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프레시안까지 죽이나
    2008년 03월 03일 12:17 오후

Print Friendly

<프레시안>이 2007년 11월 26일에 보도한 「삼성전자 수출운임 과다지급 의혹」이라는 기사가 삼성전자의 심기를 건드렸나보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이 기사가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고, 악의적이고, 사실과 다르다며 삼성전자 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이 소장에서 <프레시안>에 대해 자신들이 제시한 정정보도문을 초기화면 중앙 상단에 1개월 동안 게재할 것, 이 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 완료일까지 매일 500만 원을 삼성전자에 지급할 것, 이와는 별도로 10억 원의 손해배상금 및 소장 송부 다음 날부터 지급일까지 연 20%의 이자를 지급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정정보도문을 초기화면 중앙 상단에 1개월 내내 게재하라는 건 무슨 억하심정이며, 매일 500만 원은 뭐고, 이와는 별도로 10억 원 지급에 연 20% 이자는 또 뭔가. 이러면 <프레시안>은 망한다.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실을 보도해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면 이런 요구가 정당할 수도 있다.

완전히 다른 사실을 보도했는가?

기사를 보니 관세청 기록의 삼성전자 운임이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돼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근거로 탈세나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삼성전자의 수출신고필증 (사진=프레시안)
 

언론사가 이런 의혹도 제기하지 못한단 말인가? 삼성은 최근 엄청난 비자금 및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있다. 학력위조 사건이 터지자 언론이 학원가, 지식계 등을 탐사 취재해 유사 사례의 의혹을 제기했었다. 숭례문이 불타자 우리나라 문화재들의 관리 실태가 보도됐다. 삼성 비자금이 사회적 의제가 됐을 때 언론이 관련 의혹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근거 없는 의혹 제시는 안 된다. 그러나 관세청 기록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프레시안>이 관세청 기록을 조작해 보도했다면 또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삼성전자가 해명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다.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는가?

삼성에 지금보다 더 훼손될 브랜드 가치란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삼성이 브랜드 가치 훼손 등을 이유로 누군가를 고소한다면 삼성그룹 경영진을 먼저 고소할 일이다. 아니면 비자금 및 뇌물 의혹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것을 명명백백히 증명하거나.

삼성 비자금 및 뇌물 스캔들이 먼저 터졌고 <프레시안> 보도는 거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앞의 것이 본질이고 뒤의 것은 말하자면, 메인 기사에 붙는 일종의 ‘딸림 기사’ 성격이다. 삼성이 본질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딸림 기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X파일 사태와 온갖 의혹으로 가득 찬 세습 과정, 그리고 비자금 파문으로 삼성의 이미지는 이미 실추될 대로 실추된 상태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 복원을 위해서 자기 반성이 먼저일까, 언론사 소송이 먼저일까? 이 간단한 질문의 답을 모른다면 명예훼손은 계속해서 자업자득이 될 것이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예전에 한 곳으로부터 고소 협박을 받았다. 내가 쓴 글을 보고 그곳의 장이 진노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이미 변호사를 선임해놓은 상태임을 알리고, 내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해달라고 요구하는 연락이 왔다.

연락이 여러 차례 오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갔는데, 간단히 말하면 나는 수정도 삭제도 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 후 유야무야 됐다. 연락이 더 이상 안 온다.

이런 연락을 몇 차례 받으면 글 쓸 때 몸을 사리게 된다. 얼마 전에도 어느 곳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연락을 받았다. 난 처음에 그 글을 한 시간 이내의 시간으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썼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내가 ‘어느 곳’을 비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면 조심해야 한다. 행여나 그곳의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조심조심 읽어가며 내용을 고치느라 두 시간을 더 쓰고 말았다. 결국 총 세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세 시간이나 걸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 시간을 쓸 정도의 이슈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글이 나가고 난 후 그곳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나에게 이런 저런 말을 했다. 이미 그럴 줄 알고 무려 두 시간에 걸쳐서(!) 장치를 마련해뒀기 때문에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힘 센 곳을 건드릴 때 점점 몸을 사리게 된다. 아니, 몸을 사린다기보다는 시간과 정력이 너무 많이 소모되므로 다른 이슈를 선택하기가 더 쉬워진다고 하는 게 맞겠다.

자기검열 만들기

기자는 바쁘다. 대부분의 비판언론사는 가난하고 작다. 삼성 관련 비판 보도를 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사실 확인을 거쳐, 용의주도하게 기사를 작성해야 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편집진이 또 몇 번이나 숙의를 거듭해야 한다면 이 ‘뜨거운 감자’를 집기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게 된다.

삼성 측이 관세청 기록은 허수이며 국세청에 신고된 것이 진짜 운임이라고 해명해 <프레시안>은 그것을 그대로 기사에 반영했다. 나도 그전에 서울시 관련 글을 쓴 후 서울시의 해명을 듣고 칼럼의 일부를 수정한 적이 있다. 애초의 글이 심각하게 말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넘어간다. 관세청 기록으로 발생한 의혹은 그것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단순 기사 수정을 못 받아들이겠다는 삼성은 언론사 입장도 생각해볼 일이다. 언론사가 보기에 삼성은 지금 복마전이다. 의혹투성이다. 단지 삼성의 해명만 듣고 “아, 예 그렇습니까” 하면서 기사삭제라든가 정정보도 등 삼성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줄 만한 신뢰가 없다. 언론중재위(정대홍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삼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사회 건전성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고, 그에 따라 탐사취재를 통해 자료를 입수,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렇게 뒷감당이 혹독하다면 어느 언론이 삼성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삼성은 한국 사회의 최상층부다. 민주공화국의 최상층부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관대해야 한다. 특히 가난한 언론사를 돈으로 위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건 언로를 원천봉쇄하는 일이다.

소송을 당한 당사자는 괴롭다. <프레시안>을 괴롭혀서 삼성이 얻는 이익이 무언가? 이미 실추된 브랜드 가치만 ‘확인사살’될 뿐이다. 10억 원 소송이라니, 당하는 쪽은 정말 막막할 것이다. 국민이 달려들어 <프레시안>을 지켜줘야 할 때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