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지지에서 자주파 지지로
        2008년 03월 03일 07: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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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부분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1차 베트남 전쟁은 방어를 포기한 한국 전쟁보다 무려 4년 전부터 시작되어 불과 한국 전쟁 종전 다음 해인 54년에 종결된 전쟁인데,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는 거짓은 도대체 언제 고쳐질 것인가?

       
    ▲ 국제사회주의자 그룹은 스탈린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전 반대’를 거부했다. 사진은 베트콩 용의자를 물고문하는 미군. (사진=War Remnants Museum, Saigon, Vietnam)
     

    상식적으로 프랑스의 월맹에 대한 공격에 대해 심지어 몇 년 뒤에 일어났던 한국 전쟁과 다르게 월맹을 지지했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함부로 명예훼손 고발 운운하는 작은 스탈린에게 공포감마저 느낀다.

    수십년 전 영국의 조직의 역사에 대해 논의하는데, 그것을 두고 명예훼손 고발을 감히 운운하다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자료가 한국에 있으니 어떤 식으로 하든지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보여줄 터이니, 그 이후에는 그 오만함에 반성이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좋다. 1차 베트남전까지도 제국주의 패배를 외치고 월맹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했다고 우기니 백 보 양보하여,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한국 전쟁과 비교했을 때의 변명을 들어 보도록 하자.

    같은 시기 1차 베트남전과 한국전에 다른 입장?

    전지윤은 그 당시의 전쟁에서의 입장이 아니라 얼렁뚱땅 북한이라는 ‘국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았는데, 그런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쟁 상태의 동시대 베트남 전과 한국 전쟁에서의 입장 차이와 그리고 정반대의 경우인 소련의 아프간 침공시의 그대들 모조직의 주장의 모순에 대해 해명해 보길 바란다.

    강동훈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다함께는 2차 베트남 전쟁시 베트남 인민전선을 지지하다가 그들이 권력을 잡은 후부터는 그 베트남 혁명마저 타도해야 할 국가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인민은 버튼 하나로 180도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로봇이 아니다. 다함께는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처럼 당시 베트남전 반전의 물결이 결국 제국주의 지배에 위기를 가져오고, 전 세계적 혁명이라도 날 것처럼 착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세계 혁명의 전망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월맹을 정치적으로까지 지원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표현으로 국가자본주의 국가로 버티고 있는 한 월맹의 승리는 자신들 주장에 의할 경우 곧바로 또 다른 국가자본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 그들의 승리를 지지하는 건 무슨 쇼인가?

    이미 베트남 혁명의 결과는 노동자 계급이 아닌 그대들이 비아냥거리듯, “서구 유학파 지식인과 농민들의 게릴라전에 의한 스탈린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수립”일 수밖에 없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본인은 단 한 번도 베네수엘라 국가 기구 자체를 대안으로 그대들이 지지했다고 한 적이 없다. 어떠한 사회주의적 혹은 진보적 조치가 있더라도, 그 후의 과정을 국가자본주의 체제 수립으로 규정하고 타도해야 할 체제로 삼는 다함께의 주장은 황당하다.

    그리고 그 논리를 따르자면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는 차베스가 이미 권력을 잡은 상태에 있으며, 혁명을 통해 집권하지도 않았고, 매우 현명하게도 시장 체제 부재의 구시대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국가자본주의의 길 자체로 가고 있는데 무슨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분명히 하였다.

    더더군다나 무조건적으로 ‘노동자 자기 해방의 과정’이 아닌 방식의 빈민과 인디오 농민들에 기반한 운동은 그대들이 과거의 혁명을 쉽게 재단하는 논리대로라면, 처음부터 국가자본주의적 길을 노정하고 있을 뿐더러, 아예 혁명도 아닌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차베스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국가 소멸론을 믿지도 않았으며, 전적인 소유 철폐 후 노동자 생산 통제와 같은 구상도 없었고, 국가 기구를 애초부터 파괴할 생각이 없었는데 무슨 과장을 하고 있는가?

