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 애물단지거나 상품이거나
        2008년 02월 13일 08: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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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밤,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누군가 자신의 몸을 태우는 대신 숭례문을 태웠구나 생각하였다. 불이 붙자마자 발견되었으니 당연히 꺼졌겠지 생각하다가 다시 새벽에 인터넷에 시선을 돌리니, 숭례문이 전소했다는 참으로 한국사회다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600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임진왜란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일제식민통치에서부터 ‘조국근대화’의 살벌한 불도저까지 용케 피하며,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 속에 묵묵히 서 있던 문은 이 총체적인 위험사회의 손에 사라져갔다.

       
     
     

    공공서비스는 사유화되어 야만적인 자본의 정글에 내던져지고, 개방과 개발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안전한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와 준비를 생략했으며, 처참히 짖밟힌 자연은 매년 새롭게 우리를 반격해오며 자연재해의 아이템을 극대화시켰다.

    문화는 기꺼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제물로 바쳐졌으며, 이 위태로운 사회에 넘쳐나는 건, 삶이 참을 수 없이 역겨워지고 사회에 대한 분노만 가득 남은 사람들뿐이다.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그것이 돌발적 사건이기보단 앞으로 아득하게 끝도 없이 겪어야 할, 이 사회의 업보로 여겨졌던 것은 그 때문이다.

    숭례문은 사회로부터 타살 당했다

    새해 들어 우리는 세 가지의 가슴 아픈 불길을 뉴스에서 접했다. 40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이천창고의 화재,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여파로 아사 위기에 처한 어민의 처절한 분신, 그리고 어처구니없이 자신의 몸을 태워야 했던 숭례문에서 솟구친 불길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불길은 모두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듯한 불안한 삶의 조건들을 온몸으로 경고하는 것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국보 1호라는 거추장스런 훈장을 달고 서 있었지만, 숭례문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문화재를 향해 보내고 있는 그 심드렁한 냉소를 치욕스럽게 견디는 중이었다.

    관광객이 가까이 오도록 길을 낼 줄은 알았지만, 그리하여 가중될 훼손의 위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견디어 왔고, 대걸레가 그 안에 널부러져 있어도 치워주는 손길을 누릴 만큼의 호사도 허락되지 않았던 무관심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

    결국 합법적으로 그를 돌보아야 하는 주체였던 서울시와 문화재청, 소방방재청 등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완벽한 조건 속에서, 그는 단 한 번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숭례문은 화재사건은 한국 목조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고발할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문화유산들이 처한 이 수치스런 위상, 문화를 팔아먹을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이 나라 관료들의 천박한 인식, 그리고 토건국가의 분위기에 휩쓸려 집값 상승을 위한 일이라면 일단 환영 플래카드부터 만들고 나섰던 대부분의 이 나라 사람들의 개발 광기를 한꺼번에 되짚어 보게 한다.

       
      ▲사진=뉴시스
     

    문화재청 예산 OECD국가 중 최하위

    최근 들어 낙산사와 수원 화성 등 주요한 문화재에 화재가 끊이지 않았어도 소 잃고 외양간조차 고치지 못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문화재청이 지난해 ‘문화재재난방재 시스템구축’ 사업으로 쓴 예산은 단 75억원이다. 2005년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동종 복구비용으로 들인 61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화마를 겪었던 낙산사와 수원 화성에 이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음은 물론이다.

    중요문화재 100곳 중 수신기, 발신기, 감지기 등 화재경보설비가 단 한 개라도 구비된 곳은 여전히 37곳에 불과하다. ‘문화재 재난위기 대응 매뉴얼’이 낙산사 화재 이후인 2006년 2월에 수립되었으나, 그 매뉴얼을 채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거기에 없었다.

    한국 문화재청의 예산은 정부예산의 0.3%를 밑도는 작은 규모로 OECD국가 중 최하위권(30개 국가 중 29위, 2007년 약 3,580억원)이다. 5대 궁궐과 조선왕릉 등을 제외한 문화재 관리 책임은 지자체에 위임되어 있지만 광역단체의 문화유산 예산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로 제주도를 제외한 광역단체의 평균은 0.5% 에 불과하다. 서울시의 경우도 전체 예산 대비 문화유산 예산 비율은 0.4%에 그치고 있다.

