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성공을 위한 몇 가지 제언
        2008년 02월 16일 05: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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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밤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주도하는 ‘진보신당 제안모임’이 출범했다. 필자는 이 모임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사망을 애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터널 끝의 한 줄기 빛이기를 바란다. 민주노동당의 성과를 지혜롭게 계승하되 민주노동당의 과오는 슬기롭게 피해가는 정당의 싹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의 관점에서 심상정 비대위의 투쟁은 무엇보다도 20년간 진보정치를 지배해온 자주파-평등파의 해묵은 대립구도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심상정 비대위 투쟁의 본질

       
      ▲국민들에게 혁신 실패를 사과하며 사퇴하는 비대위원들.(사진=뉴시스)
     

    자주파 일각에서는 이를 ‘미제의 책동’으로 저주했고 평등파 일각에서는 이를 ‘봉합을 위한 수순’으로 조롱하기도 했으며 비대위의 투쟁을 종북주의 청산/국가보안법 옹호라는 화해할 수 없는 이념 대립으로 변질시켰고 그 결과 심상정 비대위의 투쟁이 ‘평등파의 혁신 노력’이라는 정파주의적 견해로 왜곡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평등파의 종북주의 논쟁과 명백히 다른 성격의 투쟁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실패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지만 심상정의 투쟁은 4년 민주노동당을 지배해온 자주파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대표성-책임성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민주화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 북한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벌여 당원과 국민들을 당혹하게 했다면 법정에서 밝혀질 사실관계와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당 간부로서 당원들을 대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책임을 커진다. 그러므로 자진 탈당을 해서라도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을 사과하고 민주노동당에 누를 끼친 것을 뉘우치는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책임 의식이 부족한 당 간부라면 당 지도부는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숭례문의 화재를 책임지고자 방화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수많은 관계 기관들의 대표들도 사과를 하거나 사임한다.

    도무지 무책임한 정당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는 북핵자위권 발동 파문과 독도 공수부대 파견 발언 파문이 보여주었듯이 평화정당으로서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원과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행위를 벌여놓고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런 지도부가 당의 정보를 북한에 유출했다고 의심받는 당원의 책임을 묻기를 바랐다면 순진한 생각인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혹은 진의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특정한 발언과 행위가 파문을 일으켰다면 이에 책임을 지는 것은 민주 정치의 기본이다. 자주파가 ‘친미사대주의’ ‘수구꼴통’이라고 부르는 정치인들도 다 하는 일이다.

    하물며 국민적 의혹을 불러일으킨 행위에 대해 당원도 무책임하고 지도부도 무책임하다면 도대체 누가 이 정당을 당원과 국민에 대한 대표성-책임성의 원칙에 운영되는 당으로 간주할 것인가?

    그러므로 심상정의 투쟁은 민주노동당을 당원과 국민의 여론이 반영되는 민주정당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을 좌절시킨 자주파는 그간 원칙 없이 당을 운영해왔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는 정치집단임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이 민주주의라는 규칙을 지키는 다양한 대안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당으로 발전하리라는 기대는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사실 심상정 비대위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자주파 내부의 반성과 평등파의 단결이라는 조건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정확히 그 반대의 일이었다. 자주파 내의 반성세력은 그 실체가 불분명했고 평등파는 분열되어 서로 다퉜다. 그 순간 비대위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주파의 무반성과 평등파의 분열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자주파를 민주화하려는 노력의 실패만이 아니었다. 이것은 평등파-자주파 해묵은 정파구도를 뛰어넘어 민주노동당을 당원 및 민중과 소통하는 민주적인 책임정당으로 만들려는 노력 자체의 실패였다.

    또한 이것은 대선 참패와 함께 ‘산송장’이 되어버린 권영길의 리더쉽을 대체하는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봉쇄한 것이었다.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자주파-평등파 대결구도를 뛰어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을 구출할 유일한 정치인은 심상정이었다.