    미국에 석유 파는 차베스

    세계 혁명이 부재하여 자본주의 반동이 올 수밖에 없었다는 늘 나오는 주장은 왜 안 하는가? 게다가, 옛 소련 등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심지어 미국과 막대한 양의 석유 등의 거래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국가자본주의적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차베스는 경쟁과 축적의 논리, 사적 소유와 시장 모두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대는 진정 현재 베네수엘라 노동자 민중의 운동이 혁명 정당에 의한 폭력 혁명 후 그 파산한 사회주의 체제 수립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동훈은 필요할 때는 미 제국주의에 방점을 더 찍기도 하고 정반대로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처럼 참 편하게 논리를 전개한다. 또 신당론에 끼워 넣으려고 핏대를 세우며 심상정 비대위나 신당파가 소위 일심회 사건과 북핵 문제에서 우경화, 개량주의화되었다고 하는데 양심이 있으면 솔직히 그대가 그 상황에 대한 것만 언급했다고 생각하는가?

    본인을 끊임없이 그 지긋지긋한 신당파론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도 못알아 들으니 간단하게나마 언급하도록 하겠다.

    첫째, 본인은 그대의 바램과는 달리, 신당파들을 마치 의회주의에만 몰두한 걸 넘어 아예 국회의원 자리에 환장한 것처럼 서술한 것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수없이 이야기해 왔다시피, 남을 함부로 개량이네, 우경화네 하며 몰아세우려거든 자신의 조직의 ‘진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우경화, 개량주의의 모습을 더 반성하라는 것이 내 글의 주장이었다.

    강동훈은, 자신들이 저 멀리 영국의 이론을 그대로 따라 하여, 급진적 노동자 계급은 조순과 김대중을 지지해야 한다고 수없이 많은 팜플렛과 신문들에서 떠벌린 것은 기억에서 편히 지워버렸나 보다.

    셋째, 북핵과 일심회 사건만으로 한정하더라도 지금의 사태에서 미 제국주의의 대북 압박에 대한 입장이 그 핵심적인 요인이 아님에도 진정한 방어의 목적과 대상을 일부러 회피하거나 헷갈리는 모습 그 자체가 자신들의 이중적인 태도의 발로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대는 단순히 신당파와 심상정 비대위가 남한 미국보다 북한을 더 혐오해서, 북핵 사태의 근본 원인이 미 제국주의와 남한 지배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김일성주의자와 갈라서려 한다고 생각하는가?

    신당파가 미국을 편드는가?

    지금 당장 북핵 문제로 미국과 북한의 대치 정국인데 소위 신당파가 미국에 동조하고 북을 비판하고 있는가? 진정 현 사태에서 북핵 문제와 일심회 문제 때문만으로 당원들이 탈당을 하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말이다. 사태를 왜곡해도 이렇게 왜곡할 수는 없다. 정말 당을 숙주로 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더니, 당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가 싶다.

    SWP(사회주의노동자당)가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보다 소련에 더 혐오했다는 본인의 주장의 진정한 의미도 바로 같은 선상에 있다는 걸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그대에게 다시 이야기를 하겠다.

    조직된 노동자 계급의 해방 운동도 아닌, 봉건적, 종교적 요소에서도 저항하는 이슬람 민중에게 미국의 돈과 무기를 받아서라도 소련 제국주의에 대항하라고 부추겨 놓고 전쟁에 승리한 뒤 하루 아침에 그들에게 이슬람과 이슬람 지도자, 봉건 왕족이나 지배 계급을 타도하자라고 하는 게 자신들의 논리 만족 외에 어떤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과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듯, 북한 관료 집단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남한에서 저항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 탄압에 대한 반대라는 보편적인 차원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의 진보정당에서의 구체적 진보 정책 실천에 있어서의 문제를 생각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존재하는 김일성주의 운동의 해악에 대한 비판과 그 비판 수용 구조의 부정에 의한 분리 정립은 불가피한 것이다.

