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의 ‘다수파 옆 붙어먹기’와 수령론
    2008년 02월 29일 11: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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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강동훈의 반박 글은 다함께식 운동의 비민주성은 물론이요, 관념적 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전형적인 글이다. 거기에 덧붙여 엄청난 난독증과 근거 없는 비아냥, 내용 없는 비판, 상대 왜곡하기, 거기에 협박까지 덧붙인 그의 글은 대타로 내보낸 이답게 한층 더 저열하다.

그는 내가 전지윤이 제기한 비판과 문제제기에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고 기존 논지를 반복했단다. 조목 조목 그의 논리와 주장을 반박한 게 안 보인다니 다시 써 줄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다. 그럼 본인의 글에 동의하는 독자들은 써 있지도 않은 글을 보고 동의했나?

강동훈은 세 차례나 연재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내가 세 번에 나누어 보낸 게 아니라 글이 길어 세 번으로 나누어 편집되어 나온 것이다. 그런데, 비교해 보니 강동훈의 글과 분량이 비슷하다. 자, 이제 내용은 누가 빈약한지 누가 왜곡을 일삼는지에 대해 찬찬히 살펴 보도록 하자.

먼저, 강동훈을 비롯한 다함께 활동가들은 다양한 비주사 좌파들이 떨어져 나간 지금의 민노당 내 자신들의 입지가 위기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반대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지 ‘다수파 옆 붙어먹기 식’의 전형적인 조직 특유의 진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이중 잣대 즉, 대중추수주의와 개량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오랜 동안 금기시해 왔던 온라인 상의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추수주의와 개량 입지 굳히려는 다함께

그러나, 목적의식이 너무 앞선 나머지 엄청난 실수와 거짓과 왜곡을 일삼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

   
 
 

먼저, 강동훈은 “정다신을 비롯해 다함께를 비판하는 이유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면서 본인의 다함께 비판이 이와 무관하다는 것은 “진정한 쟁점 회피”라고 또 한 번 억지를 부렸다.

도대체 한 두 번도 아니고 본인은 민노당의 분당 사태와 무관하게 다함께의 근거 없는 비판에 대해 비판을 한 것이며, 남을 함부로 개량이네 우경화네 하려거든 자 조직의 진짜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의 개량과 우경화의 일관된 역사나 제대로 알라고 수 차례 강조했건만, 타인의 의도와 머리 속까지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저 폭력적인 언사는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나오는 것인가?

신당파 비판/찬성의 구도에 끼워 맞추려는 비민주적 행위는 언제까지 필자 바뀌어 가며 반복될른지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나는 이재영과 일면식도 없고, 그의 주장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신당파의 논리 중에서도 상당 부분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글까지 쓸 정도로 신중한 입장을 가지고 있어 양자택일의 단순 논리 속에 오해까지 받을 정도였는데, ‘다함께 비판이면 무조건 신당파 옹호의 논리를 위한 것’이라는 저 오만함과 본질 회피적 자세는 언제 바뀔른지 너무 궁금하다.

김일성주의자들과 다함께의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신당에 우호적인 내 입장은 분명 있지만, 그것과 별도로 오래 전부터 비판적이었던 다함께 정치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일인가? 그럼 민노당 분당 사태 훨씬 이전 <프레시안>에 본인이 다함께를 비판한 글은 또 어떤 숨은 의도에서 쓴 것인가?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면 최소한 인용만큼은 제대로 해야 한다. 강동훈은 국가자본주의론이 틀렸다는 본인의 주장은 마치 본인 개인만의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연구한 결과’라는 식으로 왜곡하는데, 뒤에서 자세히 하겠지만, 미안하지만 본인 개인만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연구 결과가 아니라 본인 외 객관적인 수 천 개 이상의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국가자본주의론이 옳다는 주장은, ‘비독립적이고 비자주적’이라는 본인의 이야기가 전혀 틀리지 않음을 이번 강동훈의 글에서도 너무나 예상과 다르지 않게 모든 주제에 걸쳐 확연하게 보여 주었다.

다함께는 무오류?

마치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다함께는 무오류의 조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직 단 하나의 ‘오류’조차 그네들의 교과서에 나오는 트로츠키의 국가자본주의를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잘못 파악했다는 ‘오류’ 외에는 없으니 비독립적이고 비자주적인 걸 넘어 가히 절대 신앙 수준이다.

강동훈은 ‘캘리니코스의 책을 하나도 안 읽고 그를 비판한 게 뭐가 문제냐’던 본인이 이제는 180도 변신했다며, 본인이 전지윤의 ‘어디서 줏어 들은 이야기’ 운운한 무례에 대해 항의하며 본인이 다함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내용을 쓴 부분을 인용하며,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 ‘잘 읽고 알아야 주장할 수 있다’로 본인이 변신했다며!!

어이가 없어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캘리니코스라는 어떤 한 사상가의 독특한 사상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 이재영이 토론자로 나와서 토론했다면 그건 무례이며, 기본도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윤이 나오든 강동훈이 나오든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하러 나온, 즉 토니 클리프와 크리스 하먼, 그리고 그들의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다함께의 단일한 사상과 똑같은 내용을 그대로 전해 주는 캘리니코스의 토론회에서 굳이 그의 책이 아니더라도 그 내용을 알 수가 있고, 따라서 얼마든지 토론은 가능하고도 남는다.

이재영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그들의 신문이든 사이트든 책이든 이러 저러한 경로를 통해 다함께의 기본적 주장을 모르는 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그의 책을 다 읽지 못했으니 그의 입을 통한 SWP의 사상을 반박할 자격조차 없는가?

