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보다 위대한 일을 한 소녀에게
        2008년 03월 06일 08: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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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23)씨가 숨진 것은 2007년 3월. 그는 지난 2003년 10월 속초상고 동기 10여 명과 함께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2005년 5월부터 구토와 어지러움증이 나타나고 몸에 자주 멍이 드는 등 이상 현상을 자각하게됐다.

    한 달 뒤 찾은 병원에서는 그가 급성골수성 백혈명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후 2년 동안의 투병 끝에 스물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돈으로 회유하며 비밀에 붙였으며, 약속된 돈마저 다 주지 않았다.

    황유미씨가 숨진 이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독성 위험물질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삼성전자 피해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소극적이고 삼성을 여전히 발뺌을 하고 있다.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떡값이라는 이름의 거액 뇌물을 뿌려대는 삼성이 죽어가는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는 3월 6일 오후 6시 황씨 사망 1주기를 맞아 삼성본관 앞에서 추모제를 연다. <편집자 주>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고향은 미시령 옛길 위에서 보면, 세상 어느 바닷가보다 아름다운 동해 바닷가 속초였다. 소녀는 속초라는 그 아름다운 이름 속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소녀는 그 산을 넘어 도회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그 바다를 넘어 아름답고 진기한 사람들이 많은 바다 너머 다른 나라들을 꿈꾸기도 했다. 다른 세계는 모두 나보다는, 내가 살았던 곳보다는 아름다울 거라는 꿈을 꾸었다.

    때로는 인어공주가 되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되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말괄량이 삐삐, 콩쥐보다 팥쥐를 좋아하는 소녀, 주근깨투성이지만 착한 캔디가 되어 보기도 했다.

    열아홉에 팔려간 아이들

    특출 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심성만큼은 그 나이 때 모두가 그렇듯 비교할 수 없이 착했고 여렸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 나이 때 우리 모두는 죄가 없다. 죄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성인들인 우리들의 잘못일 뿐,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열아홉이 된 소녀는 심청의 마음을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 팔려갔다. 팔려갔다. 우리는 최소한 그렇게 얘기해야 한다. 이 사회는 그가 일한 만큼 주지 않아도 되는 노동력만을 요구하게끔 소위 ‘셋팅’되어 있다. 조직화되어 있다. 대학물을 먹었든 못 먹었든 우리의 운명은 거기서 거기, 몸 팔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아직은 그런 세상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속초상고 친구들 열 명과 함께 팔려 간 열아홉 소녀는 낯선 도시 공장에서 3조 4교대로 밤을 잃고, 별을 잃고, 태양빛을 잃고, 시간을 잃고, 자연을 잃고, 친구를 잊고, 사랑을 잊고, 다른 꿈과 기회를 잊고 일해야 했다.

    방독면을 써야만 하는 죽음의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소녀는 열아홉 나이에 방독면을 써야만 하는 죽음의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청결과 위생만이 생명이라는 그곳에서 마치 모르모트처럼 방독면을 쓰고 일해야 했다.

    관리자들은 잘 들어오기 싫어하는 답답한 밀폐 공간이었다. 한 달 꼬박 일하고도 월 100만 원 정도를 받는 값싼 노동자들만이 들어가 일하는 공간에서 일해야 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삼성반도체 홈페이지. 하지만 기흥공장에는 관리자들이 들어가기 꺼려하는 밀폐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관리자들은 들어오기 싫어하는 밀폐 공간

    만약 개울가에서 빨래를 해야 하는 노동자였다면, 일하다 그 물빛 때문에, 그 물 내음 때문에 어지럼증이나 구토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산에서 나무를 해야 하는 노동자였다면, 그 나무 향기 때문에 살갗에 피멍이 들거나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반도체라는 알 수 없는 기계, 그리고 그 기계를 세척하던 독성의 화공약품들은 아직도 그 모든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위험물질들이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어떤 것도 아직 먹거나, 마시거나, 흡입하면 안 되는 위험물질들이었다.

    그래서 방독면을 씌웠던 것이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그곳에서 1년 반을 일하고 나서, 갑자기 늘 푸르던 소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원인이라면 그 반도체 공장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위험한 화공약품들과 살았던 기억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늘 피곤하고 언젠가부터 구토가 치밀고 어지럽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는 급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유전이 아니면 방사선이나 유해물질들에 의해 환경적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화공약품들에게 “내가 왜 이러니? 혹시 너희들 때문은 아니니?”라고 물어 볼 수는 없었다. 당연히 자신을 데려다 일을 시켰던 회사에 물었다. 사원을 가족처럼 대하겠다고 했던 회사기에 조금은 챙겨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들은 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치료비를 다 대주겠다고 했다. 위로금도 주겠다고 했다. 어쩌면 고마운 일이었다. 그거라도 해주었다면, 그의 아버지도 조금은 참았을 것이고, 이런 오늘(3월 6일)의 집회도 없이 회사도 편해졌을 것이다.

    "입 다물고 있으면 치료비 대주겠다"

    하지만 회사의 약속은 파기되었다. 전체 치료비 정도인 7천만 원을 주겠다고 해놓고는 4천만 원만 주고 그만 땡이었다. 소녀의 집안은 어려워졌다. 할머니가 이게 무슨 일인고 하며 절명해 가시고, 어머니는 신경정신과를 다녀야 했다. 택시기사 아버지는 이젠 갈아야 할 타이어처럼 더 허름해졌다.

