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업고생 사교육비는 왜 줄었을까?
        2008년 02월 27일 04: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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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조사 결과

    지난 22일 교육부와 통계청은 「2007년 사교육비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곧바로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통계청이 23일(토) 조간부터 보도해달라고 보도자료에 명시하였으나, 언론은 금요일부터 기사를 내놓는다. 순간 통계청이 안돼 보인다. 노동통제와 강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는데, 힘없는 기관이라고 언론도 무시하니 말이다.

    통계청은 그렇다 치고, 조사 결과는 매우 반갑다. 언론은 “지금까지 사교육비 통계가 없었다. 정부가 가끔씩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의뢰하는 정도였고, 가장 최근은 2003년이다. 이번 발표는 정기적인 조사 결과의 시작이다”라고 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하다고 다들 떠드는 국가이지만, 선거 때만 되면 모든 정당들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나서는 나라이지만, 공인된 사교육비 통계는 없었다. 그래서 30조니 40조니 하면서 제각기 떠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봤으면, 참 웃기는 나라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의 맥락은 이것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교육정책 전체를 평가하는 의미가 있다.

       
    ▲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사진=전국교직원노동조합)
     

    EBS 수능강의와 사교육비

    노무현 정부 교육정책은 EBS 수능강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덕홍 장관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뒤, 두 번째로 취임한 안병영 장관은 2004년 2월 17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곧바로 4월 1일부터 EBS 수능강의를 시작한다.

    “이미 실패한 바 있는 EBS 과외를 또 하느냐”, “국가가 수능을 주관하는데 나라가 미리 방송과 인터넷으로 문제를 가르쳐주는 게 말이 되느냐”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강행한다.

    그 다음부터는 데이터 싸움이 전개된다. 통계청의 보충교육비 증감 자료나 교육부의 학원 증감 자료 등을 가지고 “EBS 수능강의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은 줄지 않았다”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 또한 심혈을 기울인 정책이니 만큼 몇 개월에 한 번씩 여론조사나 연구보고서를 의뢰하고 간혹 발표한다.

    물론 교육부의 이야기는 언제나 ‘효과 있다’, ‘사교육비가 얼마 줄었다’이다. 그러면 교육부 조사의 데이터를 입수 분석하여 잘못된 조사라거나 조작하지 말라고 비판한다. 이걸 17대 국회 처음부터 얼마 전까지 반복했다.

    하지만 항상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정확한 사교육비 통계가 없다 보니 데이터 싸움은 공방으로만 그친다. 한쪽에서는 사교육비 늘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줄었다고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정확한 수치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게다.

    그러다 보니 EBS 수능강의 업무를 담당하였던 교육부 공무원과 “정부가 사교육비 통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에 발표된 사교육비 실태 조사는 그거다. 교육부가 2005년 초반부터 준비하고, 통계청이 작년 2007년에 두 차례 조사한 결과다. 그럼, 그 내용은 어떨까?

    사교육비 엄청 늘었지만

    <레디앙>에서 이 글을 보고 있을 지금, 2007 사교육비 조사 결과는 다른 언론들을 통해 접했으리라. 그래서 언론들이 다루지 않은 것 위주로 이야기한다.

    2007년 사교육비 총액은 20조원이다. 많다. 일단 조 단위니까 많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것일까. 아니 예전에 비해 늘었을까 줄었을까. 물론 감으로 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면 얼마나 늘었을까. 바로 직전의 조사였던 2003년 결과와 비교하면 이렇다.

       
     
     

    2003년 사교육비 총액은 13조원로, 당시 GDP 724조원의 1.88%였다. 2007년 사교육비 총액은 20조원으로, GDP 897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정치)의 2.23%에 달한다. GDP 대비 비율을 놓고 보면, 늘었다. 액수로는 얼마나 될까.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감안하면, 4조 8천억 원 증가했다.

    2003년에 비해 31.6%가 늘어난 것이다. 이 중 초등학생 사교육비는 27.8%, 중학생은 23.4%, 일반계 고교생은 55.2%, 전문계 고교생(실업계 고교생)은 80.9% 증가했다. 사교육비, 엄청 많이 늘었다. 한편, GDP 디플레이터를 사용하여 환산하면 증가폭은 더 크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이 다음이다. 언론은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월 22만원이라고 한다. 물론 좋은 언론에서는 이 수치가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까지 포함한 것임을 밝힌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만 놓고 보면, 2007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28만 8천원이다. 2003년에 23만 8천원이었으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얼마나?

