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2008년 03월 04일 0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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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교육은 교육학 교수들이 망쳤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놀이터여, 줄세우기 시험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맞서다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축복받은 세대일지 모른다. 과외가 금지되어 사교육비가 들지 않고, 대입 시험도 단순하여 사실상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판가름났으니 말이다.

    복잡한 입시전형, 20조 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돈 없으면 사교육도 입시정보도 뒤쳐질 수밖에 없는 지금에 비추어보면, 괜찮았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안의 풍경은 오히려 지금이 낫지 않을까. 잘못 하면 맞고, 잘못 안 해도 맞고, 특히 성적 떨어지면 죽고, 툭하면 시험 보고, 심심할 때마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한날 한시에 시험 보고, 반 석차는 물론 전국 석차까지 공개되고, 그리고 또 맞고, 그래서 밤늦게까지 ‘자율’학습하고, 그게 싫어서 땡땡이치고, 다음날 얻어터지고.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하지만, 그 당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군대 다시 가기와 더불어 꿈에 볼까 두렵다. 물론 일부 범생이들이야 좋게 말하겠지만.

    “컨닝하면 왜 안 되나요?”

    그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있다가 교직에 뜻한 바(?) 있어 사범대나 교대에 진학하면, 술에 절어 있는 나날의 와중에도 몇 가지 충격이 다가온다. 제일 먼저 한국식 시험에 절어 있는 사범대와 교대생들을, “왜 컨닝하면 안 되나요?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모두 모여 상의하면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는데요. 아는 데도 가르쳐주지 말고 모르는 데도 묻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죠?”라는 호피인디언 아이들의 이야기가 맞이한다.

    그리고 ‘경쟁을 시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오른다’는 건 헛된 믿음이라는 아더 콤즈의 『교육신화』가 뒤를 잇는다. 좀더 오래 뭉기적대고 있으면 스탈린의 탄압을 받았던 비운의 마르크스주의 교육학자 비고츠키(Vygotsky, L. S.)도 만난다. 그의 근접발달영역(ZPD) 개념을 통해 혼자서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과 협력을 받아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다.

    당연히 학생 혼자 풀 수 있는 문제가 몇 개인지 세는 평가나 시험은 큰 의미가 없다. 도움이나 협력 속에서 어디까지 풀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평가도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아니, 그럼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했냐고? 대학이라서 가능하긴 했지만, 미리 문제를 알려준다. “이 중에서 두 세 문제 낸다. 지금부터 혼자서 공부해도 되고,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 해도 된다. 찾아보고 의논한 후 시험 당일날 자기 말로 답을 써라”라고 한다. 이것도 부족하지만, 덕분에 매학기 문제를 달리 한다고 머리 쥐 내렸다.

    그건 그렇고 뭐니뭐니 해도 술을 확 깨게 하는 건 평가에 대한 주류 교육학의 입장이다. 보수적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주류 교육학에서도 평가를 줄세우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걸 잘 모르는구나. 다르게 설명해야겠다”는 식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뒤돌아보기 위한 도구라고 본다.

    진단평가니, 형성평가니, 총괄평가니 하여 종류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모든 평가는 반성의 도구란다. 그럼, 50점 맞은 학생은 왜 그 학생이 50점인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말인데, 이 무슨 염장 지르는 소리인가.

    이제까지 50점이라고 60점이라고 얻어터진 볼따구, 대가리 박기, 화장실 청소는 뭐란 말인가. 학교 단위이든 전국 단위이든 석차 매긴 건 다 뭐란 말인가. 시험 봐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아니면 쭉 줄세웠던 교육자들은 사실은 교육자가 아니란 말인가.

    이럴 때 성현들의 가르침, 육두문자가 필요하다. 아니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1 + 1 = 1 이 되는 열 가지 경우를 쓰시오”라는 문제를 풀게 하고 석차 매겨야 한다.

    3월 6일, 학생 대학살이 시작된다

    3월 6일 전국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을 본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개 과목에서 서울시 교육청이 낸 25문항씩의 문제를 가지고 한꺼번에 시험을 본다. 입학하기 전에 학교에서 배치고사를 봤지만, 또 시험을 본다.

    정식 명칭은 ‘진단평가’이나, 학생 입장에서는 배치고사나 진단평가나 매한가지 시험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배치고사나 중간고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학교에서 문제 내고 학교에서 시험 보고 채점하는, 그래서 학교마다 다른 그런 시험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중 1 학생이 한날 한시에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보는 거다. 고 3 수험생이 보는 수능과 유사한 거다. 성적표도 현재까지는 과목별 점수, 전국 석차 백분위 점수(전국 석차를 백분율로 표시한 점수)가 기재된다고 한다.

    하지만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학교별 성적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 시험부터 한 학생의 전국 석차, 그 학교의 석차 등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도 있고, 뒤이어 예정되어 있는 시험부터 그럴 수 있다. 공개 시점이 언제이든 간에 ‘교육’감의 사고가 참 ‘교육’적이다.

    이 시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등 전국의 16개 교육감들이 작년 9월에 합의한 거다. 교육청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거다. 물론 학생들에게 묻지 않았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시험 꼭 봐야 하나요?”라는 학생들의 항변은 ‘자율적으로’ 뭉갠다. 2MB가 권한을 대폭 교육청으로 이양한다고 했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3월 6일의 중학교 1학년 다음으로는 초등학교 4~6학년이 예정되어 있다. 3월 11일에 역시 다섯 과목을 시험 본다는데, 1% 학생들만 보는 표집 진단평가라고 하나, 모든 초 4~6학년이 볼 태세다.