    이미 당내 경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목마 태운 자주파들은 스스로 당원과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정치적 행위를 선보인 바 있다.

    이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혁신을 염원했던 당원들의 탈당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눈사태가 되었다. 이들의 탈당을 평등파의 분열행위로 낙인찍으려는 자주파의 안간힘은 정치적 사팔뜨기 행위에 불과하고 이들의 행위를 신당파의 행보에 대한 사후동의로 보는 평등파 일각의 착각도 마뜩찮다. 놀라운 것은 평등파 일각에서 신당파의 투쟁과 비대위의 투쟁을 동일한 목적을 위한 이중플레이로 간주하는 시각이다.

    이것은 신당파에도 비대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며 엄연한 정치적 판단의 차이를 은폐하여 제대로 된 통합에 외려 방해만을 조성할 것이며, 평등파의 당을 뛰어넘어야 할 진보신당의 탄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애당초 신당파는 소위 사상적 단절을 목표를 삼은 화해불가능한 싸움을 제안했지만 심상정 비대위는 당의 민주화라는 현실적 목표를 성취하지 않는다면 당의 몰락은 피할 길이 없다는 정치적 절박함의 산물이었다. 이같은 차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창당 졸속으로 하면 안돼

    이 같은 상황 판단을 전제로 심상정-노회찬이 주도할 ‘진보신당 제안모임’에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새로 출범하는 정치세력은 정치적 현실주의에 충실하여 근거없는 낙관주의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굳게 믿던 사원이 홀로 창업의 길에 나설 때 갖게 되는 가장 흔한 생각은 자기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이다. ‘김일성주의자들’과 화해할 수 없는 전투를 벌여온 한국사회당이 몰락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진보신당 제안모임’이 보유하고 있는 정치적 자산과 부채가 무엇인지에 대해 냉정한 자기점검이 필수적이다.

    민주노동당이 수없이 명멸해간 다른 진보정당세력과 달리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 대중운동에 기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민주노총에 대한 ‘위탁정치’로 변질되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양자의 정치력의 성장에 외려 장애물이 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대중운동과 진보신당의 윈-윈 전략이 제출되어야 하겠지만 노동자 대중운동에 기반해야 한다는 그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 계급을 통합하여 새로운 당의 기반으로 삼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에 결합한 다양한 노동자계층을 설득하여 함께 하려는 노력을 계속 벌여야 한다.

    그러므로 총선이라는 현실정치의 엄혹한 요구로 인해 정치세력의 이름이 필요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신당 창당의 근본 원칙이 훼손되어 창당 작업이 졸속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적 순결주의 피해야

    둘째 진보신당 초동을 형성하는 데 있어 정치적 순결주의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한국 진보진영의 이념적 순결주의는 늘 정파적 순결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이 같은 순결주의는 진보신당을 추진하려는 여러 세력들 모두가 꺼려한다고 공언하고 있는 ‘평등파의 당’을 만드는 길로 안내할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정치적 대안이 민주적으로 경쟁하는 질서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비대위의 혁신 노력을 지지했던 이라면 그가 자주파건 평등파건 무당파건 모두 함께 해야 한다. 필자는 당의 민주화를 지지한 자주파 활동가가 정파주의 우물에 갇힌 평등파 활동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뿔뿔이 나뉘어 고립되어 있는 시민운동’들’과 민중운동’들,’ 노동자계층’들’과 빈민계층’들’의 통합과 연대의 진보적 비전을 제시할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진보신당이 정치적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정치적 순결주의를 거부하여 비록 작지만 영리해서 성장가능성이 큰 진보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민중성-민주성-다원성 원칙을

    더불어 나는 진보신당이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준수하는 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첫째 노동자와 빈민의 이해를 수미일관 방어하고 이를 국민적 의제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 정치세력으로서 독자성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가령 정부조직 개편안과 같은 중요한 쟁점에서는 한나라당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고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이 되기를 바란다.

