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죽을 위험’은 사라졌나?
        2008년 02월 27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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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창당 과정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가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몇몇 인터넷 게시판이나 오프라인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적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창당 과정이 지나치게 심상정, 노회찬이라는 대중정치인 위주라는 지적이 그 하나이고, 진보신당의 예비당원 내지 우호적인 지지자들에게 창당 과정이 충분히 열려 있지 못하고, 지나치게 상층에서의 논의를 통한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틀림없이 그런 측면이 있다. 현재까지 진행되는 과정으로만 판단한다면 위의 지적들은 상당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신당의 창당 과정을 냉소나 관망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보다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동참해야 한다.

       
    ▲ 지난 1월 9일 탈당 기자회견 중인 필자(사진 왼쪽)
     

    2.3 당대회 이후 당의 주요 인물들이 포함된 광범위한 탈당 사태가 벌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진보신당이 이제 ‘얼어 죽지는 않을’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탈당 및 신당 창당이라는 최근의 사태는 단순히 자주파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병호 의원이 적절히 지적한대로,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10년의 기획이 일단은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표체라는 휘장을 어느 한 정당이 실질적으로 독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회당, 노동자의 힘에 사과 …

    이 대목에서 나는 사회당이나 노동자의 힘 등 제반 당외 좌파 동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옛 민주노동당이 유일의 진보정당을 자처할 때도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물론 대중적으로 유의미한 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적으로 세가 약하다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으로 포괄되지 못하는 좌파정치세력이 있고 그들의 문제의식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한, 옛 민주노동당이 진보를 독점한 듯이 행동한 것은 잘못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비록 일개 평당원이나마 그 분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표체 내지 대중적으로 유의미한 유일한 진보정당이라는 프리미엄은 옛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쪽 모두에게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이제부터는 위치 선점만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전혀 없으며 오직 우리가 제시하는 이념적 비전과 실천의 적합성으로만 대중들에게 심판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장기적으로는 진보신당의 이념과 실천이 옛 민주노동당의 이념과 실천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이번 사태의 초기부터 신당을 강력히 주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두 가지 중 하나는 (또 다른 하나는 나중에 언급할 것이다) 종북주의나 패권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더 이상은 소모적인 내부 정치에 매몰되지 않고 싶어서였다.

    2004년까지의 당원 생활은 무척 행복했다. 당내 문제에 대해서도 가끔 발언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당 밖의 인민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꿈꾸는지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내 주된 활동은 당 밖의 대중이 아니라 당 내에서의 문제제기 등 내부 정치에 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부 정치를 벗어나 다시 광범위한 인민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에, 나는 이른바 ‘신당파’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소망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근거지는 필요하다. 국회 의석 몇 석 따위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약간이라도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아야만 대중들을 상대로 발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인민들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민들에게 선택 가능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진보신당의 이념과 실천이 보다 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선 뚜렷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갓 만들어지고 있는 정당이며 이념과 실천이 나름대로 검증될 시간이 전혀 없는 상황에선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흔쾌히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탈당한 사람들 중에서도 신당에 유보적인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강한 조직

    반면, 옛 민주노동당은 아무리 그 노선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오랜 역사와 특유의 조직력을 갖춘 정당이며 그동안 구축된 대표적 진보정당으로서의 이미지 또한 만만하지 않다. 또한 우리가 왜 거기서 뛰쳐나왔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얼어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얼어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얼어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다시 일어나 우리의 길을 꿋꿋이 갈 테지만, 그만큼 우리가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할 시간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총선 때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3월 2일부터 단 2주 만에 우리는 최소한 5개 시도당 이상에서 각각 1,000명이라는 중앙당 창당 요건을 갖추어야 하며, 수십 명의 지역구 후보를 만들어 내어야 하고, 총선에 필요한 중앙당과 각 지역구의 선거재정을 확보해야 하며, 옛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객관적 조건의 냉혹함은 어쩔 수 없이 상당 정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일이 추진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솔직히 나 또한 아주 흔쾌하지는 않으며 중앙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불만이 있다.

    무엇보다도,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더 솔직하게 대중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일단 최우선적으로 신당의 홈페이지부터 만들자. 굳이 훌륭하지 않아도 좋다. 기본적인 게시판 몇 개와 당원가입 및 후원 시스템 정도만 있어도 된다.

    그리고 그 홈페이지에 창당과 관련된 각종 일정이나 애로점 등을 솔직하게 밝히자. 신당의 각종 상황을 알릴 수 있는 홈페이지가 없다는 점이, 창당 과정이 상층에서의 논의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큰 원인이다. 많은 예비당원과 지지자들이 중앙만 쳐다보고 있도록 만들지 말라.

    하지만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많은 벗들에게 감히 말하고자 한다. 벗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참여하자고.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 더 이상 유예되지 않기 위해서. 드넓은 인민의 바다로 나아갈 배를 준비하기 위해서. 냉소와 방관은 우리 스스로를 해칠 따름이다.

    다시는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이른바 자주파의 노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부러운 것이 있으니 바로 조직력이다. 실제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내놓는 십일조를 통해 열 명이 한 명의 활동가를 만들어내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조직은 철저히 챙기는 그런 자세. 그 정도의 치열함은 우리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반성해야 할 때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조직논리만 내세우는 그들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그렇지는 않지 않은가. 심상정, 노회찬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우리는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단호한 발언을 위해서도 일단은 치열하게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총선 전에 만들어지는 신당은 어차피 총선용 임시정당일 뿐이다. 우선은 여기에 집중하자. 최선을 다해서 최소한의 근거지를 마련하자. 그리고 총선 후의 실질적인 창당 과정에서 당당하게 우리의 요구를 제기하자.

    치열하게 참여한 만큼, 단호하게 발언하자. 우리의 당은 결코 심상정, 노회찬 따위나 일부 상층 인사 몇 명이 좌우할 수 없음을. 우리의 당은 바로 우리 당원들의 자부심으로 만든 당임을.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보정당에 참여하는 당원들의 최소한의 명예다. 그리고 내가 민주노동당을 떠난 결정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러한 자부심을 민주노동당에선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선 후 만들어지는 신당에선 결코 당원으로서의 나의 자부심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발언할 것이다. 다시는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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