       
     
     

    전체적으로는 8.5% 증가했다. 초등학생은 9.3%, 중학생은 1.9%, 일반계 고교생은 16.4% 늘었다. 그런데, 실업계 고교생은 줄었다. 2003년에 비해 실업고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약 2천 원, 비율로는 1.4% 감소했다.

    물론 GDP 디플레이터를 활용하면 모든 학생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과학적으로야 어떨지 모르나, 2003년 18만원이 2007년에 18만 5천원 정도의 가치라고 하니, 장바구니 물가로 보면 왠지 거리가 느껴진다.

    실업고생의 사교육비에서 살펴볼 지점은 또 있다. 일반고생과의 차이이다. 2003년에는 실업고생의 사교육비가 일반고생의 약 60% 수준(18만원/ 29만 8천원)이었는데, 2007년에는 51%대(19만 8천원/ 38만 8천원)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실업고생이 한 달에 쓰는 사교육비는 줄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고생과의 격차도 벌어졌다. 아무래도 교육양극화와 서열화 속에서 실업고에 점차 돈 없는 아이들이 많이 진학하는 것과 연관 있다고 여겨진다.

    헌데,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것 같다. <표 3>에서 실업고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줄었는데, 어떻게 <표 1>처럼 실업고생의 사교육비 총액은 늘어난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교육받는 실업고생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아래 표에 나와있는 것처럼 2003년 다섯 명 중 한 명꼴에서 2007년 세 명 중 한 명 정도로 사교육받는 실업고생이 많아진다.

       
     
     

    정리하면 이렇다. 2003년에 비해 사교육비 엄청 많이 늘었다. 30% 이상 늘었다. 하지만 한 학생이 쓰는 사교육비에서는 유독 실업고생만 줄었다. 일반고생과의 차이도 벌어졌다. 그러면서도 실업고생의 사교육 참가율은 증가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학벌주의 사회의 영향으로 졸업 후 취업하기보다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실업고생이 많아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돈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실업고에 많이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사교육받는 실업고생은 늘었지만, 학생 개개인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았나 여겨진다.

    EBS 수능강의 해도 사교육비 늘었다

    사교육비를 잡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공급 규제’로, 학원 수강료 상한제나 학원 교습시간 제한 등이 그것이다. 사교육업체를 규제하는 거다. 이 방법의 극단적인 형태는 1980년의 ‘과외 금지’ 조치이다.

    하지만 과외 금지는 위헌 판결을 받았다. 또한 당장 사교육 공급 금지를 시행하면 현재의 많은 사교육 종사자를 고려할 때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공급 규제는 적정 선에서 모색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사교육 경감의 연착률을 시도해야 한다.

    두 번째 방안은 ‘수요 해소’다. 사교육은 입시경쟁 때문이고, 입시경쟁은 일종의 병목현상이다. 그리고 병목구간은 길을 넓히거나 진입하려는 차량 수를 줄여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60만 명이 3,500개의 서울대 관문을 노리는데, 3,500개를 늘리든가 아니면 60만 명을 줄이면 된다.

    3,500개를 늘리는 건 평준화고, 60만 명을 줄이는 건 고교 서열화다. 또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60만 명은 자연히 줄어든다.

    세 번째 방안은 ‘공급 대체’다. 사교육에서 하고 있는 걸 공교육에서 대신 해주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 게 EBS 수능강의이다. 수준별 보충수업이나 수준별 교육과정도 포함된다.

    이 세 가지 방법 중에서 노무현 정부나 이전의 정부는 주로 공급 대체를 시도해왔다. 김영삼 정부는 영어사교육을 잡는다며 초등학교 영어수업을 시작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초기에는 EBS 수능강의, 최근엔 방과후 학교, 공교육 틀 안에서는 수준별 교육과정과 수준별 보충수업 등 하여 공급 대체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격려하기도 하고, ‘부산발 교육혁명’이라고 부산교육청을 띄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교육비는 증가했다. 정부 예산을 갖다 부으면서 공급을 대체하였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가 초등학교 영어수업을 했더니 영어 사교육이 늘었고, 노무현 정부가 EBS 수능강의나 방과후 학교를 했더니 백약이 무효였다.

    이게 공급 대체의 결과다. 한편으로는 사교육의 또 다른 원인인 특목고를 열심히 늘려주고, 한편으로는 공급을 대체한다고 떠들썩하게 학교를 학원처럼 만든 결과다.

