적으로 보게 되죠.

    다시 말해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일렬로 줄 세우는 일제고사는 아이들의 정서함양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교육적 처사입니다” 

    일제고사를 치른 중학교 1학년생이 쓴 글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겁니다. 학원에, 숙제에 정말 힘들거든요. 이렇게 까지 하면 경제가 올라갑니까. 올라가지도 않고, 우리만 힘들어지고 정말 이게 뭡니까?

    이어 김석준 공동대표의 기자회견문 발표가 있었다.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는 ‘진단평가’라는 미명하게 과거에 사라진 일제고사를 초․중등생들에게 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을 시험지옥으로 내몰고, 어릴 때부터 승배자로 나누고 줄 세우는 발상입니다.

    요즘 ‘삼성 크레듀 M’ 같은 업체들이 일제고사를 염두 해 두고 모의고사까지 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시도교육감들은 불법적인 일제고사 시행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민석 사무처장이 말을 이었다. “오늘 치러지는 초등학교 일제고사는 아이들에게 부담만 주고 교육적 가치도 없죠. 이번 일제고사의 결과는 5월이나 되어야 나옵니다.

    하지만 보통 학급에서 아이들 지도하는 교사들의 경우 3월 한 달 정도면, 아이들의 학업수준을 알게 되죠. 시기적으로 봐서도 불필요한 평가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을 준비하느라 아이들의 마음은 오늘도 타들어 갑니다.”

    일제고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부정적이었다. 집회장 주변을 지나가는 학부모들을 붙잡고 얘기를 들어봤다. 김정혜 씨 (46)는 “아이들 사이의 무리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 같다.”며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경쟁논리에 넣으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자녀가 중학교 3학년인 이금덕 씨(47) 씨 역시 “우리 아이가 만약에 등수가 낮게 나오면 창피해서, 등수가 높게 나오면 등수를 지키기 위해서 학원에 보내겠다”며 “결과적으로 공부 잘 하는 아이나 공부 못 하는 아이 모두 ‘사교육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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