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식 사회주의 극복은 강령 사항
        2008년 02월 12일 0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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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금의 민주노동당은 과연 어떠한 상태인가? 안으로는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중병에 걸려 있고, 밖으로는 당의 정체성·사상·정책이 혼란하게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의 강령에서 다음과 같이 명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의 오랜 지혜와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거창한 구호는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사회상, 즉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사회주의상을 제기하겠다는 거창한 구호는 아련한 옛 추억으로 사라져버렸다. 사회주의를 위한 정책들은 나오지 않고 현실에 대한 적당한 야합과 정파들 간의 적당한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절충하고 있다.

    이러한 적당한 야합과 타협을 우리는 보수정당의 행각에서도 충분히 보아왔다. 따라서 당 밖의 대중들 눈에는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기존의 정당과는 큰 차별이 없는 ‘진부한 정당’으로 비칠 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종북주의자이든 자주파이든 김일성주의자들이든, 주체사상파이든, 즉 무엇이라 불리든 상관없이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노동당의 다수파이고, 더군다나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사상적 배경을 고려해보면 그들의 책임이 크다.

    혹자들은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종북주의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불충분하거나 일면적 고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지만 강령에서는 국가사회주의를 극복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그 국가사회주의에는 조선, 즉 북한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당내에서 종북주의가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국가사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즉 새로운 진보상과 사회상,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는 음으로 양으로 봉쇄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종북주의자들은 통일이라는 미명 하에 조선의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더군다나 종북주의자들의 기본노선은 조선에서 말하는 고려민주연방제를 관철시키고, 그리하여 한국, 즉 남한에서 조선노동당을 합법화하여 북의 지원 하에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아 조선을 중심으로 한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는 기본노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국가사회주의의 하나인 조선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 수 있을까?

    북한 사회주의 극복은 사실상 강령 내용

    물론 종북주의자들은 유다나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하듯이 자신들은 종북주의자가 아니라 친북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 내에는 친북주의자들은 있어도 종북주의자들은 없다고 주장한다. 좋다! 그들이 말한대로 친북주의자들이고 하자. 그들이 그렇게 위장한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국가사회주의를 극복하거나 지양한다고 할 때 그 속에는 조선의 사회주의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은 친북이 아니라 반북이라는 말의 간접적인 표현인 것이다. 즉 민주노동당은 반북정당인 것이며, 친북은 심각한 강령 위반인 것이다.

    또한 노무현은 언젠가 자신이 친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무현을 진보세력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노무현이나 통합신당이 친북주의자라면 민주노동당 내의 친북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만약 친북주의자는 진보이고, 반북주의자는 반동이나 보수로 생각한다면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의해서 민주노동당은 보수정당이고 통합신당은 진보정당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입장은 친북이라고 진보주의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반북이라고 보수주의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평화통일이라는 문제를 놓고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친북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하지 않고 통일을 할 수 있다면 한국의 조선에 대한 흡수통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것이 종북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만약에 친북은 진보이고 반북이 보수라는 이상한 이분법적 논리가 친북주의자들의 생각이라면 통합신당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단순한 친북이 아니라 종북주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당에서 종북주의를 인정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뿐이라는 생각이 단순한 우견(愚見)이라고 생각하는가?

    또한 그들이 조선을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조선을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 온전한 사회주의이거나 주체의 나라라고 주장한다면 그리하여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종복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사상이 아니라, 논의의 봉쇄가 문제다

    물론 우리는 당내에서 조선을 옹호하고 조선이 진정한 사회주의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정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종북주의가 됐든, 혹은 김일성주의, 주체사상파가 됐든, 자신을 공개화 시키고 당내에서 활발한 논의와 토론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이 국가보안법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조직관이 그러한 것인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그리하여 많은 대중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논의를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당을 장악하여 당내에서의 다양한 논의를 봉쇄하고 있다.

    요컨대 강령 상에서 제기하는 국가사회주의의 극복 내지 지양의 대상에 조선도 포함되고 있고, 이는 조선의 당국자를 통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대한 비판을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에서 다양한 논의와 문제들을 논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논의한다는 것은 논의할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들은 당내에는 종북주의자들이 존재하며, 그것도 당내의 다수파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상대는 절대 자신들이 종북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내의 다양한 논의와 문제들은 당연히 은폐될 수밖에 없다. 왜냐? 다양한 논의와 문제들은 종국적으로 이념과 사상의 문제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여타의 문제들도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분당을 통한 신당을 건설할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혁신파들, 특히 ‘심상정 비대위’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당을 혁신하려면 혁신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혁신의 대상 중 하나이면서 큰 부분인 종북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종북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논의의 대상이 없는데 논의 자체를 할 수 없듯이 혁신의 대상이 없는데 무엇을 혁신한단 말인가? 결국 총선까지 봉합했다가 총선 이후 당직자 선거에서 종북주의자든 자주파든 이들이 당권을 다시 장악할거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이다. 그러면 또다시 동일한 문제로 자주파와 평등파가 감정싸움을 할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신당 창당의 필연성

    더군다나 이런 결과에 직면하게 될 반자주파 당원들의 탈당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이들의 탈당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종북주의자들이 당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점점 더 높아질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이 혁신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분당을 통한 새로운 신당건설을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평등파’와 반종북주의자들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에 유일한 대안은 신당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저렇게 된 데에는 반자주파들, 즉 평등파들의 책임이 없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분명 우리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의 현 정세는 자주파와 평등파, 당권파와 비당권파, 종북주의와 반종북주의, 김일성주의와 반김일성주의, 주체사상파와 반주체사상파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들의 주장은 이러한 명백한 정세를 은폐하는 수단일 뿐이다.

    즉 ‘평등파’ 혹은 범좌파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평등파의 문제점을 충분히 제기하고 그에 대한 논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논의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이상에는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너도 문제 있고, 나도 문제 있으니깐 서로 자숙하자는 논의는 민주노동당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반자주파들의 문제점들은 신당을 창당하는 과정과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논의될 수 있고, 논의되어야만 한다. 만약 신당이 이 과정을 사상해버린다면 그 신당도 제2의 민주노동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의를 가능하게 하려면 논의에 대한 형식적 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따라서 신당을 창당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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