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9일 선택할 정당을 달라"
        2008년 02월 17일 08: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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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19일 대선 참패를 도화선으로 민주노동당의 사망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깃발이 올랐다.

    그리고 지난 2월 3일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거부된 뒤, 특히 설 연휴를 전후해서 새로운 진보신당 창당 흐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선도 탈당파(새로운 진보정당운동)와 후속 탈당파(진보신당 제안모임)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면서 진보신당의 깃발 아래 세 규합의 조짐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안팎에서 고언이 쏟아지고 있다.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도 많다.

    그 가운데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총선 전 창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정당의 틀로 총선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에 대한 것이다. 일종의 ‘시기상조론’이라고 할 수 있는 흐름 속에서 제기된 몇몇 주요 쟁점들에 대해 답하면서, 나는 ‘총선 전 창당-연속 2단계 창당’이 지금/여기서 왜 필요하고 불가피한지, 어떤 점에서 힘들지만 바른 선택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총선 전 창당, 급조 아니다

    첫째, 준비 없는 가운데 급조된 총선용 정당이라는 우려에 대한 것이다. “총선 전에 당을 만든다는 것은 도깨비 같은 소리”라거나, “무리하게 실력도 안 되는 정당을 급조하는 것보다 사회적, 대중적으로 일정한 투자를 하고 나서 얻을 것 얻어야 한다.”는 등등이 여기에 속한다.

    일면 타당한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창당까지 주어진 시간이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지역 현장과 생산 현장에서 실력을 쌓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그 경험과 역사를 도외시한 것에 가깝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국민승리21 2년여, 민주노동당 8년이라는 정당 활동의 역사는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라 특히 일선 정치 현장에서 대중과 소통하고 당 활동가들을 단련시키는 등 소중한 자산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또한 이러한 지적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실망과 분노와 배반감으로 속출하고 있는 탈당의 흐름과 창당 동력의 기약 없는 흩어짐을 어떻게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그릇에 담아낼 것인가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국민들은 진보신당 흐름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은 창당을 총선 후로 돌리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총선 전 창당, 정당을 통한 선거 참여, 선거운동 과정에서 다수 대중들에게, 특히 가난한 보통사람들에게 왜 민주노동당과 결별했는지,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말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갖고 있는 새로운 비전과 향후 국정 운영의 청사진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반하면서 민생과 생태와 평화의 가치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맞다.

    대중조직은 움직이고 있다

    둘째, 대중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설픈 실험을 하는 것은 안 하느니 못하다는 지적에 대한 것이다. 이 지적은 “길이 없는데 자꾸 가자고 하는 것은 백전백패이자 운동의 역사를 몇 십 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중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결정한 민주노총을 보자.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는 국민적 파산선고를 당한 민주노동당을 소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었던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거부된 이후에도 민주노동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분열과 음해세력으로 신당 창당 세력을 규탄하면서 민주노동당 사수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내부 곳곳에서 거센 반발과 항의, 집단적인 이탈과 진보신당 깃발로의 합류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그냥 일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2004년 총선 이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당에 대해 누적된 실망과 분노가 지난 17대 대선과 2월 3일 임시 당대회 결과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사실이 그러한데 왜 대중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10년’을 향한 출발, 그 ‘전환의 계곡’을 넘기 위해서는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진통으로서 일시적인 혼란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잃어가고 있는 민주노총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며, 또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없는 길을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길은 분명 있는 데도 함께 가기를 주저하는 것이 어쩌면 운동의 역사를 후퇴시킬지 모른다.

    진보의 다원주의

    셋째, 다양한 흐름들과 같이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따라서 대중의 눈에는 민주노동당과 대동소이한 정치집단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총선 전 창당을 막을 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최대한 개방적 자세로 총선 전 창당을 하고 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낸 뒤, 총선 후에는 선 창당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원탁회의 등을 통해 연속 2단계 창당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신당이 꿈꾸는 새로운 창당이란 다양한 진보의 가치를 담아내는 ‘진보의 전면적 재구성’ 과정이자,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운동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출발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모든 기득권을 다 포기하는 자세로 최소한의 공통적인 기준과 원칙을 정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결집해 국민들에게 뚜렷이 부각시켜야” 한다는 애정어린 지적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어떤 특정 정파나 세력이 중심이 돼 또 다른 분파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나, “평등파 일부의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21세기 진보정당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 “당의 강령이나 정신은 보통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와 기대를 담아 자연스럽게 아래로부터 정리돼 올라와야 실제 넓은 세계 속의 다양한 유권자들과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지적 등은 연속 2단계 창당의 과정에서 반드시 경청해야 할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지적들을 염두에 둔다면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의 잘못을 반복하는 ‘도로 민주노동당’이 되거나 또는 탈당한 평등파만의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전체 구성에서 민주노동당 분리파는 49%면 족하고, 51%는 그 외의 다양한 흐름들로부터 채워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총선 전 창당에서부터 시작되고 총선 후 연속 2단계 창당을 통해 실질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진보의 전면적 재구성과 진보의 다원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총선 불참론, 먹물스런 편견

