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츠키가 저승에서 통곡한다
        2008년 02월 11일 0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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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구가 아닌 정신을 중요시하며 트로츠키의 사상을 살펴보면 그도 이런 위대한 전통에 서 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반스탈린 투쟁에 앞장섰으며, 『배반당한 혁명』에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선구적인 맑스주의적 분석을 시도했고, 말년에는 스탈린파 지배관료들을 타도할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자본주의론은 정다신의 주장처럼 트로츠키 사상에 가장 배치되는 것이거나 트로츠키의 이름조차 더럽히는 것이기는커녕 트로츠키의 진정한 사회주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 전지윤의 글

    가장 어처구니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많은 다함께 회원들은 트로츠키 자신의 저서가 아닌 그에 대해 굴절된 해석으로 일관한 SWP(영국의 사회주의 노동당-편집자) 이데올로그들의 해설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진정한 트로츠키의 유산에 대해 무지한 경향을 보인다.

       
    ▲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곡괭이에 머리를 다친 트로츠키.
     

    전지윤의 주장과 달리, 트로츠키에게 세계 해석의 잣대란 자구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오직 과학이었다.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그 역시 『배반당한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모르는 듯한데, 트로츠키는 분명 스탈린으로 대변되는 관료 지배 집단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했지, 집단적 소유 체제 자체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었기에 ‘체제 파괴의 사회 혁명’을 선동하지 않았다.

    분명 관료 지배 집단은 노동자 계급에 기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 나갔지만, 트로츠키는 사적 소유와 시장의 원칙이 부재하였기에 그들을 독자적 계급으로 보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했다

    국가자본주론의 ‘국’ 자도 주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와 유사한 일각의 국가자본주의론 주장에 간단하게나마 강력한 비판까지 한 트로츠키를 들먹이며, 국가자본주의론이 진정한 사회주의 정신을 계승했다니 저승에서 그가 통곡할 일이다.

    “국가자본주의론 덕분에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받은 냉전기에 관료 지배계급이 통치하는 소련의 동구권과 사적 자본가들이 통치하는 미국의 서방 모두에 혁명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 전지윤의 글

    역사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양자택일을 강요받아 양자 중 하나를 택한 경우는 없다. 트로츠키주의의 또 하나의 유산인 정치적 지지와 군사적 지지에 대한 무지는 국제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자신들이 하면 ‘비판적 지지’, 상대가 하면 ‘양자택일의 오류’라는 지겨운 말을 늘어놓는 기초가 되어 왔다.

    더군다나 각양각색의 다양한 좌파들도 모조리 한 묶음으로 스탈린주의자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각 조직의 각기 대립되는 오류나 입장들조차 필요한 부분만 떼어서 상대를 비판하는 고약한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들의 오류에 대해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는 자들은 무오류성을 옹호하는 이들에 반대하여 대대적으로 당에서 이탈하곤 했는데 우리네 조직원들께서는 그러한 역사를 조금도 모르고 있다. 모 조직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비방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국제사회주의자들이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했다거나 1차 베트남전에서 제국주의 침략 전쟁 반대를 거부했다는 주장은 악의적 왜곡이 아니라면 형편 없는 무지의 발로이다.” – 전지윤의 글

    그 무지의 대표적인 것이 이 부분이다. 그것도 내 글의 의도까지 왜곡하면서까지! 다시 한 번 그대로 옮겨 쓴다. ‘서구에서는 무원칙한 대중추수주의와 말 그대로의 개량주의의 일관된 길을 걸은 반면, 소련 ‘국가 자본주의’의 붕괴와 양 제국주의가 충돌할 때에는 철저하게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거나 투쟁을 방기하는’ 이라고 썼지 앞뒤 안 가리고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했다고 했는가?

    베트남전 당시 어떤 오류로 내부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가에 대해 알고나 이렇게 용감히 쓸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악의적 왜곡이 아니고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아직 교과서 확인이 덜 되었는가?

    다시 이야기하지만, 국제사회주의 그룹은 1차 베트남 전에서는 한국 전쟁과 마찬가지로 방어를 거부하다가 대중의 좌익화로 인해 그제서야 제국주의 반대를 외쳤다. 반면, 스탈린주의 소련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투쟁도 잠시도 지체 없이 다 지지했다.

    전지윤은 숭상하는 이 유학국 틀렸다고 핏대 올리면서 왜 이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얼렁뚱땅 넘어 가는가? 아직 교과서 확인이 덜 되었는가?

    “이런 전통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도 국제사회주의자들은 남북한 국가와 체제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지 않고 둘 모두에 혁명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남한의 시장자본주의도 북한의 국가자본주의도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우리는 남북한 모두에서 노동자 민중의 아래로부터 변혁을 지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탈린주의자들처럼 북한 국가를 지지하며…” – 전지윤의 글

    다시 한 번 군사적 방어와 정치적 방어라는, 트로츠키 사상의 기본도 모르는 전지윤에게 강조한다. 한국 전쟁 때든 1차 베트남 전쟁 때든 그리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북한 국가 체제 ‘자체’를 진정으로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좌파는 주사파 외에는 한 명도 없다.

    더군다나 한도 끝도 없이 다함께가 왜곡하는 소위 전세계 대부분의 진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국제사회주의 경향보다 더 강경하게 트로츠키의 원칙 그대로 소련 등지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아래로부터의 정치 혁명을 선동했으며, 방어하지 않는다는 걸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국제사회주의 경향과는 달리, 트로츠키주의 원칙 그대로 스탈린주의 아류 국가라 하더라도 제국주의의 침략에는 단호하게 반대해 왔다.

