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인선, 노무현과 뭐가 다른가
        2008년 02월 22일 10: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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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서민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성장의 열매가 서민들에게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철저히 검토되어야 합니다. 지난 5년 평균 4% 성장했지만, 사실상 소외된 계층에게 성장의 성과가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 성장률이 6%든 7%가 되든, 수치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가 서민들에게 파급되느냐, 그분들에게 성과가 배분되느냐를 잘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 이명박, [이명박 정부 국정운용에 관한 합동 워크숍], 2월 18일

       
    ▲ 사진=뉴시스
     

    이명박의 이 발언은, 경제 성장을 앞세우면서도 서민을 위무 또는 현혹하기 위한 수사(修辭)는 잊지 않았던 노무현의 말들과 같다. 어쨌거나 이명박의 ‘7% 성장’이란 게, “국민연금 용돈 아니다”라는 노무현의 공약처럼 선거 때는 소리 높이 외쳐지다, 막상 집권 중에는 언제 그랬냐며 사라지는 운명에 처한 듯하다.

    물론 이명박의 발빼기는 부실 채권으로 인한 미국 경기 침체 등 경제요인의 악화를 고려한 때문이기도 하고,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외에 두어 가지 배경을 더 찾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적 특성이다. 이명박 그리고 그 전임자인 노무현 등이 내세우는 ‘경제 합리적 정책’들은 때때로 굴절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한국의 자수성가형 정치인 대부분이 갖는 강박과 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급격히 약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인들 역시 ‘국민 잘 살게 하자’는 구래의 잠재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

    한국의 파퓰리즘 정치

    둘째, 형평에 대한 욕구가 크고, 성과 배분을 등한시하는 정치인들에게 가혹한 한국 정치의 파퓰리즘적 특성 덕분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에게는 배고파도 참아줄 수 있었지만, 실적을 보여주지 못한 노무현에게서 국민들은 주저 없이 등 돌리지 않았던가.

    앞으로 통치자들에 대한 인내의 기간은 더 짧아질 것이고, 국민들의 보복은 더 가혹해질 것이다. 이명박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물론 말에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

    ‘개혁단체’나 ‘개혁언론’에서는 이명박의 인사(人事)를 혹평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우익 익사 몇을 중용한 외에 이명박의 사람 쓰기는 노무현과 판박이다. 경제 관료들은 전두환, 김영삼 때부터 내려온 그대로이고,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나 학계로부터의 수혈도 매 한 가지다.

    이처럼 사람을 빌려다 쓰는 것은 이명박 역시 노무현처럼 보수 양당 체제에 기대어 벼락 출세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벼락 출세한 보수 정치인들은 오랜 정치활동을 통해 다듬어진 국정 소신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자신과 소신이 비슷한 정치인이나 관료 풀(pool)이 적으므로 수혈로써 임시변통하는 것이다.

    이런 수혈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전파에 긍정적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도대체 대통령의 진의라는 게 무엇인지 불분명하기도 하거니와 수혈된 관료들과 손발을 맞춰 볼래야 맞출 것도 없는 노릇이니, 이른바 국정혼란이란 게 계속될 것임은 너무도 뻔하다.

    인수위원회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단연 통일과 교육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통일과 교육이란 말인가? 경제나 복지에서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하려면 좌경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륀지’는 김영삼 때부터

    노무현은 한나라당과 똑같은 경제, 노동, 복지 정책을 호도하기 위해 ‘4대 개혁 입법’을 내걸고, 통일과 교육에서의 차별화로 개혁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려 했었다. 이제 이명박은 그 정반대로의 차별화와 정치적 주도권 행사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시계는 다시 2004년 가을로 되돌아갔다.

    결국 배를 못 채워주니 머리를 속이겠다는 계산이고, 노무현과 똑같은 정치다. ‘지나친 우경화’를 걱정할 것도 없다. ‘어륀지’는 김영삼의 세계화와 노무현의 FTA가 다다를 막바지의 궁극적 귀결이며, 기업과 정부에 그쳤던 국제경쟁력의 개인화일 뿐이지 않은가.

    이명박이든, 노무현이든 서민 배고프긴 마찬가지다. 노무현의 개혁을 지지하기 위해 힘써봐야 배불러지지 않았던 데 비추어 보면, 이명박의 우경화를 저지하기 위해 힘쓸 일도 아니다. 그런 일은 손학규의 몫이다. 프로레슬링처럼 짜고 하는 싸움에 덩달아 흥분해서도, 이명박과 손학규의 한나라당 경선 2라운드에 뛰어들어서도 안 된다.

    노동자와 서민의 눈으로 보자면, 이명박과 노무현은 ‘대동소이’가 아니라 ‘초록동색’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외모가 다른 것 만큼만 이명박과 노무현은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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