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주의, 자주파 그리고 장애인
        2008년 02월 19일 04: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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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8일, 나는 민주노동당을 떠나는 서울지역 당원들과 함께 탈당을 선언했다. 이유는 성명서에서처럼 민주노동당이 더 이상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장 물어보는 것이 “넌 포지션이 어디냐? 포워드냐 리폼이냐 리베로냐 아니면 셀프서비스냐”다. 나는 ‘포워드’가 될 만한 힘도 없고, 낡은 옷 ‘리폼’해 입을 주변머리도 없고, ‘리베로’가 될 만큼 오지랖도 넓지 않고 장애특성상 ‘셀프서비스’도 불편한 사람이다.

    그저 앞의 네 포지션을 합한 것의 2배에 달하는 힘을 가진 ‘인디’밴드들, 심지어 그들과 단지 이니셜이 같을 뿐인데(IS : 국제사회주의 = 일성주의?) 그들의 연주에 맞춰 불러대는 ‘차차차’까지 너무나도 ‘자주’ 이루어지는 인디답지 않은 모리배들의 행태에 참을성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관심을 좀 끌어볼까 짧은 영어쪼가리 갖다 붙여, 되도 않는 농담 몇 줄 지껄여 봤다. 안 그래도 용량 부족으로 소프트웨어 대신 건설에 돈 처바르는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에 매몰된 2메가바이트 정권의 대책 없는 영어정책에 머리 아플 독자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킨 것 같아서 쪼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다.

       
    ▲ 2007년 8월, 광화문 건널목 건너기 장애 체험
     

    난 뇌병변장애인에 돈 안되고 일만 많은 지역단체 활동가다. 대학 내내 운동한답시고 집회나 쫓아다니다 졸업하고 한 5년 장애운동 하다가 정당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실정치와 가장 가까우면서 나의 반골 기질에 맞는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 생각하고 입당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어찌어찌하여 지방선거 후보도 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지역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관악사회복지라는 지역복지운동단체에서 장애인야학을 운영하고 있다.

    나의 한총련 시절

    내가 운동이란 것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면 꼭 학생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대표적인 운동권 동아리라고 알려져 있는 단과대학 풍물패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당시 자주적 학생운동을 대표했던 한총련과 총학생회, 단과대학의 다수 일꾼들을 배출해 낸 동아리였다. 함께 활동했던 선배들 중엔 범청학련 남측대표로 방북했다 귀국해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었다. 민주노동당에도 그 동아리의 선후배 및 동기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풍물패에서 ‘학습’이니 ‘교양’이니 하는 것을 통해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그들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자연스레 남한사회의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가 미 제국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한총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예전에 장애운동으로 같이 활동했던, 지금은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소위 평등파로 분류되는 후배 한 녀석이 그 당시에 나와 술자리에서 토론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나의 조직 한총련’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선택적 치매증상이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2학년 때부터 장애인운동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고, 학생운동권의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소위 ‘전학협’ 등의 지금의 평등파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장애인문제는 ‘노선을 떠나’ 당위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장애인투쟁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경찰의 폭력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조국통일이 먼저냐 노동해방이 먼저냐’ 하는 식으로 노선논쟁을 하기도 하면서 차츰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대학입학 4년째 되던 해에는 좌파를 표방한 동아리연합회의 집행부로 활동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민족주의와 통일운동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통일운동을 지향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대동단결’이 과연 다양한 생각과 현장,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될 수 있는 단결인지에 대한 문제부터 민족주의가 과연 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념인지에 대한 의문에 이르기까지 운동철학 전반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 것이다.

    평등파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자주파의 장애관

    그런 고민들은 졸업 이후 장애운동 현장에서 활동하고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서서히 민족주의와 자주파에 대한 불신으로 전환되었다. 소위 평등파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들의 장애인투쟁 결합은 이념과 확신에 의한 것이 아닌 ‘당위’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의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장애인의 문제는 우선과제가 아니었고, 합의조차도 선언적이거나 당위적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장애인의 과제가 정파의 이익과 상충될 경우에는 시기상조니 논의 부족이니 하는 이유로 매번 결정을 유예하다가 장애인당원들이 실력행사에 나서야 결정이 나곤 했다.

    물론 평등파가 다수였다면 당이 장애인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자주파 당원들의 비자주적인 행태(그것이 변치 않는 신념이라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문제를 논의하건 한 번 의사를 확인하고 한참을 토론한 후에 충분히 설득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잠깐의 정파회의로 인해 설득은 물거품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달라도 자파 전체의 뜻과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이 조직의 단결을 해치고 분열을 책동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기사 ‘통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니 생각도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런 ‘조직적 결정’이 한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조직적인 합의를 거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너무나도 순식간에 그런 합의가 이루어진다. 정파 수장의 지령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의 문화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과정이다.

    내가 알기로 그것이 바로 ‘수령주의’고 논란이 되고 있는 주사파와 종북주의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방송을 통해 본 북의 인민군 행렬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을 보며 가졌던 답답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그러한 조직문화에서 다름과 차이가 어떻게 존중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장애인 및 사회적 소수자 문제의 해결은 바로 그 다름과 차이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말이다.

