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파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들
        2008년 02월 11일 03: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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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그래야만 하나? 정말 갈라서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없나?” 이제까지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말없이 당비를 내던 평당원들의 질문이다. 아마 좌파 동지들이 가입시킨 부모형제들이나 아니면 직장동료나 이웃, 나아가 부모의 정치적 관심을 알고 있는 자식들마저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할 것이다.

    이른바 언론에서는 ‘평등파’라고 부르는 당원들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최소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버렸다고 느끼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길이 이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 지난 1월 26일 열린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발족식 모습
     

    어제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 땅의 진보정당운동의 희망은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러던 것이 하루아침에 “이젠 아니다”라고 한다.

    “이제껏 당은 이런 문제가 있었고, 이렇게 당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난 2월 3일 당대회는 그런 모든 노력이 당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라는 주장을 한다. 그것도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례들을 들면서.

    아마 동지가 싸움을 잘했다면 그리 긴 설명이나 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런 경우는 원래 좌파였던 당원들을 제외하면 많지 않을 것이다.

    쇄신파, 신당파 모두 내용 못 보여줘

    이른바 ‘쇄신파’든 ‘신당파’든, 대다수 좌파 동지들이 당혁신의 내용과 방안을 놓고 당원들과 마지막까지 토론하면서 모든 노력들이 막혀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파 모두 새롭게 혁신하려는 내용이나 신당의 내용을 당원들과 국민들의 광범한 지지를 받을 새로운 내용으로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당원들과 국민들 그리고 언론까지도 우파들을 낡은 세력, 좌파들을 새로운 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싸움이라고 볼 뿐이다. 싸움을 제대로 못했다는 증거다. 부분적으로는 진실이기도 하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나선 동지들은 2.3 당대회를 자기 정파의 낡은 사상과 노선을 지키기 위해 당강령의 기본정신을 위배하고,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과 당심을 배반하고 당의 역사적 의의와 존립을 위태롭게 한 자주파의 종파적 폭거로 규정한다.

    또한 지난 20여 년 간 남한의 모든 진보운동 영역의 패권을 잡고도 어느 하나도 전진시키지 못하다가 그들이 무시해온 덕택에 유일하게 전진하던 진보정당운동마저 후퇴시켜 놓고도 반성 못하는 자주파의 후안무치함을 비판한다.

    특히 당에 무임승차하다시피 뒤늦게 올라타고서도 당을 밑바닥부터 반석 위에 올린 당의 창업 공신들을 모조리 내쫓고 패권을 휘둘러대고, 정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념과 정책을 발전시켜 대선에 대응하지도 못하고 빚만 잔뜩 지게 해놓고도 정말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북한의 핵보유와 ‘일심회 사건’에 대한 당의 대응,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비롯한 대선 대응과 그 결과, 재정 적자 액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면 상당수 당원들은 ‘자주파가 심하긴 하군. 그런데 당신들은 책임이 없나? 그리고 그런 몰상식한 자주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당신들이 무능하다는 거 아닌가? 아니면 당신들은 결국 우리를 믿지 못한다는 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길게 보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대중들을 믿는다. 그러나 낡은 세력들이 진보정당운동을 주도하는 시기를 끝내고 빠른 시간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끝에 선택한 길이다.

    물론 이 길만이 민주노동당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시대로 가는 길은 아닐 수 있다. 남아서 계속 싸우면서 민주노동당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실천하려는 다수가 그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 현실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동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을 버릴 수밖에 없다. 이제 한 동안의 분열과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답변이 길면 안 된다