    또 한반도대운하 반대운동에서는 이 운동을 주도할 독자적인 전략을 제시하여 반대운동을 승리로 이끄는 세력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정규직-비정규직의 사회연대전략을 성공시켜 사회통합의 진보적 비전을 제시하는 민주적인 정치력을 유감없이 선보이는 세력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 진보신당은 당원과 국민과 소통하는 민주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대변하고자 하는 노동자 계층들과 빈민 계층들과 다채널의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확보하고 다양한 의제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시민운동과도 민주적 소통구조를 확보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대변하는 지지세력의 뜻에 따라 대표-책임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민주정당으로서 품격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또한 계층별 혹은 의제에 따라 조직된 단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이들과 연대하여 민중의 다양한 요구들이 반영되는 정당을 주조해내기를 바란다.

    셋째 진보신당이 진정한 다원주의를 구현하는 다원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다원주의는 정파의 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복수의 구체적인 정치 대안이 민주적으로 경쟁하는 질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 같은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은 사회갈등 자체의 고유한 복합성과 이를 반영하는 정치적 대안의 근본적인 다원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특정한 이념에 맹목적인 지지가 당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일당 독재로 파괴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안세계화운동의 상징 마르꼬스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의 아니오! 모두의 예!”라는 정신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의 정치적 다원성을 승인해야 한다.

    물론 필자의 생각은 진보신당 제안모임, 신당파, 사회당, 초록당을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노동자계급정당을 강조하는 세력들까지 형형색색의 정치세력의 정파적 다원성을 승인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각기 다른 정서와 용어와 역사와 인적 네트워크에 의지해온 이들 정파적 조직들이 구체적인 정치적 대안에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한번도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구체적인 전략에서 실질적으로 구분되는 정치적 실천을 수행해왔는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그들의 관념과 실제적 정치투쟁의 의미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양한 정치적 조직적 실천에 대한 존중은 기본적인 원칙이다. 거기에서부터 이들이 실질적으로 구분되는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책임 있는 활동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다원주의는 반드시 진보신당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심화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심화, 사회주의적 목표 수행 정당 필요

    필자는 우리가 현시기에 가능한 진보신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심화하면서 사회주의적 목표를 수행하는 정당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되 이것이 사회통합을 해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경제 전략을 제시하는 정당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중남미 좌파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 룰라의 말법을 빌자면 평등세상에 대한 우리의 꿈은 결코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2년이 지나도 빼앗기지 않는 일자리가 평등세상이며 지금 한국의 빈민들에게는 제발 오르지 않는 사글세방이 평등세상이다.

    그러므로 진보신당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실험이 외회 밖에서 이뤄지는 것을 장려하지만 의회 내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심화하여 노동자 민중의 이해에 기여하는 무기로 가다듬는 전략을 구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당은 현시기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모든 세력들의 민주적 단결의 구심이 되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의 시장지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는 정치적 자유주의자들(고종석), 구자유주의의 유산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김상조)에서부터 생태주의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녹색주의자는 물론이고 자신을 사민주의자/사회주의자/코뮌주의자 뭐라고 호칭하든지 신자유주의에 맞선 ‘다른 정치’를 제시할 의회정당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누구든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 안의 타자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민중들은 찍어주고 싶은 진보정당을 기다린다

    현재까지 이룩한 성과를 지혜롭게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일구어가는 정치. 흩어진 민중을 통합시켜 정치적 힘으로 바꾸어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다른 정치’. 그 꿈의 가능성이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그 꿈은 이루어질까? 이 꿈이 이뤄진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 미래 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다. 한국 민중의 일원인 내 삶의 5년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5년은 인수위의 5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고속으로 질주하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구’자유주의의 유산마저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와 빈민의 평등세상과는 갈수록 멀어지는 재벌과 부자의 나라를 예감케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한국 민중은 찍어줄 만한 진보정당, 아니 그 싹이라도 보여주는 정당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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