    다수 노동 대중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그에 기반한 운동 진영 내 다수파에 ‘기생’하여, 그들을 언젠가는 획득하여 혁명으로 나아가겠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김대중과 조순 지지에서 자주파 지지 등 대중추수주의의 혐의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정세적인 문제이기에 연대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소규모적이고 파편적인’ 비조직적 비정규 문제보다 대규모 조직 노동 운동이 혁명 구상에 가장 적합하기에 정규직 노조의 입장을 더 대변하기도 한 현장의 상황과 다른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개량주의로 몰리지 않는 방도이지 않겠는가? 이런 ‘사실들’ 겉모습 자체만 보면 운동 진영은 그대들을 개량주의와 우경화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어떤 학자나 이론가, 활동가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는 이론틀이 적합하다고 그의 그외 이론 모두에 동의해야 하며, 그의 이후 전망에 대해까지 절대로 동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니,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트로츠키 핵심 사상 거부하는 트로츠키주의자

    강동훈의 다함께도 트로츠키의 핵심적 사상을 오류라며 거부하면서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라 하는 것은 무슨 앞뒤 안 맞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트로츠키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분석과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정세 분석의 틀 자체는 훌륭하지만, 그들의 전망은 현실과 맞지 않아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그의 사고 구조가 의아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진정한 좌파라면 거대한 국가사회주의의 실험의 실패를 목도해온 후에도 그렇게 쉽게 원칙만을 외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무엇을 방어해야 하고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전형적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강동훈은, 혁명 후 내전이 끝날 무렵 외부의 직접적 위협은 감소했지만 공업 기반과 경제 기반이 거의 완전히 붕괴한 상태였고, 국가를 통제해야 할 노동계급 기반 자체가 거의 무너졌다는 전형적인 다함께 교과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혁명 주도 선진적 노동계급이 전선에서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며 레닌과 트로츠키, 볼셰비키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자 국가는 변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볼셰비키의 명백한 반사회주의적, 반노동자적 정책을 옹호한다.

    다함께의 과장과는 달리, 사회주의 원칙으로부터의 후퇴 조치들은 그러한 요인들과 상관없이 실험 후 취해진 것도 있으며, 거대한 러시아 영토 내에서 그렇게 구석구석 철저하게 경제 기반이 무너져 노동자 국가가 변형될 수밖에 없게 된 일은 없었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이 된다면, 이 당시 내전과 무관한 볼셰비키의 반사회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노동자 계급의 저항들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도록 하고 일단 간단한 주장만 하겠다.

    그의 주장과 달리, 혁명 직후 즉, 1917년 10월 26일 레닌은 노동자 생산통제에 관한 포고령을 내리고 실질적으로 혁명 전 여름부터 공장의 주인이 되었던, 각 공장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장위원회 등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생산 통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노동자들은 회계 장부의 공개 열람이 가능했고, 고용과 해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각 도시 소비에트에는 각 노동조합과 협동조합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노동자 통제 소비에트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생산의 무정부성이 필연적으로 대두되자 곧 각 공장의 공장위원회는 노동조합에 종속하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중앙 단위인 전 러시아 노동자 통제 소비에트도 고위 국민경제 소비에트(베쎈하)로의 위계적인 종속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막강한 베쎈하에서조차 부르주아 전문가들이 크게 활약(?)하였는데, 그 이유는, 노동자 통제의 실제 모습에 실망한 레닌의 말에 따르면, 노동자 통제 기관들, 공장위원회, 소비에트들은 생산을 조직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통제 포기한 볼셰비키

