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한 새 가치 말고 구체적 새 행동 보여라”
        2008년 02월 28일 0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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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창당이 가속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 평등파 계열로 간주되는 노회찬, 심상정 의원과 조승수 전 의원, 그리고 주요 당직자 및 활동가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2월 3일 심상정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의 자격으로 제출한 쇄신안이 당대회에서 부결되자, 본격적으로 당 다수파이면서 당권파인 자주파와의 결별과 탈당을 선언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섰다.

    최근 이들은 3월 2일 창당발기인 대회를 거쳐 3월 16일 창당대회를 치루겠다는 일정을 천명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18대 총선에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것이다.

       
    ▲ 지난 24일 열린 새 진보정당의 토론회 모습
     

    이들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기본적으로 노무현 구 정부 및 구 집권여당의 ‘실패’에 대한 심판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노무현 구 정부와 구 집권여당(현 통합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이명박 신정부가 인수위 시기에 이어 최근 내각 인선 과정에서 국민들을 다소 실망시키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간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어온 진보정치 세력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노무현 구 정부와 구 집권여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 하락과 그 궤를 같이 해왔다. 이른바 ‘동반 하락’해왔던 것이다. 진보정치세력 역시 ‘오만하고 무능한’ 세력으로 같이 인식되어온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해소되었다는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진보정당만이 국민들에게 노무현 구 정부 세력과 민주노동당과는 별도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민주노동당 당권파인 자주파의 ‘패권주의’, ‘종북주의’를 비판하며 뛰쳐 나온 ‘탈주 효과’를 ‘차별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이중 차별화의 벽

    하지만 누구든지 안다. 그것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할 수 없다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무능한 세력과의 결별 선언이 그들과 함께 했던 세월의 책임을 면해주는 것도 아니며, 유능함을 입증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거대 여당 견제론’이 힘을 얻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명박 신정부가 내각 인선 과정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견제론의 확산은 손학규 대표 체제가 표방하는 ‘겸손하고 유연하며 유능한’ 진보의 모색이라는 노선의 성과에 바탕해 통합민주당에 대한 점차적인 지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때 진보신당은 이들과의 동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어렵다. 실체를 드러내지도 못했고 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뚜렷한 업적을 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통합민주당이 아무리 후져 보여도 그들은 10년에 걸친 집권 경험을 갖고 있는 세력이다. ‘공신력 확보’에 있어서 통합민주당이 월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견제론에 바탕한 지지는 기본적으로 견제 역량을 갖추었다고 여겨지는 하나의 세력에게로 결집된다. 이것은 진보신당이 견제론 효과의 ‘부스러기’나마 거두기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진보신당의 입장에서는 사회양극화 책임론이라든지, 무리한 한미 FTA 추진이라든지 등의 쟁점 형성을 통해 통합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세력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결코 진정한 견제세력일 수 없음을 강조하고자 할 것이다.

    즉, 진보신당만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진정한 견제세력일 수 있으며, 그렇게 성장해갈 수 있음을 내세우고자 할 것이다. 이미 진보 신당 주도자들은 ‘중심 야당 교체’, ‘진짜 야당’ 등을 내세우고 있다. ‘대안견제세력’으로서 자기 입지를 확보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와 함께, 그들이 뛰쳐 나온 민주노동당이 이들과 똑같은 입지 확보 전략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은 통합민주당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도 차별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의 벽’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보신당은 ‘2단계 창당론’이라는 ‘낯설은’ 창당 계획을 밝히고 있다. ‘총선 대응’과 ‘본격 창당’을 구분하면서, 총선 후 진면모를 갖추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국민 약속은 아닐 것이다(만약 그렇다면 사태는 정말 심각하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모든 것을 걸어서는 안 되며, 걸 수도 없다는 처지에서 중장기적 전망을 갖고 행보하겠다는 신중함의 표현일 것이다. 대안견제세력론도 사실은 중장기적 전망 하에서 그렇게 되어가겠다는 포부의 천명을 위한 것이지, 지금 당장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가치’가 틀려서 민주노동당이 실패했나?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최소한이나마 국민적 지지를 얻어 정치적 생명을 살려내고 키워낼 방책은 무엇인가? 아직 그들에게 그것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방책을 먼저 세워내고 그것을 밑천 삼아 중장기적 전망을 내와야 하지 않은가 싶은데, 그들의 시작은 또 다시 ‘거창’하다.

    “평등-연대-생태-평화의 정당”이라는 가치의 표방이라는 ‘선언의 정치’가 다시 전면에 나선 것을 볼 때 그러하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그러한 가치들이 ‘좋은 것’임을 모르는 국민들이 있을까?

    과연 민주노동당이 ‘실패’한 것이 그러한 가치들의 표방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서였을까? 과연 그러한 가치들이 진보의 이름으로만 표방될 수 있는 ‘진보 독점적’ 가치들일까? 진보신당은 사실 시작을 알리는 순간부터 다수 노동자와 서민들의 해소되지 못한 당장의 사회적 고통을 어떻게 해소해나가겠다 ‘구체적 방안’을 선포해야 했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의 탈주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노무현 구 집권 세력과 민주노동당에게 ‘실망한 개혁-진보 유권자층’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소할 ‘방법’이다. 좋은 가치는 당장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해소할 진보신당만의 방법을 따라가다 도달한 그 곳에 놓여져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서민들은 벌써부터 올 초 물가 인상과 함께 오르기 시작한 아이들의 사교육비 충당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서민들은 적어도 내각 인선에 있어 누구나가 불만인 이명박 신정부에 대한 비판을 더 큰 목소리로 외치는 이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물가 인상의 조짐이 있으면 얼른 사교육 공급자 등을 만나 동결 방안을 찾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그런 가운데 ‘착한 사교육 공급자’의 발굴을 이뤄내면서 연대의 기반을 넓히고, 연대의 댓가로 더 넓게 공유할 수 있는 더 많은 수익창출과 사교육 접근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어떤 분열이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민친화적 공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재원의 확보와 현실적인 모형을 수립해야 한다. 법제적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정책 및 공약의 발표는 바로 그러한 움직임을 전제로 해서 이뤄져야 한다.

    교육 문제에 있어 진보신당의 궁극적인 목적일 수밖에 없는 공교육 정상화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선도적인 모범 창출의 확산과 누적된 효과에 바탕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힘 없는 진보 야당이 정부의 정책 수용을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도 이것이다. 진보신당이 알리기 시작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행동의 개시이며, 그 행동의 전개 과정과 결과에 대한 것들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은 애석하게도 옳은 이야기일른지는 모르지만,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수는 결코 부패 그 자체로 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금도 건재하다. 부패의 화신으로 알려져 왔던 일본의 자민당은 아직도 부패 스캔달에 시달리지만 집권하고 있다. 문제는 부패 그 자체가 아니라 부패의 문제를 어떻게 잘 관리해내느냐이다.

    진보 역시 서구 유럽의 진보정당사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이러 저러한 분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력 집권 후보 세력이거나 집권 세력이다. 좌파 분열의 최첨단이라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에서 사회당은 미테랑 정권을 출범시켜 ‘똘레랑스 프랑스’를 제한적이나마 최초로 구현해냈다.

    문제는 어떠한 분열이냐이다. 그리고 그것이 분열이 아니라 분화가 될 수 있느냐이다. 그때 그때 성과를 내오며 궁극적인 지점을 향해 전진해가는 정치활동 방식이 진보신당을 ‘낡은 격언의 건설적인 파괴자’로 만들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의 표방이 아니라 새로운 행동의 방식이다.

    * 이 글은 <이슈투데이>에도 같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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