    국방, 교육 등 거대한 규모의 예산을 국가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의 경우 지자체의 문화예산의 비율은 국가 문화예산 비율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 상식이다. 국보 1호를 위해 서울시가 연간 지불했던 보험료가 8만5천원에 불과했다는 얘기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력이다. 직접 문화재를 관리해야 하는 지역의 문화재 담당부서에서는 문화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 업무의 특성상 전문 지식이 필수적인 이 분야 지자체 공무원들 가운데 전문인력이라 할 수 있는 학예직은 6.5%에 그치며 학예직이 한 사람도 없는 광역단체도 5개나 된다.

    숭례문의 직접적인 관할 구청인 중구청 문화재관리소는 중구청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유산에 대한 싸늘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는 대목이다. 문화 자체가 지자체에서 한직으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하물며 문화유산을 담당하는 부서는 사고만 치지말자는 분위기 속에서 숨죽이고 지내는 부서에 속한다.

    국민 모두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한 문화유산

    눈만 돌리면 전국방방곡곡에 재개발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이 나라는, 반만년 역사를 지닌 것 또한 사실이기에 땅을 파기만 하면 문화재가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토건국가 40년째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문화재 따위가 발견되어 아파트 공사가 늦어지거나 취소되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대세다.

    혹시라도 지역의 문화재 보존하기 위해 공사나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투사가 되어 온 사회와 관(官)을 향해 맹렬히 싸워야 한다. 한마디로 문화유산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귀찮은 애물단지였을 뿐이다.

    더욱이 공사 도중 문화재가 발견되면 그 발굴 비용을 건설회사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어, 신고는커녕 다시 파묻어 버리기 일쑤다.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 온갖 비난을 감수해 가며 추진하여, 국민들을 매혹시키는데 성공한 청계천 공사는 대표적인 문화재 파괴의 피비린내 나는 공사였다. 이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 있음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쪽 귀를 철저히 막으며 청계천을 찬양하는 데만 뜻을 같이 하지 않았던가.

    청계천 공사 문화재 파괴로 피비린내 진동

    유홍준, 이명박. 숭례문의 전소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책임당사자인 이들이 가장 먼저 언급했어야 할 것은 국민에 대한 석고대죄와 재발방지에 대한 철통같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숭례문이 전소한 날 아침, 문화재청이 내뱉은 일성은, 200억 정도의 예산을 들여 2~3년 정도면 완벽히 손실된 부분을 재현할 수 있다는 성급한 대국민 사탕발림이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한 술 더 떠, 숭례문 복구를 위한 국민성금운동을 제안했다. 국보1호를 잃은 재난에서 피해주민은 전 국민이다. 이들의 피해를 보상을 못 할망정, 돈을 걷어 복구비를 쓰겠다는 저 발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저능아적 수준의 민심이반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창경궁 등 5대궁과 조선왕릉 만이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대상이고 나머지는 지자체 관할이라는 말로 책임을 면하려 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할 구역이라는 창경궁에서도 2년 전, 같은 용의자에 의해 화재가 발생한 바 있고, 유홍준 청장은 취사가 금지되어 있는 유적지에서 화기를 옆에 두고 오찬, 만찬을 벌이기를 반복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1차적 임무 중 하나인 문화재의 방재시스템을 강화하기는커녕, 문화유적을 화기로 앞장서서 위협하면서 자신의 우아하게 밥 먹을 특권만을 역설하였던 그에게 방화범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진=뉴시스
     

    문화재청의 첫 번째 임무는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고 화재만큼 문화재를 위협하는 것은 없다. 오욕의 스타 청장 유홍준의 그 뻔뻔스럽고 구설 많던 3년 반의 재임은 결국 자신이 뿌린 씨앗에 의해 가장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안전 불감증이 가장 큰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요인이 있다. 한국의 문화재들은 철저한 무관심과 구박 속에 버려져 있다. 숭례문에 올라가 본 사람이, 그 안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있던 대걸레며 삽을 보고 경악했다는 이야기가 보도된 바 있다.

    관광객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창덕궁에도 곳곳에 뽀얗게 쌓인 먼지는 물론,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플라스틱 빗자루, 구멍 숭숭 뚫린 창호지 문 등은 보는 사람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든다. 이 나라가 입만 열면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5천년 역사의 문화민족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위에 가득한 것이었는지, 단 한 군데의 유적지만 세심하게 둘러보아도 단박에 그 허세의 실체를 통감할 수 있다.