    도대체 내가 인터넷 자유게시판’만’이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 비민주성의 대표적 한 예를 든 것을 두고 앞뒤 다 자르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한 억지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자신들은 필요할 때에는 온갖 사이트 자유게시판을 다 이용하며 마음껏 의견을 표출하면서 무슨 황당한 주장을 하는가? 왜 더 근본적인 비민주성에 대한 답은 회피하는가?

    영국 등에는 자유게시판 있는 경우 별로 없다고 하던 고리타분한 변명은 왜 안 하는가? 전지윤 자신도 온라인에서 의견을 피력하면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온라인에서 모든 글이 ‘책임지지도 않는 익명의 댓글’ 외에는 없다고 보는가? 자유게시판에서 욕설과 성인 광고와 중상밖에 보지 못하는 그대의 시각과 그로 인한 자유게시판 불필요론을 반복하는 그대의 스탈린주의적 언론관에 할 말을 잃는다.

    다함께의 스탈린주의 언론관

    실명이라는 이유 만으로 자기 조직의 오류의 역사도 모른 채, 객관적 독립적 시각을 포기한 채, 상대방에 대해 근거 없이 중상하는 것이 익명의 욕설과 광고보다 더 무책임하고 비민주적이라는 것은 아는가?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고 난 대답인가?

    도저히 알아듣지를 못하니 다시 이야기하겠다. <맞불> 기사뿐 아니라 포럼과 토론의 내용의 틀은 전적으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이론 틀 안에 있다. 해외 투쟁 소식들은 아예 그냥 통째로 의존한다.

    그 틀 안에서 자기들끼리 같은 내용 반복하며 토론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인가? 이미 다 쓰여진 기사 내용이 궁금해서, 일 대 일로 폐쇄적으로 메일로 질문하고 뻔한 답 받고 싶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하나?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소련은 국가자본주의가 될 수 없다는 주장 한 마디에조차 실사 하나 없는 옛 어구 하나에 근거해 왜곡하는데,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어떻게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그대들에게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전지윤은 여러 이유를 들어 강남위원회 사건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잘 몰라도 비판하는 사람의 특징이란다. 참으로 본질을 회피하는 교묘한 답이다. 내가 묻는 건 당규를 위반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 때문에’ 다함께 회원들은 각자의 지역이나 학교가 아닌 한 지역으로 백수십 명이나 한꺼번에 이전했냐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분명히 이는 사는 지역과 일하는 지역을 터전으로 삼고 사는 평범한 당원들의 경우와는 달리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원하는 지역위원회에 속할 수 있던 그 당시 그 법을 이용한 건 분명하지 않는가?

    그런 식으로 하면 그 어떤 주사파들의 파렴치한 행위도 다 인정해야 한다. 당규까지 완전히 어긴 경우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하면 ‘대단한 부정’은 아니겠지만 힘없는 학생들을 비민주적으로 동원해서 부정한 짓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쫓겨난 서초 강남 지구당의 일꾼들이 지금도 숫자로 밀어 붙인 폭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도 파렴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잘 몰라도 비판할 수 있는 사안이던가?

    마지막으로 전지윤에게 충고한다. 분명 그대는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 비교도 안 되는 비유까지 하면서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개량이네 우경화네를 남발했다. 심지어 국회의원 자리에 환장한 사람들인 양 몰아 세웠다.

    엄청난 거짓말에 짜증이 날 뿐

    사회주의를 과학이 아니라 도덕이나 정신, 어구로 판단하는 다함께와 마찬가지로 구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 그 자체 때문에 절망하고 방황하는 그럴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떠났다.

    구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의 진정한 이유를 안다면, 사회주의 혁명의 도식적 변혁을 포기한 사람들보다 운동권적 도덕률에서 나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며 그러한 입장에서 상대방을 출세주의에 뭐네 글을 쉽게 써서는 안 된다.

    솔직해지자. 지금의 국면뿐 아니라 언제나 그들을 우경과 개량으로 몰아 왔지 않은가? 단지 지금은 혁명의 시기가 아니라서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할 뿐이지 않는가?

    나는 흥분한 적도 없고, 근거 없는 감정적 비난은 더더욱 한 적 없다. 그저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계속 듣는 것이 짜증이 날 뿐이고 그대가 처량할 뿐이다.

    난 신당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다함께를 비판한 게 아니다. 가끔씩 버무려 넣은 신당에 대한 비판은 그 자체로 재반박을 해 줄 수 있지만, 어쨌든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니 그 열정 신당 게시판이든 이메일이든 그 쪽으로 보내길 바란다.

    몸이 해외에 있는 이상, 한국 좌파들의 논의에 내가 감히 참여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외에는 없다. 내 전공이나 관심사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만 그나마 참여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러시아로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국가사회주의 사회의 대전환과 러시아 혁명기의 진실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국가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그 이행의 여러 측면들을 각국의 사례로 비교 연구하고 있는 나로서는 거짓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글을 써 왔다.

    다함께의 거짓 참주선동에 학자적 양심으로 반박할 것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되는 한 다함께의 거짓 참주 선동에 대해서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반박할 것이니 그대들의 경전이 아닌 객관적 자료로 논쟁에 참여해 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한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사회주의라고 부르지 않아도 상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체제가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본주의와는 단 한 군데도 닮은 곳이 없으니, 자본주의라고 부르지는 말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지구상의 그 어느 국가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통제만으로 국가와 경제를 이끌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다른 어떤 도구의 힘 – 계획, 시장, 집행자, 경영자든 뭐든 – 없이 생산자들의 민주적 토론만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이상이 왜 이미 레닌 때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동네 반상회에서도 못하는 일을 소련이라는 유라시아 대륙의 반을 차지하는 국가에서 그 원칙 실현이 가능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 원칙만으로 자본주의라는 비과학적인 정의를 쉽게 할 수 있는지 정말 깊은 고민이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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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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