    소녀의 머리는 모두 빠져 대머리가 되었고, 체중이 30kg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낫지 않았다. 차라리 인간이 아니었으면 했다. 모든 피를 다 빼내고 새로운 피로 갈아주는 그 무슨 기계만 있는 세상이라면 인간이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를 데려다 쓰고 버린, 그냥 데려다 쓰고 버리지 않고, 까닭 없이 4천만 원을 가져다 준 공장은, 제 돈도 아니고 사원들끼리 모은 복지기금 중 일부를 받아 왔다는 공장은, 사원들 대표가 오지 않고 공장 관리자들이 오던, 그 회사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이었다.

    누가 그 많은 돈을 벌어다 주었는지, 사주 한 사람이 몇 조원의 돈을 가지고 있고, 8천억 원이라는 돈을, 자기 혼자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시켜주었다고 뻐기는 사주가 있는 회사였다. 금융실명제 된 지가 언제인데 수천 개의 유령 계좌를 가지고 누구의 돈인지 모르는 유령의 돈을 주무르는 유령의 회사였다.

    수천 개의 주인 없는 유령 계좌의 돈을 "잘됐다, 국고로 환수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자"고 용기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모든 힘 있는 판검사, 변호사,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에게 돈을 주어 왔다는 이상한 권력, 판명될 수 없는 사주가 있는 회사였다. 너무 어마어마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였다.

    하지만 7천만 원만 건네주었어도 아무 일 없었을 텐데, 4천만 원만 건네 줘서 문제를 더 만드는 쩨쩨한 회사이기도 했다. 축적만 생각하지 나눌 줄은 모르는 회사였다. 전체 사회의 행복과 안녕에는 애초에 관심 없고, 사주 일가의 무한대 축척만을 생각하는 회사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개인이 수 조원을 버나?

       
      ▲지난 해 11월 발족한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참세상)
     

    2년 투병하다 스물셋에 떠나다

    그는 2년간 투병을 하다 스물 셋에 죽었다. 원한을 남기고, 유독 화학물질들을 증오하며. 아니 아무 것도 증오하지 않으며 “엄마 미안해, 아빠 미안해” 하며 항암치료를 하고 속초로 돌아가던 어느 고속도로 변에서 앞좌석에 앉은 엄마 아빠를 보며 조용히 그렇게 떠나갔다.

    자신이 살았던 사회의 본 모습도 볼 틈 없이 일만 하다 죽어갔다. 식민지 시절 어느 군대 실험용으로 쓰이다 죽어 갔다는 어느 인간들처럼 자신의 몸을 이 사회의 건강을 위한 숙주로, 항생제로 내놓고 갔다.

    그의 죽음을 통해, 처음으로 14개 반도체 대공장들에 역학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수십만 명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 실태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당연히 문제가 터지기 전에 그 일을 했어야 할 산업안전공단도 이전에 생각지 않았고, 근로복지공단도 이전에 생각지 않았고, 노동부도 이전에 생각지 않았던 일을 그가 죽음으로서 했다

    이제 모든 반도체 공장, 모든 화공약품 사용 공장은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 역시 조금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물질을 쓰더라도 더 조심할 것이다. 이렇게 산업안전공단도, 근로복지공단도, 노동부도 해주지 않았던 일을 그가 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일을 하고 간 그에게 이 사회는 참 너무하고, 예의 없다. 수십만 명, 세계적으로 따지자면 수억 명에 이를 반도체와 화공약품 사용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이 되어 준 그에게, 이 나라는 산재 보상 하나 해 줄 수 없다 한다.

    수십만 명의 좀 더 쾌적한 환경과 건강보다 이건희라는 사주 하나, 그 일가 몇 명. 그들이 입을 손익 얼마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 말고 무엇이겠는가?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잊지 않을게

    스물 셋. 한참 아름다웠어야 할 친구 유미야, 잘 가.
    너의 못다 했던 꿈들이 이루어질 거야. 이루어지고야 말 거야. 참 평등한 세상, 참 행복한 세상. 참 착한 세상, 참 안전한 세상. 정말 상식이 통하는 세상.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 남의 것 뺏으면 안 돼요, 혼자서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돼요, 있는 사람은 누구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요, 욕심보다 나눔이 존엄한 가치예요, 약육강식은 짐승들의 세계고, 인간사회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그런 간단한 약속과 언행이 지켜지는 사회, 복잡하지 않아도 참 맑고 투명한 세상이 꼭 오고야 말 거야.

    “노조가 있었으면 그나마 좋았을까”라는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게.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해 왔는지는 이제 다시 말하지 않을게. 다 망해버린 사회주의 사회 이런 얘기도 하지 않을게.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니, 유미야, 잘 가.

    좋은 세상 올 때까지 너를 잊지 않을게. 우리 곁에 둘게. 오늘 밤. 저 푸르른 우주의 어느 맑은 은하수에서 돛대도 삿대도 없이, 그 모든 것들이 없어도 되는 그 세상에서 고운 꿈꾸며 잘 자는 너의 모습을 그려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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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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