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파, 당을 취미클럽으로 만들다
    2008년 02월 09일 08: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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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실험하던 날,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중이었다. 북한의 핵실험 소식은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한 휴게소의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북한의 핵실험 소식은 남미 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좌파적 경향이 지배하는 남미라지만 북한의 핵실험에 박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한의 핵실험 소식에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곧 한 아르헨티나 사람이 내게 물었다. “북한이 왜 핵이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북핵실험 직후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는 이사국들.
 

북한이 핵 실험하던 날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사실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열린우리당에서는 “통일이 되면 핵은 우리 것(남한의 것)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일삼았고 민주노동당 일부에서는 “자위적 핵보유는 가능”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미국이 1만 개 이상의 핵무기를 갖고 있으니 북한의 몇 개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전세계와 대다수의 남한대중들이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던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는 북한의 입장을 ‘영웅적으로’ 감싸주는 ‘의리’를 발휘했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실질적 분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던 날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남한 국민들의 정서와 평등파의 반발 때문에 그나마 유감이라도 표명했다. 이 때문에 자주파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고 항상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 정국에서 보여줬던 자주파의 태도는 남한의 변혁운동 과정에서 축적돼왔던 성과나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1986년 이재호와 김세진 열사가 분신하면서 피로써 각인했던 “반전반핵”이라는 공동의 유산까지도 아주 허무하게 파괴해버렸다.

그 뒤, 자주파들의 분노는 2월 3일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마치 평등파와 대중들로부터 강제당한 침묵에 대해 보복이라도 하듯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하는 평등파에 맞서 ‘머리수’로 밀어붙이는 반이성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비대위가 제출한 혁신안의 처리를 놓고 시작됐다.

비대위안은 당의 봉합을 위한 정치적인 타협안으로서 자주파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목적으로 작성된 안이었다. 즉, 가장 낮은 수준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주파는 비대위의 혁신안을 무시해버리고 자주파 내부의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비대위가 발의한 두 당원들에 대한 제명건이 통과됐더라면 내부적으로 규율이 확립되고 당 바깥의 대중들에게는 민주노동당이 종북주의적인 경향을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해당 행위 책임 반드시 물어야

알았든 몰랐든 간에 당직자라는 사람들이 북한과 관련된 사람(장민호)을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제공해 국보법위반으로 구속당하면서 민노당이 ‘간첩당’이나 ‘빨갱이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썼고 이로 인해, 물론 다른 많은 이유들도 있지만, 대선에서 처참한 패배를 경험했다면 당내부에서는 당연히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물어야 한다.

더구나 이들은 일반 당원들이 아니라 운동을 오랫동안 했던 영향력있는 당직자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제명은 북한과 내통한 사람을 정기적으로 만남으로써 빚어진 결과에 대한 당 내부의 제재로서 국보법문제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다.

당원들의 잘못이나 실수로 당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처벌하지 않는다면 그 당은 정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의 오합지졸의 당이며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적 정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는 지난 2월 3일의 당대회에서 비대위의 혁신안을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당 규율을 부정했고 당의 수준을 취미클럽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렸다.

자주파는 국가보안법의 부당성과 구속된 두 당직자들의 무죄 주장을 들어 비대위안을 거부했다. 김승교 변호사가 밝혔듯이 비대위의 두 당원들에 대한 제명건을 반대한 논리는 국가보안법에 있다. “국가보안법이 없었으면 수사도 처벌도 없었을 사건이다. 국가보안법이 없었으면 … 모든 당원들이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에 근거해서 국가보안법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판결문을 그대로 믿고 신봉하라는 말인가…”

어쨌든 국보법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감한다. 국가보안법이 잘못됐으니 두 당직자들은 무죄라는 논리며 당에서 제명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논리다. 그의 논리를 모두 수긍하더라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합법 정당

민주노동당이 합법정당이라는 사실이다. 국보법이 부당하다지만 이 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이 조직됐고, 부당하지만 국보법의 제약을 수용하면서 만든 합법정당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주파 활동가들도 민주노동당이 국가보안법을 준수해야 하는 합법정당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을 것이다.

만약에 민주노동당 전체가 국보법이 부당하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고 위반한다면 국가라는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당이 해산당할 것이다. 그러니 부당한 국보법이 존재하는 상황 하에서는, 변호사의 논리대로라면, 합법정당운동은 아예 시도조차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부당한 국보법을 수용할 수 없다면 부당한 국보법을 수용한 ‘개량적인 합법정당’에는 입당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국보법으로 구속된 두 당직자들도 민주노동당이 합법정당이고 국보법을 위반하는 활동을 하면 당국의 제재를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공개적인 활동과는 별도로 비공개적인 활동을 했던 것이고 이것 때문에 문제가 돼 국정원의 수사망에 걸려든 것이다. 비대위가 두 당직자들을 제명하려 했던 이유는 바로 이들의 해당행위 때문이었다.

합법정당의 활동가가 국보법을 위반한 활동이 문제가 돼 당국의 구속돼 수사를 받고 구금됐다면 사안의 정도와 당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당활동가를 징계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무리 대의가 정당하다는 진보정당이라고 해도 대중들의 지지도는 결정적이다.

선거를 위한 합법정당이 대중들의 표를 획득하지 못하게 되면 합법공간에서는 사멸할 수 밖에 없다. 두 당직자들이 국보법위반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당한 민주노동당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지율이 급락해 바닥을 헤맸고 급기야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쳐 3%라는 불명예스러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다수파 유연성 발휘했어야

지지도의 폭락으로 당이 셔터를 내릴 상황까지 왔다면 이들의 행위는 당연히 해당행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구속을 계기로 대규모의 자발적인 대중들의 저항이 일어나면서 당의 지지율 또한 가파르게 상승했다면 당이 이들을 제명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들도 재판에서 곧 바로 석방됐을 것이 뻔하다. 이 상황에서는 해당행위가 아니라 당을 이롭게 한 행위로 상이 주어졌을 것이다. 이들의 국보법위반 사건으로 인해 대중들이 외면해버림으로써 정당의 존립까지 위협받았다면 이는 해당행위가 된다.

국보법의 부당성이라는 주장에는 동감하지만 두 당직자들의 제명이라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물론 차가운 감방에서 고생하는 두 사람을 제명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혹한 모양새로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들의 해당행위가 고생스러운 수감생활로 인해 상쇄되지는 않는다. 비록 당에서는 제명됐을지라도 개인적인 지원은 계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보법의 폐지문제나 이를 위한 투쟁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당직자들을 제명했지만 여전히 국보법을 폐지하기 위한 활동도 계속될 수 있다.

자주파가 혁신안을 거부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에 밀리면 다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심리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고, 이 같은 위기심리가 자주파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것 같다. 다수파로서 당을 보전할 의지가 있었다면 유연성을 갖고 비대위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어쨌든 제명이 거론됐던 두 당직자들은 그대로 당에 남게 됐지만 이들의 제명을 통해 종북당의 이미지를 씻고 새출발하기를 원했던 많은 수의 당원들은 탈당의 대열로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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