    노동자 통제 공장들의 급격한 생산 하락으로 결국 볼셰비키들은 화폐 폐지 등과 같은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실험들 중 가장 먼저 1918년 10월, ‘국가에 의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통제’라는 식으로 노동자 통제의 이상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1917년 12월에는 동시에 산업의 국유화에 대한 포고령에 따라 노동자 통제 권한을 노동자 통제 소비에트의 베쎈하로 집중시켜 모든 금융기관까지 급격하게 국유화하면서 산업에서의 실질적인 위계적 행정 질서를 강화한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이나 내전, 노동자 계급의 숫자 감소 등과 무관하게 실험되어진 것이고, 레닌의 고민에서 드러나듯 시장 철폐 이후 완벽한 계획이나 노동자 생산 민주주의의 이상만으로는 국가의 소멸은커녕 국가의 기본적 운영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실험의 실패로 인한 사회주의 원칙으로부터의 후퇴였다.

    전시공산주의라고 명명되는 1918년부터 1921년까지의 명백한 반사회주의적, 노동자 생산통제와 반대되는 조치들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의 특수한 조치인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의 조치들이야 말로 사회주의적 원칙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강동훈의 주장은 순서가 바뀐 엉터리 주장이며, 내전 이후 처참한 상황에 대한 지나친 과장은 전혀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의 열기 속에 현실주의적 정치가로서보다 이상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레닌과 트로츠키, 볼셰비키들의 고민을 읽지 못하고 왜곡하는 것은 강동훈이 더욱 확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이 부분을 본인이 ‘레닌과 볼셰비키가 혁명의 불가능성을 지지했다’고 참으로 쉽게 왜곡한다. 그가 빼먹은 바로 앞 구절에 본인은 노동자로부터 생산 통제를 빼앗은 대표적인 몇몇 반사회주의적 정책들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서술했다. 그가 주장한 과장된 이유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원칙 실현의 비현실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 취해진 조치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주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데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라고 했다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노동자가 생산과 사회를 통제했느냐의 여부가 사회주의의 유일한 잣대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국가자본주의라는 말에, 그런 식이라면 심지어 레닌과 트로츠키조차 반사회주의적이며 그 당시 아예 국가자본주의라는 이야기를 하는 꼴이 된다는 본인의 주장을 정말 어떻게 이렇게 희한하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인터넷 자유게시판 뿐 아니라 비민주적 토론 문화에 대해서까지 지적했건만, 진정한 답은 누가 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본인 외 수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고, 탈퇴자들마저 증언하고 있는데 그런 민주적인 소리들마저 들으려 하지 않고 한 마디로 내쳐 버리는 비민주성은 이에 대한 답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도 남는다.

    강남 지역위 사건은 상식과 도덕에 대한 위법

    강남 지역위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아님 말고’는 누가 주장하는 것인가? 어떤 부정한 짓을 했는지 활동가의 양심을 걸고 자문해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는 ‘일반적인 당원들은 자기가 거주하고 노동하는 지역으로 당원 가입을 하며, 평당원의 경우 정상적이라면 백 수십 명씩 특정 지역으로 옮기는 경우는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항의에 대해서는 일부러 언급을 회피하며 법 지켰는데 무슨 소리냐며 자신들의 패권적 행태마저 옹호한다.

    당규를 안 어겼다는데, 그럼 법 규정만으로 따지자면, 그대들은 아예 민주노동당의 기본적 강령조차 어기고 ‘숙주’에 ‘기생’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 중의 불법이다. 다시 주장한다. 강남 지역위 사건은 특정한 목적과 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도덕률에 있어서의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

    강동훈은 앞 쪽에서는 ‘노동자 자기 해방의 과정’이 없었던 베트남 전쟁 및 혁명과 현재의 베네수엘라 지지 등에 대한 기괴한 해명을 늘어놓더니 뒤에 가서는 또 다시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 투쟁의 여부’만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돌연 외친다.