    너무도 ‘교육’적인 교육감님

    정말 ‘교육’적인 공정택 교육감께서는 이미 서울 시내 모든 초등학교에 시험 보라고 공문을 하달하셨다. 경기도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했는데, 아마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이 시험보지 않을까 한다. 다른 시도 역시 오십보 백보로 예상된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회장이신 공정택 교육감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는데, 다른 시도 교육감께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초등 4~6학년 시험은 중 1 시험과 달리 개인별 성적표는 배부되지 않는다. 하지만 5월에 학교별로 소위 ‘미달 학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프로그램이 주어진다. 곧 어느 초등학교는 공부 못한다는 아이가 몇 명 또는 몇 %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14살 중학교 1학년도, 11살 초등학교 4학년도 19살 언니 오빠처럼 전국 시험을 치르는 날이 도래했다. 전국 석차를 아는 날이 언제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 학년 평균 65만 여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문제를 딱딱한 책상에 몇 시간 동안 앉아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한 채 쥐죽은 듯이 시험을 봐야 한다.

    공식적으로 전국 석차나 다른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험보고 나면 교장이나 교사들끼리는 말이 오간다. 교육청에서 은근히 학교를 갈구기도 한다. 비공개라지만, 정보력이 뛰어난 학원이나 학부모의 손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이 얼마 만인가. 10년 만의 쾌거다. 물론 서울의 공정택 교육감께서는 이미 2년 전부터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보고 계셨다. 역시 발빠르시다.

    이렇게 빠른 ‘교육’적 결단에 학생들은 애시당초 없다. 작년 10월 전교조 서울지부가 초등학생 4~6학년 1,500여명에게 지난 2년 간의 일제고사에 대해 물었더니, 시험 결과를 확인한 다음에 13.2%의 아이들이 ‘죽고 싶다’고 했단다. ‘자기가 한심하다’는 아이들도 34.9%나 된단다. 이 대답을 11살, 12살, 13살 아이가 했다.

       
     
     

    하긴 수능 전후로 수험생이 자살을 해도 이제는 주목하지 않는 사회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렇게 학생 대학살은 시작된다. 3월 6일 중학교 1학년을 필두로, 3월 11일 초등 4~6학년, 그리고 10월 29일 중학교 3학년, 12월 23일 중학교 1~2학년,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1~2학년은 올해 년 4회, 고 3은 6회가 예정되어 있다.

    교육부가 보는 표집 진단평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2MB 시대를 맞이하여 권한을 이양받을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이야기된 거다. 11살부터 19살까지 약 6백만 명의 아이들과 그 수백만 가족들에게 16인의 교육감들이 선사한 길이다.

    역시 삼성!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이 만든 사교육 업체 크레듀 M은 이미 3월 6일의 중 1 전국 일제고사를 대비하여 자체 모의고사를 두 번 봤다. 만들어진 지 1년도 안 된 업체가 다른 업체들보다 발빠르게 움직였다. 1월 말에 한 번, 2월 말에 한 번 하여 온라인으로 접수받아 모의고사를 봤다. 물론 무상이 아니다. 학생 1인당 2만원씩 받았다. 한 번에 약 6천 명씩 응시했다고 하니, 도합 1억 원이 넘는다.

    다른 사교육업체는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앞으로 시험은 많다. 그리고 삼성 크레듀 M의 모범도 있고 하니, 16인의 시도 교육감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시험에 발맞춰 사교육업체의 다양한 수익사업이 점쳐진다. 11살부터 19살까지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죄인지.

       
    ▲ 대교 눈높이의 TV 광고 ‘놀이터야 안녕’
     

    한편, 최근 들어서는 학교를 군대에 비유한 CF도 등장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으로 놀이터를 바라보는 튼튼한 남자아이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광고가 그거다.

    대교 눈높이의 ‘놀이터야 안녕’ 편 CF에서는 “3월이면 학교 간다. 내 아이가”라는 엄마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뒤이어 남자 아이가 “놀이터야 안녕”이라고 한다.

    모델이 되었던 아이의 부모가 광고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CF에 자기 아이가 출연해서 대견스럽게 생각했을지, 아니면 학교는 군대고, 학교 가면 놀이터는 끊어야 한다는 CF를 보며 다른 생각을 했을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대교 눈높이의 시각이 충격이다. 군대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미리미리 사교육으로 대비하라는 말인가, 이제 아이를 놀이터에 보내지 말라는 말인가. 한국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기는 하나, 아이에게서 놀이터를 빼앗아야 한다는 시선은 기가 막힐 뿐이다.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놀이가 학습이고 학습이 놀이’라는 교육학의 상식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와 엄마의 돈을 챙기려고 하는 마음이 서글프다. 또한 대놓고 “아이를 놀리지 말고 학습지 풀게 하라”는 그 자신감에는 할 말이 없다.

    전국의 놀이터가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3월 6일 학생 대학살의 날에 “놀이는 학습이고, 학습은 놀이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신들의 쇠몸뚱이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 땅의 참 교육자들과 함께 “너희가 교육을 알어?!”라고 저항하였으면 한다.

    언제나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미끄럼틀의 마음이 만방에 울렸으면 한다. “아이를 빼앗아가지 마라”는 그네의 몸짓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으면 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학교에 손 대고 싶으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부터 고쳐라”는 놀이 기구들의 외침이 저 푸른 하늘에 가득 하기를 꿈꾼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교육은 갔습니다
    참교육의 길을 깨치고 인간파괴 숲을 향하여 난 줄세우기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시험지가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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