    조직 문화와 다름의 인정

    조금 더 이야기를 진전시켜서 ‘민족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민족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개념부터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인종이나 국가 단위인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정의되어 있다.

    결국 민족은 사회적인 집단이다. 처음부터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회집단과의 협력이나 침략 등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민족의 개념이 강조되는 것은 해당 사회집단의 단결된 힘이 절실하게 요구될 경우로 크게 두 가지 정도가 될 것 같다.

    하나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회집단에 의해 기존의 사회집단이 억압당하거나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국가를 성립하거나 다른 사회집단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할 경우다. 개인적으로 민족주의는 그 에너지가 내부로 향할 때는 순기능을 하지만 외부로 향할 때는 엄청난 비인간적 폭력을 동반한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시대의 예를 들어보자. 조선이라는 약한 사회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일본이라는 강한 사회집단에 의해 그 구성원의 당연한 권리가 억압당하고 있는 경우 민족이라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내부 구성원간의 강력한 연대의 매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의 경우 서방세계로부터 동북아를 지켜줄 유일한 민족으로서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며 주변국가를 침략하고 ‘황국신민화’라는 명목으로 그 구성원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폭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사회집단에 대한 폭력 뿐 아니라 자기 집단 내의 약자들에 대한 폭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자기 집단의 우월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경향을 띠는 것이다. 나치가 유태인에 대한 대량학살 전에 전쟁에 걸림돌이 되는 자국의 장애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먼저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민족주의는 어떤가? 그 에너지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떠한 계기만 주어지면 ‘애국심’ 하나로 똘똘 뭉치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현상의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황우석 신드롬이다. 복제소 영롱이와 복제개 스너피, 이어 인간배아복제줄기세포 배양 성공에 이르기까지 황우석은 대한민국에 엄청난 국부를 가져올 생명과학의 대명사, 척수장애나 뇌병변장애, 희귀난치성 질환 등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치료가 가능하다는 ‘마지막 희망’의 불빛이었고, 심지어 이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전세계를 속인 희대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그를 믿는다며, 이 사건이 원천기술의 확보를 위한 미국 정보국의 음모라며 황우석의 연구를 지원하라고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줄기세포연구만 성공한다면 인간배아복제나 난자적출 여성 등의 생명윤리의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논문조작 여부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황우석과 장애인

    황우석은 대한민국 과학계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그가 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믿어야 하고 믿을 수밖에 없다. 비판과 의심은 매국이고 반국가행위다. 설령 그의 연구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그 이후의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도 그들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가히 종교에 가까운 광기다.

    나는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의 기관지 <저항하라>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줄기세포 논란은 장애인의 문제가 사회적 환경을 바꾸어내는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고가의 의료기술에 의한 치료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확장시킬 것이고, 이것은 치료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돈 없고 능력 없는 낙오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경고를 했던 바 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인간배아복제 성공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그저 그때그때 보이는 현상에 대한 대응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당직자였던 노현기씨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황우석 신드롬 이면의 파시즘」이라는 글에서 딸의 손까지 붙잡고 난자를 기증하기 위해 나온 어머니를 조선의 소녀들에게 군대 성노예로 나갈 것을 선동했던 일제시대 친일시인에 비유한 사건에 대한 당의 태도를 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당시 당대표였던 권영길은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가 보여준 빛나는 성과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당원들에게 모든 발언과 의견제시에 신중할 것을 주문하고, 신중하지 못한 당직자에게 사실상 당직사퇴를 종용했다.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민족주의적 광기에 외롭게 투쟁하는 당원을 엄호하지는 못할망정 그 광기의 진원에 대해 ‘빛나는 성과에 아낌없는 찬사’까지 보낸 것은 차라리 당대표가 반어법으로 그들을 조롱한 것이라 믿고 싶을 정도다.

    일제시대나 군사독재정권이라는 눈에 보이는 폭력이 만연한 시대상황에서는 민족주의가 진보적 저항운동으로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정권의 등장으로 진보로서의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비정규직이나 사회적소수자들의 문제, 민생현안 등에 대해 정권과 각을 세워 싸우는 모습보다는 6.15선언과 10.4합의에 열광하고, 반한나라당 전선에 합류하여 ‘열린우리당 2중대’로 비치는 모습이 더 많아 여당과 지지율의 동반등락을 반복했다. 심지어 중요 선거시기마다.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공공연하게 자행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자주파의 이러한 행보는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른다. 민족주의의 관점에서는 더 이상 자유주의세력들과의 차별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당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마저 있다. 그것은 평등파조차도 전체 진보운동의 미래보다는 민주노동당의 성과를 공유하는 것에 집착하여 그들의 패권적 행태를 일정정도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당은 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지금 신당을 추진하는 몇몇 세력들에 대해 아직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평등파도 현재의 진보진영의 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명쾌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문제는 당위적인 연대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의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고, 지역중심의 현장을 통해 욕구를 수렴하고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현재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사회당 등을 비롯한 좌파성향의 장애인,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준비 중이다. 뜻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활동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한다.

    김주현 / 관악 장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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