    게다가, 천안문 항쟁을 진압한 지배자들이 그대로 권좌를 지키는 중국의 예를 들었는데, 다시 묻는다. 백군이 아니라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에 항의하는 혁명을 지지한 공장 노동자와 소수 민족 공산주의자들을 살해하고 탄압하는 볼셰비키가 권좌를 지지하는 소련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폴란드를 군사적 힘으로 공산화시키려 했던 볼셰비키들의 방법이 ‘폴란드 노동자의 자기 해방 투쟁’인가? 노동자로부터 통제권을 빼앗아 경영진들의 단독 책임 경영제를 채택하고, 노동조합의 독립성을 박탈하여 국가 기구화하며, 생산 현장에서의 테일러 시스템의 도입과 노동의 군사화 등으로 특징지어졌던 소련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트로츠키 자신의 주장만 나오면 모호한 수사를 쓰는 버릇은 다함께 회원이면 누구든 비슷하다.

    “소련 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주장은 계속 변화했다. 처음에 트로츠키는 소련 관료들을 반동 세력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보나파르트 일당’이라고 봤다. 트로츠키는 소련 관료들을 계급은 아니지만 카스트라고 했다가 정치 혁명으로 타도해야 하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 강동훈의 글

    강동훈은 트로츠키가, 사회혁명이 아니라 정치혁명으로 집단 소유 체제는 건드리지 않되, 관료 집단만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진정한 의미는 어디로 갖다 버린 채, 그의 이러한 입장 변화의 근저에는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원칙이 있었다는 말만 또 그냥 되풀이 한다.

    트로츠키는 관료 타도만을 주장했다

    그대는 지금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만으로 정치혁명을 주장한 것이 아니기에 그의 억지 논리 자체도 황당하지만, 그의 말 그대로 따라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이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원칙에 입각했기 때문에 트로츠키는, 소련 체제를 정치혁명으로 관료들을 타도하자고 했던 것이지, 사회 체제를 바꾸는 혁명을 하자고 한 것이 아닌 이유를 모르겠는가?

    만일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였다면, 그 원칙에 따라 소련에서의 정치혁명이 아니라 체제혁명을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트로츠키가 저승에서 통곡하다가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의 허구성이 결정적으로 증명된 것은 동유럽과 소련의 몰락이었다. 대다수의 좌파들이 고민할 때, 과학적 근거 없이 그 체제를 자본주의로 규정함으로써 모든 이론적, 실천적 고민에서 아주 편리하게 벗어나 급진적 언사만으로 운동권적 도덕률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그러나 대중과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 간 사람들이 있었다.

    소련의 붕괴를 제2의 러시아 혁명이라면서 칭송하던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제국주의로 부활해 가고 있는 진짜 자본주의 러시아와 유럽 팽창의 일부분이 되어 자본주의에 맹종하는 동유럽일 뿐이었다. 소련의 붕괴는 위에서 언급한 국가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로 인한 내부적 실질적 붕괴의 현실을 감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고 역사의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 강동훈의 황당무계한 왜곡과는 달리, 본인은 그렇게 ‘단순하게’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전히 혁명을 통한 체제 변혁을 지지하려면, 구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냉철한 반성 없는 원론에만 입각한 주장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그렇게 단순 무식하게 아무런 이유 없이 절대 불가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와 똑같은 운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근거도 희박하게 ‘그건 자본주의였으니 연연하지 마’라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인민을 대상으로 한 피로 얼룩진 실험을 쉽게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풀이’네, ‘아님 말고’ 운운하며 본인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과 모략 선동을 중단하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토론을 원한다면, 이번처럼 자신들의 경전이 아닌 객관적 자료들에 근거해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주장을 위한 구체적인 자료들과 거짓 부분 지적 등을 조목조목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가 모르는 어떤 자료가 있다’는 식으로 글을 썼다는 이는 그대 밖에 없다. 트로츠키의 주장마저 왜곡하는 그대에게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자신의 글을 읽어 보기를 진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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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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