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유럽위원장 등 탈당…박노자 등과 함께 신당 합류
        2008년 02월 29일 05: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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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유럽위원장 장광열씨 등 유럽의 민주노동당 당원 12명이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한국 시간으로 29일 발표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유럽당원들의 작별인사’라는 글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치의 흐름을 민주노동당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현실의 냉엄한 요구”라고 탈당의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총회를 한번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하고, 분회 모임을 위해서도 인근 도시로 세 시간씩 차를 달려야 했다”고 그동안의 민주노동당 활동을 회고하며, “이번에 취임한 위원장단과 집행부에게 힘을 보태지 못하여 죄송하고 … 이곳 유럽사회에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살아가며 소중한 실천을 벌이시는 분들께도 죄송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들은 “민주노동당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대부분의 고국의 당원들은 당 내부에서 더 이상 전망 찾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당 외부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민주노동당을 떠나게 된 구체적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지금의 한국은 식민지 알제리보다는 프랑스에 가깝고, 70년대의 한국보다는 차라리 70년대의 독일에 가깝다”고 한국에 대한 유럽 쪽의 진단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미 진보신당 합류 의사를 밝힌 바 있는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 등과 함께 신당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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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둥지를 떠나 진보의 새 둥지를 짓는 일에 나서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유럽당원들의 작별인사-

    꿋꿋이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 활동을 하시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는 2003년부터 당조직 건설에 들어간 후, 고국의 진보정당을 위하여 유럽동포 지지선언을 조직하고, 동포들의 정성을 모아 총선 후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유럽의 당원들은 유럽에 다녀간 당 소속의 국회의원과 최고위원들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활동하는 당원들과 함께 진보의 꿈을 꾸었습니다.

    총회를 한번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하고, 분회 모임을 위해서도 인근 도시로 세 시간씩 차를 달려야 하는 유럽당원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노력하던 유럽당원들의 힘으로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는 지금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현실적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이 고국에 건설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취임한 위원장단과 집행부에게 힘을 보태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고국에서의 당의 문제들이 잘 해결되길 바라면서 이곳 유럽사회에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살아가며 소중한 실천을 벌이시는 분들께도 죄송합니다. 중앙당의 진로 역시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유럽 동포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유럽 당원들 역시 소중한 동지들이며, ‘패권주의’니, ‘종북주의’니, ‘북핵옹호’나 ‘회계문제’등, 중앙당의 문제들이 사실상 유럽당원들의 실천적 정치활동에 큰 질곡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자 합니다.

    슬프지만,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당을 만들고자 하는 몇몇 동지들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이 왜 이런 지경에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진보정치의 흐름을 민주노동당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현실의 냉엄한 요구라고 판단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운영상의 문제나, 정치 노선의 문제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여 지난 몇 년간 많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물론, 당 활동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실수를 만회하고 오류를 시정할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민주노동당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대부분의 고국의 당원들은 당 내부에서 더 이상 전망 찾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당 외부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의 운영상의 문제를 몇 가지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로는 세상을 뒤집겠다고 하며 정당법을 어기면서, 장부는 정당법에서 시키는 대로 만들기 위해 엉뚱한 실무자에게 회계조작을 하게끔 합니다. 한쪽에서는 공금을 유용하여 마사지를 받아도 쉬쉬하고 넘어갑니다. 다른 쪽에서는 위장 입당이나 전입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문제가 많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심지어 투표부정에 이르면 할 말이 없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2006년 말 5억에 이르던 당의 부채가 2007년 48억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나 대책이 없습니다. 당의 사무부총장이 주요 당직자에 대한 정보를 외부로 누출했다고 하는데, 정보기관의 조작인지, 해당행위인지, 국가보안법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하지도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면서, 아니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 대한 노동자, 서민들의 지지가 점점 식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역시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눈을 감고 있는 듯합니다. 식민지와 분단으로 고통 받은 지난 세기는 불행한 역사입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입니다. 노동자 대중과 농민, 빈민, 학생, 양심적 지식인, 종교인들이 함께 어깨 걸고 싸워 한줌 밖에 안 되는 지배자들을 몰아내고 민중이 주인 되는 참 세상을 여는 길이 눈앞에 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무너질 벽이 아닙니다. 더 유연해졌고, 더 세련되어졌고, 더 강해졌습니다. 시장의 의지가 민중의 의지에 우선하고, 재벌은 청와대를 우습게 여깁니다. 수천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공장의 문을 닫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군정청이나 독재정부가 아니라 거대 자본과 주식투자자들입니다. 또한 한국에 미군은 존재하지만, 한국 스스로도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파병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이나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쩔쩔 매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한국의 정치인들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국민들이 선출합니다.

    밖에서 볼 때 역시 한국은 더 이상 제 3세계가 아닙니다. 물론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는 분명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지금의 한국은 식민지 알제리 보다는 프랑스에 가깝고, 70년대의 한국보다는 차라리 70년대의 독일에 가깝습니다. 이미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국의 기업들은 임금이 싼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다른 선진국의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진보적 가치의 계승과 더불어, 시대 변화에 걸맞는 진보적 과제를 발굴하겠습니다.

    이런 커다란 변화 앞에 우리는 한국사회를 바꿀 계획을 새롭게 짜야 합니다. 막연히 자주와 민주 통일 또는 사회주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이 당장 부딪히는 일자리와 의료, 교육문제, 주거, 노후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식민지를 겪은 민족들의 민족해방 운동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쿠바와 베트남, 팔레스타인, 이라크 민중의 불굴의 투쟁은 제국주의의 추한 모습을 드러나게 했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억압없는 세상을 위한 실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면한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는 ‘우리만의 민족’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평화와 지역공동체 건설을 위한 방안으로까지 확장시켜야 할 것입니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자본에게 고용된 동남아의 노동자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동시에, 넓은 의미의 ‘우리 민족’이라는 열린 민족주의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국가안보와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지고 오염된 지구를 후대에게 물려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생태적 가치와 평화, 인권, 국제주의를 내걸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전쟁과 인종주의, 성차별과 학력 차별 등 온갖 종류의 박해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진보정당운동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지만, 한국 사회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우리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진보정당을 올바로 건설하는 일에 힘을 보태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어쩌면 안에서 당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실 남아 계신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앞길이 우리보다 더 험난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험난한 길을 가실 분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새로운 진보정치 활동을 벌일 우리들 역시 어떤 시련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주류 언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유럽사회의 현실과 유럽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을 알리고, 한국의 진보정당이 국제 연대를 하는 데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것입니다. 유럽의 다양한 무상교육 방안, 무상의료, 공공주택, 이주노동자 및 운하 등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모임을 당원들과 지지자들과 함께 만들어 한국 진보정당의 정책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해외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각자의 처한 처지와 조건에서 가능한 진보적인 활동을 독려하고, 국적을 막론한 다양한 연대의 틀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앞의 도전은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꿈꾸는 사람만이 꿈을 이룬다는 교훈,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진보정치를 꿈꾸는 민주노동당 유럽 (전)당원 일동 (12명, 가나다순)
    김보영/김상진/류용선(전 프랑크푸르트분회장)/류현영(전 홍보부장)/오진수/이승재(전 독일북부분회장)/장광열(전 유럽위원장)/장순정/장태수/정성원/정의헌(전 파리분회장)/최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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