    전국 산간벽지까지 골프장과 아파트 개발 열풍이 불어닥치던 지난 몇 년 동안 문화재청은 기꺼이 그 개발사업들의 뒤치다꺼리를 맡아왔다.

    문화유적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시민들과 아파트 재개발이나 철도와 도로를 우회하지 않고 뚫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립할 때 마다, 의아하게도 문화재청은 후자의 손을 더 자주 들어주었다. 개발사업에 번번이 걸림돌이 되어, 여기저기서 원성을 듣기 보다는, 적당히 사회분위기에 손발을 맞출 줄 아는 “센스 있는” 문화재청이 되기를 자처해왔던 것이다.

    상인의 후각으로 문화를?

    문화, 관광산업, 체육, 상인의 후각으로 미래를 연다!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의 표지를 대범하게 가로지르는 놀라운 슬로건이다. 관광공사 사장 출신의 장관이 임명되고 나서, 문화관광부는 노골적으로 문화를 팔아 장사를 하는 상인으로 나섰다.

    도심 속에 고립되어 있던 숭례문에 관광객들이 더 잘 접근하게 했던 것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비범한 상인의 후각이 발동되어 달성한 또 하나의 과업이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맹렬히 갈구하는 그 ‘상인의 후각’ 속에 관광객들의 만족은 감지되나, 문화재가 처하게 될 위험 따위를 예측하는 장치는 발동되지 않는다.

    예산 때문에, 당연히 CCTV도 추가설치하지 못하고, 야간 경비원도 세우지 못했다. 상인의 후각으로 작동되는 정부에, 600년이 넘은 숭례문의 역사적 가치를 환산하고, 그것이 소실되었을 경우, 이 나라 사람들이 입을 정신적 충격 따위를 헤아릴 것까지 요구하는 일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문화와 관광을 천민자본주의의 최전선에 내세워 앵벌이시키고자 하는 천박한 문화인식은 말기의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일관되게 공유하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 당분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슬프지만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숭례문 복원보다 중요한 문화 가치의 복원

       
    ▲ 화재 전 숭례문 수문장 교대식 모습. 수문장도, 민간화재보험도 숭례문을 지키지 못했다. (사진=Riwan Tromeur, copyleft)
     

    숭례문이 화재로 쓰러지자 당장, 동대문에 방재장치를 강화하는 모습이 방송에 등장한다. 물론 그럴 테지. 그러나 이 화들짝하는 관심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문화부 스스로가 상인의 후각으로 문화를 이용하겠다고 나서는데, 국민들이 문화를, 문화재를 그 자체의 가치로서 대하고, 자발적으로 아끼고 살피는 영웅적 행위에 나설 수 있는가. 오늘 우리가 느끼는 속쓰림, 원통함, 분노는 문화의 가치를 그것에서 파생하는 경제적 가치만으로 평가하는 처참하도록 빈곤한 문화의 통치철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국 문화부와 문화재청 스스로가 그들에게 맡겨진 문화를 그 자체의 가치로 대하고, 문화정책 내에서 문화적 가치를 복원시키는 일은 숭례문을 복원하기에 앞서, 회복되어야 할 이후 모든 대책의 전제조건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문화재청 예산의 2배로 확대할 것과, 지자체 문화유산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학예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전국 시도국립박물관을 지역문화유산 관리기구로 확대 개편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현재 주로 관광단지 개발이나 호텔건설 등을 위해 대기업에 융자대금으로 쓰여온, 1조원 가까이 되는 관광진흥기금의 중요한 일부를 문화유산의 보호와 복원에 활용하고,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등 문화유산의 보호에 대한 시민단체와의 협력과 지원 확대, 근대문화재 지정 요건 다원화를 통해 현재의 삶의 흔적에 대한 적극적 보존할 것 등을 공약으로 제안한 바 있다.

    그나마, 문화유산을 중요한 정책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았던 이 나라의 유일한 정당은 민주노동당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아득히 멀리로 뱃머리를 돌려버린 한국사회가 어떻게 조금이나마 그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알지 못한다.

    숭례문은 자신을 살해한 공범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위험사회의 한 가운데로 브레이크 없이 돌진하는 한국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문화를 삶 속에 복원시키는 것에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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