    말이 길어지고 답변이 궁색하다. 싸움을 잘했다면 이런 것을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대중은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설명에도 지금 당장 민주노동당을 버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바로 고개 끄덕이고 함께 나서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보정당을 사랑하는 대다수 당원들의 다음 질문은 이렇다. “민주노동당은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 치자. 그럼, 이젠 어떻게 하지?” 그 속에는 “어떻게 당신들이 희망이라고 믿어? 당신들은 어떤 대안이 있어?”라는 질문까지 사실상 포함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을 버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길에 나선 동지들이 반드시 지금 이 순간에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그것도 추상적인 구호나 외치면서 나아갈 방향만 알리거나 길고 긴 문장으로 설명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홍보한다든가 이해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한 말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민주노동당에 내오던 당비나 후원회비를 새로운 진보정당 만드는 일로 돌리는 행동을 촉구하는 ‘선동’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좋은 사람과 더 좋은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언론이나 당원들 또는 국민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그 자체, 그 내용에 관심이 있어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민주노동당의 주요 정치가, 그리고 주류 중 한 분파가 대거 이탈하니 그 정도 관심거리가 되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다.

    다른 진보정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사자들 말고는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주목 받는 이유가 ‘새로운 진보정당을 열망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좌파 동지들의 주관적 열망일 뿐이다. 대중은 아직 그곳에 있지 않다.

    대다수 좌파 동지들은 ‘비대위 개혁안’을 거부한 정치적 부담을 우파인 자주파가 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자주파 만큼은 아니더라도 좌파도 정치적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좌파 동지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다수의 당원들과 중간에 있는 정치가들의 열망보다 자신들의 주관적 의식과 의지, 열망이 지나치게 앞서서 제대로 된 싸움을 못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을 사랑하고 희망을 걸었던 대다수 평당원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해하면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좌파는 왜 자주파에게 졌는가?

    내친김에 한마디 더 하겠다. 지난 20여 년 간 좌파는 대부분의 싸움에서 우파인 자주파를 이기지 못했다. 엉터리 노선과 상식 이하의 패권적 활동을 벌이는 자주파에게 왜 진보운동의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없었는가?

    한 마디로 우파보다 정치적으로 더 무능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좌파가 그들만큼이나 낡은 사고와 행동노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당파와 중간파를 설득하고 함께 하는 것과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 이 양쪽에서 자주파보다 나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좌파의 주관적 의식은 무당파나 대중과 함께 하기에는 너무 강한 것이었다. 그것도 별 내용도 없는 개념과 구호 차원에서의 ‘사회주의자’라는 자기 규정에 갇혀서. 제발 내용도 없는 원칙을 가지고 정답이라고 믿고 스스로를 소수파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길을 찾자.

    사실 좌파 입장에서는 중간파나 무당파 당원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당기구와 제도를 활용하여 싸울 방안이 있다면 더 싸우는 것이 좋았다. 비대위원장이, 당강령과 당심과 대선 민심을 배반한 당대회와 중앙위원회를 해산하고 개혁안(정파를 무력화시키는 제도개선안)으로 당원토론회를 조직하고 당원 총투표로 비대위 당개혁안과 신임을 물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 당헌당규상 그런 싸움은 불가능했다. 이제 중간파와 국민들을 획득하기 위한 좌파의 남은 싸움은 언론을 통한 공중전과 직접적 탈당을 조직하여 이들을 새로운 조직으로 모으는 방식 뿐이다. 지역마다 당대회 보고대회를 열고 당대회에 대한 좌파의 입장과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레디앙>에 실린 장석준의 글처럼 새 진보정당의 건설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빠른 시간에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지역과 부문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바라는 내용, 총선대응과 당 건설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주비위 과정이나 준비위 과정에서 가능한 당 안팎의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무당파 진보인사들을 광범하게 결집해야 한다. 당에 실망하고 떠났거나 들어오지 못했던 전문가들과 여성, 환경, 인권, 평화와 통일 분야의 활동가들을 광범위하게 참여시켜야 한다.

    당장에 오랜 조직적 준비 과정을 거칠 수 없으니, 민주노동당과 대중조직의 지역과 부문 조직, 신당준비조직 등을 활용하여 빠른 시간에 결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진보정당, 더 참신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하여 이 길을 선택했음을 모든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새 술과 새 부대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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