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례문 복원은 박정희 방식으로"
        2008년 02월 14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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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례문이 타버렸다. ‘국보 1호’가 타버렸다는 점보다는,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타버렸다는 점이 안타깝다.

    하지만 언론은 유독 ‘국보’라는 점과 ‘1호’라는 점을 강조한다. 혹시 ‘국보’가 아닌 문화재가 사라졌다면, 혹은 ‘1호’보다 호수가 낮은 문화재가 없어졌다면, 덜 안타까웠을까?

    ‘국보’를 강조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 속에 월드컵에서 황우석을 거쳐 ‘디워’가 스쳐 지나가고, ‘1호’를 강조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후레시맨 1호 빨간 사내와 킹라이온 1호 검은 사자에 열광하며 서로 1호 역할을 하겠다고 다투던 어린 시절의 동무들이 눈앞에 선하다. 다들 어쩜 그렇게 로스쿨 유치했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실어대는 대학교들처럼 유치할까.

       
     
     

    요즘 그 지긋지긋하던 ‘노무현’보다도 더 쉴 새 없이 모든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수위’는 “대한민국 자존심이 불탔다”고 말했다. 역시 인수위는 사고의 스케일이 스펙터클하다(인수위의 영어몰입 정책에 맞추어 ‘잉글리쉬’ 좀 써보았다. 영어 몰입교육을 받지 못하여 차마 원어민 발음대로 표기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죄송하게 생각한다).

    황우석 버전도 있다. 시사평론가 이정균은 충북일보에 「민족의 DNA가 불탔다」(2008년 2월 13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아무렴, 생명공학기술 강국인데 이 정도 과학적인 사고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프리카보다 더 문명국?

    그는 그 글에서 “선진국의 문턱에 다 달았다는 국가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국보 제1호 남대문을 하룻밤 사이에 불태워 없애 버린 우리가 어찌 아프리카보다 더 문명국이라 자부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보다도 더 문명국”이라고? 세계 4대문명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 아프리카에 붙어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는 지금까지 아프리카가(사실 그런 나라가 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대한민국보다 ‘덜 문명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도대체 언제부터 자본의 축적 정도가 ‘문명국’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던가? 그가 생각하는 ‘아프리카’가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생각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우리’가 훨씬 야만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정말 “우리가 어찌 아프리카보다 더 문명국이라 자부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자존심’, ‘민족’, ‘DNA’, ‘선진국’, ‘국가’, ‘수도’, ‘국보’, ‘제1호’,’아프리카보다도 더 문명국’. 세상에! 아주 난리가 났다.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어휘들의 남용이다.

    모든 문화재는 어디에 있든지, 그리고 호수에 관계없이 소중한 것일진대, 그냥 문화재가 타버렸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문화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만 생각하더라도 충분히 안타까운 일인데, 흉측한 국가주의와 촌스러운 일등주의가 덧씌워지자 비극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희비극이 된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우리의 이명박 당선자는 국민(결코 ‘인민’이나 ‘민중’이 아니다)들로부터 성금을 걷어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커미디’를 한다. 이렇게 재치가 넘치는 분을 매일 아침 뉴스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우리의 매일 아침이 상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굿모닝, 미스터 리.

    효율성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공공부문의 노동자를 줄여서 이런 비극이 생기도록 해놓고, 복원에 드는 돈은 우리더러 내라고?

    나는 지금껏 이명박 당선자의 사고방식이 70년대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성금을 모아서 문을 세우자는 발상을 보아 하니 딱 19세기 사고방식이다. 문득 독립문은 ‘국보’도 아니고 나무로 만들지도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적하는 좋은 글들을 써주셨으니, 나는 성금을 걷어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삼성에게 기회를!

    그것은 바로 재벌들에게 성금을 걷는 것이다. 재벌들에게 돈을 걷으라니, 사회주의적 발상 아니냐고? 내가 감히 이명박 당선자에게 그런 불순한 제안을 하겠는가. 내가 말한 방식은 다름 아닌 이명박 당선자와 외모뿐만 아니라 개발주의 정책까지 쏙 빼닮은 박정희의 방식이다.

    박정희는 자신이 폭압적인 군사독재자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현충사를 성역화하고 이른바 ‘애국선열’들의 조상을 건립하게 하는 등 민족문화(?)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특히 ‘애국선열’들의 조상 건립을 추진하기 위하여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설립했는데, 당시 권력의 최고 실세였던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의 총재를 맡았고 현대, 럭키, 한진 등의 재벌들에 각각의 조상 건립을 하나씩 할당하였다.

    <계간 미술> 1980년 봄호를 보면, 윤범모 선생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의 건립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따라서 대선 시기에는 박정희 흉내 내기에 여념이 없었고, 당선되자마자 한반도 대운하 등 박정희 방식의 개발주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는 숭례문 복원도 꼭 박정희 방식대로 해주기를 바란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는 재벌 ‘프뤤들리’ 정부인만큼, 재벌들도 이명박 정부의 숭례문 복원 성금 걷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기를 기대한다.

    특히 아쉽게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초일류기업 삼성은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 기업임을 만천하에 증명해 보이기를 바란다.

    ‘국보’들과 세계적인 미술품들을 창고에 쌓아두는 것보다는, ‘국보 1호’ 숭례문 복원과 ‘국보’보다 더욱 소중한 태안반도 복원을 책임지는 것이 훨씬 초일류기업다운 태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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