    2MB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방법

    2MB 정부의 방식은 간단하다. 일단 공급 제어는 없다.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정부이니 만큼, 지금처럼 그냥 내버려두거나 관련 규정을 없앨 거다. 그래서 학원들이 수강료나 교습시간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을까 한다. 그로 인한 손해야 노동자 서민이 보겠지만 신경이나 쓸까 모르겠다.

    국민들이 불안해마지 않는 ‘영어 공교육 완성’은 공급 대체다. 하지만 영어 사교육비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2MB 정부뿐이다. 이미 학부모는 영어 학원으로 몰리고 있고, 영어 학원들은 뒤돌아서서 조심스럽게 웃고 있다.

    아직 정식으로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핵심 공약인 ‘고교 다양화 300’은 수요 해소다. 자사고를 늘려 일류고 진학 병목구간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전 국민이 목매어 희망하는 일류대 수요의 병목구간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따라서 한계가 명확하다.

    그런데 고교 다양화 300은 다른 형태로 수요를 해소할 가능성이 크다. 일류대에 진입하려는 학생을 줄일 수 있다. 전체 2,100개 고교를 일류고 300개와 나머지로 재편하면, 일류대를 희망하는 학생은 1/7로 확 줄어든다.

    물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 만큼 비일류고 학생도 서울대를 희망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교 꼴등이 서울대에 원서 넣겠다고 하면, ‘미친 놈’ 하면서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무섭게 덤벼드는 땅이 대한민국이다.

    <표 3>을 다시 보자. 실업고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줄어든 점, 일반고생과의 차이가 벌어진 점을 상기하자. 그리고 <표 4>에서 실업고생의 사교육 참가율이 늘어나긴 했으나 일반고생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점도 되새기자.

    2MB 정부에서 일류고 300개와 나머지로 고등학교가 구분되면, 나머지 고교의 학생들은 실업고생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미리 포기하든가 집에 돈이 없든가. 더구나 2MB 정부 하에서 양극화는 보다 심화될 것이다.

    그러면 IMF 위기 때 봤던 것처럼 사교육받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할 수 있다. 이처럼 ‘고교 다양화 300’은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리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변화된 선거 풍경

    교육 분야만 놓고 보면, 지난 대선과 이전의 선거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전 선거들에서는 교육 하면 “사교육비 어떻게 줄일 겁니까?”라는 질문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보수정당들은 각종 공급대체 방안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사교육비 어떻게 줄일 겁니까?”라는 질문이 확 줄었다. 대신 그 빈 자리를 “입시 어떻게 할 겁니까?”, “학벌사회 어떻게 할 겁니까?”, “대학서열체제 어떻게 할 겁니까?”가 채웠다. 그리고 정당들의 답변이나 정책공약에서 공급 대체는 영어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질문이 변화한 이유는 뭘까. 역시 엄마, 아줌마, 아저씨, 어르신들은 언제나 옳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항상 감으로 안다. 이들은 이미 사교육비는 입시 때문이고, 입시는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 때문이라는 걸 안다. 대학서열체에와 학벌사회를 해결하고, 입시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네 삶이 어떻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질문이 바뀌는 건 당연하다.

    이번에 발표된 「2007 사교육 의식조사」에서도 똑같은 점이 발견된다. 2003년 조사에서는 없었던 항목이 포함되어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사교육의 원인으로 1순위에는 학벌사회를, 2~3순위에는 대학서열구조를 들었다.

    역시 학생들은 언제나 옳다. 어른들은 무시하기 바쁘나, 이들의 혜안은 두려울 정도다. 학부모도 비슷하게 답했다. 1~2순위에 학벌사회를, 2순위에 대학서열구조를 이야기한다. 다만, 특목고 학부모만 5순위 안에 대학서열구조가 없다.

    “아이가 특목고에 들어갔으니 일류대 진학 증서 받았다 이거지”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의 주요 원인으로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를 지적했다.

    이제 교육운동하는 사람들이나 정치권이 답할 차례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저거들끼리 사투리 써가며 노는 게 정치라는 일반의 상식에 저항할 때다. 특히, 학벌사회의 사투리 “어느 학교 나왔나?”와 동일한 의식인 “당신, 몇 살이야?”, “몇 학번이냐?”, “입사 몇 년차야?”, “항렬이 어떻게 되나?” 등은 경계하고 경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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