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는 되는데 태극기는 안 된다?
    2008년 02월 13일 04: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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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3일) 언론보도를 보니 다음달 26일 평양에서 열리는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남북한전에서  태극기와 애국가의 사용여부를 놓고 남북한의 관련 단체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언론들이 전한 바로는 지난 5일 개성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 실무협의에서 북측 대표들은 태극기와 애국가 대신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사용하자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남측이 제안한 1천명 규모의 민간응원단 방북과 대규모 기자단 파견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북측이 내세운 이유는 굳이 태극기와 애국가를 사용해 대결구도를 조장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월드컵 등 국제축구경기가 민족의 제전이 되기보다는 민족의 각축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만만찮기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국가적 개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냐는 북한의 주장은 일면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충돌 우려가 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남측의 민간응원단 방북을 불허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북측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합니다. 월드컵 지역예선을 단순한 축구경기에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장으로 끌어올리려면 잔디밭 위의 선수들 뿐 만 아니라 객석에서도 남북의 민중들이 어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취재진의 숫자도 한자리수로 제한하자는 북측의 요구는 더 납득이 안갑니다. 이것도 ‘충돌 우려’ 때문일까요? 확인이 필요하지만 5일 실무회의에 참여한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북측 대표가 "공화국 역사상 태극기가 하늘에 나부끼고 애국가가 울린 적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남한을 실체로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자존심 문제라는 거지요.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은 도대체 누구와 누가 만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1948년 5월 1일, 북에서 진행된 노동절기념식장. 북한의 인공기는 1948년 9월 8일 제정됐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8년 9월 9일 성립됐다. 따라서 공화국 하늘에 태극기가 날린 적이 없다는 북측의 주장은 사실이긴 하지만 사진처럼 해방공간 3년동안 북조선도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오는 26일에는 미국 뉴욕필하모닉의 역사적인 평양방문 공연이 열립니다. 월드컵 예선 한 달 전입니다. 탁구를 계기로 삼아 서로 문을 연 중국과 미국의 관계처럼 얼어붙은 북미관계도 오케스트라의 선율 위에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를 전 세계의 시민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연은 역사적입니다.

더군다나 이날 공연에서 뉴욕필은 공연 서두에 미국의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기로 북측과 합의를 봤습니다. 뉴욕필이 미국의 국가로 공연을 시작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관례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미제의 주제가를 평양 한복판에 연주하는 셈입니다.

북한이 예상을 뒤엎고 이를 허용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놓고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희망 섞인 분석을 앞 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는 되는데 왜 남한의 국가는 안 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정치논리가 있겠지만 아무리 절박한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미제의 승냥이’보다야 같은 민족에 더 많은 배려와 이해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요구일까요?

제가 속이 좁아 잘 이해 못하는 것이겠지만 북측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것이 ‘통큰 정치’고 ‘우리민족끼리’ 아니던가요. 그런데 그 통큰 정치가 왜 같은 민족 앞에서는 쫄아들고 바다 건너 아메리카 민족한테는 넘쳐나는 걸까요.

북측이 계속 고집을 부리면 대회는 평양이 아닌 제3국으로 장소가 변경될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북측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로 해결의 물꼬가 트이고 남북의 민중들이 축구경기를 매개로 하나가 되기를 기대하며, 지난 해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했다는 유명한 말을 반대로 북측에 던져봅니다. "국방위원장 동지께서 그걸 결심 못하십니까? 국방위원장께서 결심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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