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분당보다 더 큰 좌절감으로
    2008년 02월 23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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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비대위 대표를 맡은 천영세 의원이 총선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했다. 며칠 전에는 단병호 의원이 탈당과 동시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론 두 분의 각기 다른 고충을 짐작할 만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 출마 경험이 없이는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없는 만큼,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불출마에 박수칠 수 없는 이유

민주노총의 양대 흐름을 대표할 만한 두 분이 불출마를 한다는 건, 후배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아직은 험난하기만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도를 생각하면 선뜻 박수칠 수가 없다. ‘당 혁신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든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논리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두 분에 있지 않고 이런 불출마의 ‘결단’들이 깨끗한 것으로, 무욕(無慾)하고 ‘쿨’한 것으로 인식되는 우리의 문화다. 두 분을 포함하여 8명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처음부터 지역구 출마를 열심히 준비하지 않아도 별로 비판받지 않았던 것도 ‘소선거구제’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크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도 소선거구제다. 소선거구제가 매우 비민주적인 제도라서 ‘투쟁’하면 금방 바뀔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후 벌써 60년 동안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삼아왔다. 전국구 비례대표가 있지만 보완이라 할 수 있고, 2명이 동반 당선된 중선거구제를 잠시 한 적이 있다.

법률은 국회의원들이 만든다. 국회의원들은 80%가 지역구 출신이다. 그러므로 소선거구제는 정치학자들의 바꾸자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선거구제에 적응하지 않고서, 소선거구제 하에서 당선자를 내지 않고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창조한국당의 운명도 풍전등화다.

우리나라에서 총선은 군소정당들의 무덤이다. 대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제3, 혹은 제4후보도 총선을 거치면서 거대 정당에 흡수되어 갔다. 그래서 소선거구제 하에서 정치구도는 끊임없이 양당체제로 수렴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은 ‘자유당’을 짓밟고 양당체제의 일익으로 올라서지 못하면 곧 사라질 운명이다.  

총선은 군소정당의 무덤

한국의 보수/자유 양당 체제가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 구도가 그나마 진보정당의 숨통을 틔워 주는 틈새를 만들고 있다. 울산과 창원, 거제와 광주 광산 등지에서 진보정당은 지역의 제2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불안하지만 양당체제를 형성하고 제1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의 ‘비판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지역 간부들을 ‘총알받이’로 동원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그들이 악전고투하면서 중상을 입기 때문이다. 그들은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좌절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직설적인 이야기를 듣고 국민의 마음을 느끼고 공감하기도 한다. 서서히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에 적응을 하는 것이다.

지역구 출마를 해서 갑(甲)이 아닌 을(乙)로서 온갖 소릴 듣다보면 최소한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이해한다. 민심을 천심이라고 한 건 민심은 무서운 것이니 감히 민심을 거역하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동시에 민심은 알기 어렵다, 하늘처럼 변덕스럽고, 이중, 삼중적이라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으면 실전 경험이 없는 사령관들이 전쟁을 지휘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영세, 단병호 두 분의 불출마 선언은 분당 소식보다 더 깊은 좌절감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총선으로 그 동안의 도전과 실험을 끝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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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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