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하, 선진과 실용이 뭔 말입니까?
        2008년 02월 26일 12: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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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취임사는, 여러 문제를 다 잘 풀겠고 여러 계층을 모두 우대하겠다고 말해야 할 테니, 그 안에 논리적 모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 많이 늘어 놓아야 하는 대통령 취임사이더라도, 김우창 같은 옛 인문주의자와 변희재 같은 인터넷 연예 기자에게서 서로 어울릴 성싶잖은 자문을 얻은 취임사이더라도 이처럼 형용모순이고, 이처럼 맹탕이어서는 곤란하다.

       
      ▲사진=뉴시스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의 요지를 따지자면 "실용으로 선진화 이루겠다"는 것쯤 될 텐데, 도대체 선진화라는 게 뭔지, 실용은 또 뭔지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굳이 눈에 띄는 내용을 찾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구닥다리 민주주의관 정도 뿐이다.

    보통들 선진국을 들먹일 때면 핀란드는 교육 선진국이고 스웨덴은 복지 선진국이라는 둥, 프랑스는 문화 선진국이라는 둥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선진화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일까?

    그런데 8,000자가 넘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에는 선진화의 구체적 모습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단지 서너 차례 쓰인 ‘성장’이라는 말과 지난 선거공약에 비추어 그가 꿈꾸는 선진화라는 것이 경제 규모가 커지는 성장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7% 경제성장은 어디로 갔나?

    하지만 이 경제성장이라는 것도 대단히 모호하게 다루고 있다. 선거공약이었던 7% 경제성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여 더 활기차게 성장하겠다"는 공자님 말씀만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에서 유일하게 구체적인 대목을 찾아주자면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천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는 단 하나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무엇인지 모를 선진화를 위해 실용을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 좋다. 그렇다면 어떤 실용인가?

    노인들에게 암 무상치료를 해줄 것인가, 아니면 그 돈을 아동 무상보육에 돌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므로, 실용 정치는 가치 중립이나 몰가치일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저 "합리적 원리이자 …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이라고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되뇌이기만 한다.

    또다시 미루어 짐작컨대,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통일 또는 그 중간 지점인 듯이 보인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고 …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한 장엄한 출발을 선언합니다."

    정치인으로서 과거의 두 역사, 현존하는 두 정치 경향을 모두 아우르려는 것은 옳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내보인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 통일이 아니라, 산업화에 대한 무지, 민주화에 대한 무시라는 악조합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악조합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 내내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기조에 입각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 산업화의 성공은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아니라, ‘강한 정부, 조정된 시장’의 산물이다. 세계 어느 나라 학자든 그렇게 평가한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산업화를 계승하고자 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계획을 강조했어야 하는데, 그는 무개입과 방임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민주화 성과에 대한 무시는 많이 우려스럽다. "권리 주장이 책임의식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 선진국에서는 노사분규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 근로투쟁은 지양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징징거리지 말고 죽어지내라는 말이다. 주면 주는대로 받아먹으라는 말이다. 따져 보자. 과연 선진국 노동자는 조용히 죽어지내는가? 만약 선진국 노동자들이 조용히 지낸다면 그것은 얻을 만큼 얻은 결과이고, 우리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아직도 투쟁 중인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파업 증가율, 파업 참가자 수 증가율,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 일수 등 객관적 수치로 비교하면, 우리 나라의 노사갈등 지수는 OECD 30개 국가 중 14위로 중간에 머물고 있다(2002년~2004년 기준, 김동원, 「우리나라 노사관계 평가기준 연구」, 2007. 1).

    선진국은 노동운동 발전한 나라

    우리가 선진국이라 알고 있는 나라, 유럽이나 미국, 일본은 한국보다 노동운동이 더 발전해 있고, 노동자 임금도 비싸다. 따라서 형식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선진화의 일반적 경로에서 노동운동의 발전과 임금 인상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고, 그렇다면 ‘노동운동 억제’ 주장은 선진화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이재영, 「’선진화’와 ‘중도’는 보수정치 자신 없음의 고백」, <미래공방> 2007년 5, 6월호, 진보정치연구소

    민주주의 그리고 권리 주창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사회의 유연성이나 의사 합리성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권리 주장과 투쟁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여지껏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권리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더 튼튼하게 길러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도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 잘못 길러서, 선생님들이 게을러서, 종교인과 시민운동가와 언론인이 무책임해서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것도 금시초문이거니와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국민에게 할 말인가?

    부모는 아이들 잘 키워라, 장차 병사가 될 재목이다. 1930~40년대 독일과 일본의 국민 세뇌 아니던가?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취임식처럼 점잖은 자리 아니면 "가톨릭은 양심선언 하지 말고, 참여연대는 딴지 걸지 말고, <경향신문>은 대통령 심기 건들지 말라"는 협박으로 현실화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부모들에 대한 이명박의 협박?

    케네디가,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그 시대의 문법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처럼 국민에게 주문하는 것은 ‘황국신민 총동원’ 수준의 관점이다.

    개탄스럽다. 어느 적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이딴 식으로 해석했던가? 박정희 시절 반상회보에 나오던 선진국 운운이 2008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되살아나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발전의 엔진에 다시 불을 붙여 더욱 힘차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연료전지와 태양광의 시대에 내연기관도 아니고 증기기관에 땔감 넣겠다는 시대 착오에 웃을 수도 없으니, 어찌 할거나, 앞으로 5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 원고에 있지도 않은 "이제는 배부른 나라로 바뀌었습니다"라는 말을 끼워넣어 연설했다. 세상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위정자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아직 배부르지 않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인데, 뽑힌 지 두 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은 "배 부를 만큼 부른 거 아니야? 이제 참아야지"라는 식으로 국민을 배반하며 집권 5년을 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취임기 대통령에게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의 지지율로 화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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