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 지도부 창준위, 조속한 구성을
        2008년 02월 10일 08: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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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참세상
     

    이제 낡은 것을 정리하는 국면은 끝났다. 이미 설 연휴 전부터 새로운 것을 만드는 국면이 열렸다. 진보정당운동의 한 시대가 이렇게 끝났고, 우리 앞에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따라서 낡은 것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둘러싼 논란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처럼만 느껴진다. 지난 몇 주 동안 진보정당의 ‘제2창당’을 놓고 의견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거센 파도는 이런 의견 차이를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지금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이러저러한 흐름들이 있을 뿐이다.

    언론은 민주노동당 탈당 당원들의 여러 흐름(노회찬 의원,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전진 등등)을 마치 서로 경쟁하는 정파들처럼 그리고 있다.

    각각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서로간의 합종연횡을 점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소설에 가깝다. 열린우리당 같은 보수정당의 계파 경쟁을 보도하던 게 버릇이 된 탓이다.

    창당 과정은 당원 권력을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은 지도자는 있으되 지도부는 없는 형국이다. 지도부는 다름 아니라 당원이 세우는 것이다. 지금 그 ‘당원’이란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온(그 시점이 언제이든) 탈당 당원들이다. 그리고 과거 민주노동당 당적과는 인연이 없었더라도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에 함께 하고자 하는 ‘예비’ 당원들이 또한 그들이다.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 언론은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이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점을 철저히 되새기며 창당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의 전국적 구심 역할을 할 임시 지도부는 필요하다. 진보신당 창당 준비위원회(필요할 경우, 창준위 구성 전에 주비위원회 단계를 거칠 수도 있다)를 하루빨리 구성해서 상징적 구심과 실무 총괄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창준위는 어디까지나 ‘임시’ 지도부다. 아직 당원들의 밑으로부터의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준위를 관통하는 최대 덕목은 ‘겸손’이어야만 한다. 누구에게 겸손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탈당 당원들과 예비 당원들에게 겸손해야만 한다.

    이러한 겸손은 우선 탈당 국회의원들과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그리고 각 의견그룹이 창준위로 단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언론의 기대와는 달리 ‘흥미진진한’ 협상이나 거래는 필요 없다. 이제까지 분립되었던 상층의 흐름들은 창준위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융합해야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상층의 협상이 아니라 기층의 역동성이다. 당장 설 연휴가 끝나면 각 지역별로 탈당 당원들의 대회를 열어야 한다. 광역시도를 기본 단위로 하되 서울처럼 광역별 개최가 힘든 경우에는 몇 개 권역을 나눠서 대회를 여는 것이다.

    대회에서 할 일은 첫째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여러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광역별 창당 과정의 수임자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즉, 광역시도당 창당 준비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중앙 조직은 이들 광역별 대표들의 총회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밑으로부터의 창당의 최소 요건이다.

    한편 지역에서 당원 대회를 개최하고 광역 창준위를 세우는 와중에 중앙당 창준위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한국사회당, 초록당 등의 진보 정치 세력들과 함께 할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진보대연합의 기반 아래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선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법적 창당’과 ‘내용적 창당’을 구분해서 바라보자

    사실 창당 과정에서 우리의 난제는 몇몇 흐름들 사이의 경쟁 따위가 아니다. 진짜 곤란한 문제는, 18대 총선에 대응하기 위한 창당 일정과,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내용을 갖추기 위한 창당 과정 사이의 불일치다.

    18대 총선에 새로운 당으로 참여하자면 두 달도 채 안 되는 남은 시간 동안 전광석화처럼 새 당을 건설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우리에게 총선 참여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이제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이 총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18대 국회에서 진보의 공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총선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것은 대선 이후 ‘제2창당’의 염원으로 모였던 새로운 진보정당 활동의 밑그림들이다. 필자도 <레디앙> 지면을 통해 그 밑그림의 일부를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심상정 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결코 ‘도로 민주노동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보 이념에 대한 태도와 정치 노선에서부터 조직 체계와 활동 방식에 이르기까지 민주노동당 8년 활동에 대한 철저한 반성 아래 근본적 혁신을 감행해야 한다. 그러자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당원들의 지혜를 모아 당의 기초를 놓아야 한다.

    여기에서 긴장이 생긴다. 총선에 참여하자면 가장 신속한 창당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새로운 진보정당의 내용을 갖추자면 꽤 장기적인 창당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이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자칫하다가는 어느 한 쪽을 더 중요시하는 당원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제안은 창당의 두 층위를 서로 구별해서 추진하자는 것이다. 즉, 총선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창당’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제대로 건설하는 ‘내용적 창당’을 서로 구분하자는 것이다.

    ‘법적 창당’은 가장 효과적인 총선 대응을 위해 신속하고 간결하게 추진해나가자. 창당 대회는 대의원 대회가 아니라 당원 총회 형식으로 치르자. 비례대표 후보도 온라인 투표가 아니라 창당 대회 현장의 총투표로 최종 결정하자.

    강령은 총선 이후에 새롭게 만들고 총선 전에는 일단 기본 정책(선관위에는 ‘강령’과 ‘기본 정책’, 둘 중 하나를 신고하게 되어 있다)을 채택하자. 기본 정책은 총선 공약의 기본 문서가 될 뿐 아니라 이후 강령 토론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당헌도 일단 큰 틀의 내용만 담고 여러 가지 혁신적 조치들은 총선 이후의 토론 과제로 넘기자.

    대신 ‘내용적 창당’은 총선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 과정은 총선 이후에도 계속됨을, 진보신당의 문은 법적 창당과 상관없이 열려 있음을 분명히 하자.

    총선 이후 최소 3개월의 사전 토론 기간을 전제로 제1차 정기 당대회를 개최하자. 사실상 이 당대회가 실질적 창당 대회가 될 것이다. 이 때 광범한 당원 토론을 거쳐 강령을 채택하고 당헌도 새로 가다듬는 것이다. 강령, 당헌 토론 과정은 그 자체로, 아래로부터의 토론이 지배하는 당 생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총선 전에는 중앙당을 총선 선대본 형태로 꾸리는 게 현실적이다. 보다 영구적인 중앙당 조직 체계는 총선 이후에 사업 방향과 재정 규모를 고려해 새로 짜자. 지역조직도 광역시도당만을 설치하고, 풀뿌리 기초조직 형태는 총선 이후에 그 틀을 잡자.

    이것은 결코 총선 대응을 위해 진보정당운동의 근본 혁신이라는 과제를 뒤로 미뤄두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이상 선거 대응에만 매몰되지 않는 창당 과정을 밟아나가기 위한 한 방책이다. 내실 있는 창당이 되기 위해 창당 과정을 18대 총선 대응의 폭풍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접근법을 취한다면, 2008년 거의 한 해 내내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 ‘운동’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적 창당 과정은 이명박 정권 초기에 마땅히 추진되어야 할 진보운동의 재구성 과정의 촉매이자 중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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