    끝으로, 이러한 우려와 회의는 대체로 18대 총선에 참여하지 말라, 무리하게 대응하지 말라는 지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총선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경쟁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존재, 취약한 인적 물적 기반으로 볼 때 ‘약한 신생정당’으로 출범하는 진보신당이 총선에서 큰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과욕이기 때문이다. 또 진보신당은 권력기회주의 집단에 의한 선거용 정당이 아니라, 최소한 10년을 내다보면서 진정으로 민심에 응답하고 책임을 지는,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의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 준비와 장기적인 창당 작업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것은 지식인적 발상일 뿐 대중들에게는 구분이 안 갈 것”이라는 지적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그런 지적이야말로 선거와 창당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없는 지식인적 발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

    왜냐하면 선거를 중심 계기로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나 효과 면에서나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총선 참여를 통해 흩어진 역량을 모으고 진보신당의 운영 틀을 일찍 확립하면서 당원들의 결의와 활동의 긴장도를 높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총선 불참론이야말로 지식인의 ‘먹물스러운’ 편견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총선 불참론은 진보신당 창당 흐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민주노동당과의 긴장과 대립 관계를 피상적으로만 아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을 왜 탈당했는가, 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려고 하는가?

    무엇보다 그 첫 출발점은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종북-패권주의’와 ‘대중에 대한 응답과 정치적 책임의 부재’에 대한 최소한의 변화와 혁신마저도 거부한 것이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을 대체하기 위한 신당 창당과 선거 참여는 쉽지 않은 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당의 틀을 통한 선거 참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민주노동당에 실망한 활동가층뿐만 아니라, 지지층, 잠재적 지지층, 대중들에게 새로운 응답과 책임의 정치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첫 관문이자 실험대이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는 소멸해야 한다

    진보라는 깃발 아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갈 수는 없다. 결국 하나는 소멸해야 하고,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그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그랬을 때 진보신당의 초기 성패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민주노동당과의 총선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달려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총선 불참은 정치적 오판을 넘어 자멸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의 일반적 형식은 어느 세력도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거 아닌 다른 이행의 방식을 원천적으로 배제․봉쇄하는 제도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결국 선거와 복수정당의 경쟁만큼 범국민적인 정당성을 갖는 정치제도가 이 사회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한편 선거정치가 제도화된 상황에서 선거란 정치조직이 자신의 존재와 색깔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확인받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존재의 대중적 확인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거 참여는 결코 회피하거나 우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좋은 사람들과 더 나은 내용들(대안의 가치와 비전과 정책 등)을 질 좋은 새 그릇에 담아 대중들에게 솔직담백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창당 흐름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현재적/잠재적) 지지층과 대중들에게 이미 알려져 왔다. 그리고 기성 보수 정당들에 실망한, 민주노동당에 분노하고 배반당한 노동자와 양식있는 유권자들로부터 “4월 9일 표를 던질 정당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있기도 하다.

    그 목소리는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민주노동당의 실상이 드러날수록 더 커질 것이다. 노동자와 서민들을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의 포로가 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진보의 정치적 대표성을, 진보정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채 ‘민족지상주의 정당’을 자임한 민주노동당에게 맡겨둘 수는 없지 않는가.

    총선을 그들에게 맡겨 둘 수는 없다

    “노동자와 서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실망해서 떠나고 있는 활동가층과 지지층, 잠재적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전망을 열어가기 위해 비록 힘들긴 하지만 총선 전에 진보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맞다.

    그랬을 때 무엇보다 핵심적인 일은 보통의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눈이 아니라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진보의 전면적 재구성과 진보의 다원주의를 기치로 한 ‘선거 전 창당-연속 2단계 창당’은 그것을 거부하는 급조된 정당의 길이 아니라, 정확히 그것에 부합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10년의 실천 경험과 기억, 그리고 민주노동당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사무침과 참담함이 그렇게 만들어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4월 9일을 민주노동당에게 맡겨둔 채 나 홀로 무소속이나 무소속 선거연합의 틀로 각 지역에서 각개 격파(당)할 것인가? 굳이 그럴 거라면 왜 총선 전에 탈당을 했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이 있어야 하는데 나로서는 지금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이미 진보정당임을 포기한, 대중들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은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노동자와 서민들의 유일한 희망임을 자임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연속 2단계 창당을 전제로 한 총선 전 창당의 길은 비록 힘들더라도 회피할 수 없는 길이며, 또한 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왜 활동가층이 민주노동당에 실망하고 이탈했는지, 왜 평당원들과 생산 현장 수준에서 탈당의 물결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지, 왜 노동자와 서민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 파산 선고를 내렸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주기를 바라면서, 진보신당 창당을 여전히 시기상조로 보는 분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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