그 자신의 사상도 아닌 되풀이 주장에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었더라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가가 있다. 이재영이 다함께가 숨기고 있는 정확한 핵심을 찌르지 못 해서 그렇지, 그 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다함께에 대한 반박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의 장황한 설명에 미안하지만, 지난 글들에서도 간단하게나마 본인은 오래 전부터 다함께의 글들을 읽어 왔고, 직접 만나 이야기도 해 왔고, 영국에서 잡지까지 받았었으며, 그리고 현재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의 수많은 국면들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그들이 나름의 조사, 탐구, 분석이 없이 국가자본주의의 동학에 대해 주장해 온 것’을 잘 알게 되었으며 국가자본주의론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들이 독립적인 연구 결과에 의해 국가자본주의의 결론에 도달한 양 그 이론 습득의 순서를 바꾸는데, 다시 강조하건데, 비자주적인 결론의 습득 후 거꾸로 자료들을 맞추어 들어 가는 그대들의 방법은 전혀 객관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으며 학문적으로는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연구 방법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김하영이 먼저 국가자본주의를 다함께의 틀 내에서 습득하고 그 논리에 따라 북한을 연구한 것이지 독자적으로 연구해서 그 결론을 내렸나? 앞뒤 순서가 바뀐 그의 주장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북한 붕괴하면 자본주의 축적 위기에 의한 붕괴로 결론지을 어처구니 없는 글이 독자적인 글이라고?

최일붕, 신학도 맞다

최일붕에 대한 주장에 내가 틀린 것은 딱 하나. 순간 착각한 유학국에 대한 것이었다. 강동훈은 유학국 착각이 이렇게 중요한 쟁점인지 몰랐다는 너무나 정당한 내 비판이 횡설수설이란다.

전지윤이 ‘숭상’이라는 단어를 자랑스럽게 써 놓았기에 그대로 반복했던 것을 두고 이 문제에 있어 본인이 다함께가 최일붕을 숭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배치하여 마치 본인이 변명할 것이 없어 써 놓은 양 치졸한 방식으로 배치한 인용까지 하면서 핵심을 피하는 꼴은 가히 가관이다. 유학국을 잘못 썼다고 진지하지 못하다는 자신의 글을 한 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정말로 ‘숭상’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의 생애가 지엽적이지 않은 핵심적인 중요한 쟁점이라면 이야기 조금 더 해 주겠다. 횡설수설과 거짓은 본인이 아니라 강동훈이 하고 있다. 본인도 학부와 석사, 박사의 전공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무슨 과를 나왔든 유학의 목적에 따라 그를 그 학문의 학도라고 부른다.

가령, 본인이 철학과를 나왔지만 경제학으로 공부를 하러 유학을 떠난다면 그는 경제학도이다. 신학 공부하러 유학간다고 한 그는 ‘신학도’가 되는 것인데 그 부분은 왜 은근슬쩍 빼는가?

강동훈은 ‘영국으로 유학 간 신학도’라는 문장이 다함께 비판의 중요한 쟁점이라고 주장하는데, 본인은 ‘미국으로 유학 간 언어학과 출신 신학도’라고 ‘팩트’를 올바르게 썼어도 이게 중요한 쟁점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수령님의 개인 역사와 주장이 국제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와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지엽적인 것을 전면에 배치하며 논점을 흐리려는 노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본인은 최일붕과 같이 그대들의 수령도 숭상의 대상도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전지윤이 본인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주어들은 것을 나열한 것이라는 무례에 대해 그것이 아님을 보여 주려던 부분조차 황당하게 이용하는 강동훈에게 비판은 어느 정도는 공정해야 발전이 있을 거라는 충고를 해 주고자 한다.

강동훈은 글을 읽고 반박을 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할 경우 오류가 생긴 국제 계급투쟁의 수많은 사례들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쓴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이후 국가자본주의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면 기꺼이 시간 쪼개 임하겠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건만, 어쩜 둘이 똑같이 같은 반박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그러한 억지에 응해서 지난 재반박 글에서 국가자본주의가 아님을 대중적 이해 수준에서 이러 저러한 근거들을 제시했건만, 본인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말까지 그대로 똑같이 반복한다.

웬만한 아무 학술 자료 사이트에 가서 찾아 보면 단 몇 분 안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국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연구 자료들이 있다는 객관적 사실 소개를 가리켜 그저 본인 ‘스스로 생각해 깨우친 것’, ‘그것을 그냥 믿으라’는 식으로 날조한 부분에서는 웃음도 나지 않았다. 수천 수만의 전 세계 저명 학자들, 활동가들의 자료가 ‘그저 스스로 깨우친 것’에 불과하다니 모독도 이런 모독이 있을까?

알튀세르 이용하는 뻔뻔함

강동훈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전 세계의 러시아 등의 이행기 국가 관련 학술 연구들은 적어도 소련 등의 구 사회주의 국가 체제는 자본주의적 메카니즘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압도적 다수이자 주요한 연구 방향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너무나 모든 것이 확연하기에 아예 국가자본주의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알튀세르가 일부 피디 정파들에 의해 수입되어 대유행하던 시절, 알튀세르에 대해 개량주의도 모자라 아예 스탈린주의 운운하던 다함께가 필요할 때는 쉽게도 이론적으로까지 이용하다니 참으로 뻔뻔스럽다. 더군다나, 극히 일부 알튀세리안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론에서의 안티 체제로서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자본주의 체제론은 다함께의 국가자본주의론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을 알고나 쓰는지 모르겠다.

세계 혁명의 좌절과 더불어 결국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일부분으로 역할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 안티 체제는 운명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고, 분명 자칭 사회주의 국가들은 다른 체제의 시도로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기능에 반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인용한다는 게, 옛 지식인 분자이자 현재 학계에서의 유일한 동지인 정성진의 책인데, 그 빈약한 국가자본주의론이 대세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인용까지 한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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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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