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와 이랜드 노동자
        2008년 02월 21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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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위의 정부 부처 통폐합 결정을 놓고, 연일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인수위의 정부 부처 통폐합 결정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안은 역시 여성가족부의 존폐 여부이다(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20일, 여성가족부를 존치시키기로 합의했다 : 편집자 주). 인수위가 단지 효율성만을 따지고 싶은 것이라면, 그동안 여성가족부가 여성을 위하여 어떠한 일들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인수위는 다짜고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그토록 이념을 케케묵은 것 취급하며, 이제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인수위의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은 효율성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이념적이다.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이때, 주목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루이스 A. 틸리와 조앤 W. 스콧이 쓴 『여성, 노동, 가족』(김영, 박기남, 장경선 옮김, 후마니타스, 2008)이라는 책이다.

    『여성, 노동, 가족』은 미국에서 페미니즘이 제2의 물결을 이룬 시기였던 1978년에 처음 출판된 책으로, 여성의 노동이나 여성사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고전이다.

    임노동 참여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가?

       
     
     

    책의 저자들은 여성의 임노동 참여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크게 향상시키고 가족 내 역할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관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전산업화 시기의 가족경제에서 산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프랑스에서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예를 비교하며 설명한다.

    임노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계기는 역시 산업화이지만, 전산업화 시기에도 임노동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임노동이 반드시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농촌이나 도시나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하인으로 일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다른 가족의 집에서 하녀로 노동하며 함께 살았다.

    산업화 시기가 시작되면서 여성 고용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업, 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새로운 일자리들이 여성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산업의 형태가 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기더라도, 특정한 고용 관계는 변함없이 계속 이어졌다. 즉 가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녀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산업 형태가 달라지고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증가하더라도 가내 서비스는 여성 노동의 영역이라는 식의 사회적 헤게모니가 달라지지 않는 한,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가사가 여성 역할이라는 사회적 헤게모니

    1851년 영국에서는 전체 여성 노동자의 45%가 제조업에 종사할 만큼 산업 구조가 크게 달라지고 여성의 노동 형태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도 40%나 되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화에 따라 가내 서비스가 하나의 직업으로서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 농업에서 여성의 고용 기회가 감소했지만, 제조업이 잠재적인 모든 여성 노동자를 흡수하지는 못했기에 그들은 하녀가 되었다.

    게다가 농촌 지역에 사는 많은 비율의 노동자는 가정부였다. 그 결과 서비스경제 부문이 커졌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것처럼) 근대적인 화이트칼라직(유통업과 전문직)이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적인 영역인 가내 서비스가 19세기 말까지 서비스 부문에서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여성, 노동, 가족』 pp. 111~112.

    또한 사회의 변화 양상과는 무관하게 모든 시기에서 여성의 노동은 가족 내에서 여성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전략으로 결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노동은 연령별로 차이를 나타내며, 특히 혼인 이후나 출산 이후에 이전과는 많은 차이를 나타냈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여성의 취업 유형은 경제, 인구, 가족의 상호 작용에 따라 규정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결론은 제목에 이미 들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즉, ‘여성’의 ‘노동’은 ‘가족’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비록 저자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1700년 이후의 영국과 프랑스의 여성사라고는 하더라도, 이 책의 결론은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문득 점거 투쟁을 하던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이 생각났다. 그녀들은 난생 처음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면서도 신세한탄을 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자식들이 학교는 잘 다녀왔을까 하는 걱정을 늘어놓는 시간이 더욱 많았다.

    여성가족부와 이랜드 노동자

    다시 여성가족부 이야기로 돌아와 보도록 하자. 나 역시 여성가족부에 불만이 많다. 여성가족부는 이랜드 노동자들, 삼성 SDI 노동자들, KTX 승무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슨 노력을 했던가? 나는 여성가족부가 그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했는지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일하지 못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옳을까? 그렇지 않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여성부로 독립하여 여성의 권익 향상, 특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옮긴이 후기를 통하여 “출판사 재정에 도움을 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책을 출판하기로 선뜻 결정하고 꼼꼼히 책을 만들어 준 후마니타스와 담당 편집자 박후란씨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책이 “출판사 재정에 도움을 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책”인지는 몰라도, 이와 같은 때에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좋은 책을 만들고 있는 후마니타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인수위의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에 분노한다는 옮긴이들의 입장에 깊은 공감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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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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