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지분으로 당을 접수한 사람들
    2008년 02월 09일 03: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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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탈당계를 쓰고 있습니다. 떠나면서 미련을 남기는 것은 그 자체로 미련한 행동이지만, 제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10년을 바쳤던 당 운동을 고작 ‘탈당하겠다’는 행정서류 하나로 마감하기에는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서 너무나 뒤늦은 반성문을 써봅니다.

내 인생의 찬란했던 10년

당원번호 136번. 제 인생을 구성했던 수많은 숫자들 – 주민번호, 학번, 군번 등 – 중에서 유일하게 자랑스러웠던 숫자가 당원번호였습니다. 당원번호의 이르고 늦음이 당에 대한 애정을 입증하는 척도는 물론 아닙니다. 더군다나 떠나는 입장에서는 더 그렇겠지요.

저에게 당은 1997년 여름, 졸업반 몇 명과 복학생들이 모여 대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학교에서는 갈 곳 없는 무소속들이었지만 우리는 그날 대선후보 권영길의 선거운동본부에 불과했던 ‘국민승리21’ 가입원서를 쓰면서 마음속으로 당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졸업시험을 보면서 동대문구 선본의 유세팀으로 뛰었습니다.

현역군인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육군이 지급한 월급을 모아 당비를 냈습니다. 휴가를 나와서 지구당 사무실에서 피켓을 만들었습니다.

즐겁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자신의 당을 사랑했던 시인 네루다만큼은 아닐지라도 당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웠던 당원번호를 반납하면서, 몇가지 오류에 대해 반성합니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모습.
 

당원번호 136번을 반납합니다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 안에서 종북주의와 관련한 논쟁이 시작됐을 때, 당 바깥에서는 ‘순진하긴, 주사파가 원래 그런 줄 몰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보통 엔엘(NL)이라고 불리는 입장의 사람들과 동거를 넘어 연대와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그런 생각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87년 이후 진보정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항상 두가지 벽에 부딪혀 좌절해야만 했습니다. 국가권력의 탄압이나 법제도의 불리함도 문제였지만 그 이전에 노동운동의 집단적인, 노골적인 거부와 운동진영 내 다수파의 외면과 방해였습니다.

운동권 안에서도 소수파의 힘만으로 추진하는 정당운동은 항상 반쪽자리로 끝났었습니다.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라는 대의는 항상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시기상조’, ‘분열책동’이라는 단어들 앞에서 좌절해야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가능했던 조건들 속에는 민주노총의 지지와 결합이라는 획기적인 사건도 있었지만, 진보정당을 여전히 시기상조라고 보는 내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국민승리21, 이어서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던 민족해방파(자주파) 활동가들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당초기에 결합해 고생했던 분들의 노력 그 자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주파에 대한 오판과 책임

비록 그 분들이 과거 비판적 지지론의 입장에서 진보정당의 의의를 부정했던 것에 대해 반성문을 쓰지는 않았지만, 당에 헌신하고 함께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동의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소한 그분들이 독자적인 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 자체가 ‘조선노동당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노동자정당이기 때문에 남한에 따로 정당을 만드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그분들의 오랜 믿음을 폐기한 증거라고 미루어 짐작했었습니다.

나아가 그분들이 비록 주체사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실정치에 몸담고 당 강령과 정책을 통해 대중을 만나다보면 ‘인민대중은 자주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소위 ‘혁명적 수령관’이라는 생각을 버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치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주체사상을 포기했는지 아닌지 자백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개인이 ‘사람중심의 실천’이라는 철학적 원리로서 주체사상을 유지하는 것은 지금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종북주의가 민주노동당의 탄생시기부터 문제가 됐던 것은 아닙니다. 작은 갈등이야 없지 않았겠지만 창당 초기 자주파와 평등파의 행복한 동거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평등파는 예상대로 자주파도 당 활동을 통해 변화하고 앞으로 더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때도 대화가 잘 안됐지만, 반신자유주의, 노동자투쟁, 민생정책에 대해 양자는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사회당을 비롯해 당 바깥에서 ‘반조선노동당’을 주장하며 당의 정체성을 문제 삼았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변호했던 것은 자주파 자신이 아니라 소위 평등파였습니다. 자주파 활동가들도 여전히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고수하는 당 바깥의 민족해방파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역할분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자주파와의 동거는 그들의 지분이 26%를 넘어서는 순간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각급 선거가 50% 투표율, 즉 과반을 간신히 넘기는 현실에서 26%의 지분은 100%를 장악하는 마법의 숫자였습니다. 중앙당부터 지역위원회까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장악의 법칙은 예외 없이 작동했습니다.

   
  ▲창당 8년만에 사실상 분당을 가속화시키는 결정을 내린 민주노동당 대의원들. 2월 3일 임시 당대회 모습.
 

100%로 변한 마법의 26%

여기서 그쳤다면 이는 단지 힘싸움에서 패배한 정파의 넋두리로 남았을 겁니다. 그러나 자주파가 장악한 당은 이들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북한과 관련한 문제는 항상 모든 활동의 우선 순위가 됐고 언제나 토론의 영역이 아니라 집행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들이 지도부를 장악한 후로는 민족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진보정당으로서의 독자성과 정체성마저 포기한 채 보수야당에 백지수표를 남발했습니다.

자주파가 현실을 접하면 당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분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북한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평양의 입으로 세계를 이해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진보정당이 튼튼하게 자리 잡지 못한 한국정치 현실에서 평등파 진보정당과 자주파 진보정당이 따로 간다면 모두 망할 뿐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우리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만든 당인데 넘겨주냐’는 근거 없는 착각도 동거를 연장하는 논리였습니다.

최기영, 이정훈이 연루된 소위 ‘일심회’사건은 그래서 충격이었습니다. 주체사상파와의 동거의 최소조건, 즉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독자성에 대한 인정’이 한 쪽의 일방적인 착각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조선사민당과 교류 협력할 때 당내에서는 왜 ‘조선노동당’이 아니라 위성정당을 만나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주파의 입장에서 보면 지점장이 지점장과 만나 회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지점장이 ‘본사’ 회장님과 만나는 것은 회의가 아니라 회견일 뿐입니다. 자주파에게 민주노동당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자주파와의 동거는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의미가 명백히 퇴색했는데도 동거를 지속한 것 역시 우리의 선택이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이별의 적당한 명분도 없었기 때문이지만 작은 성과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직선제’의 함정

자주파 패권주의를 굴려온 동력은 그들이 가진 사상과 욕망이었지만 그 길을 열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소위 평등파였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항상 진성당원에 기반한 정당으로 모든 선택이 당원의 손에 의해 결정됨을 자랑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낳고 있을 때조차도 그 정신자체는 잘 구현되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2003년 당원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모든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했습니다. 당시 직선제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장하고 도입했던 것이 평등파라 불리는 활동가들이었습니다. 당시 당내에는 ‘평당원의 권리’라는 무기를 앞세우고 요구하는 직선제에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가지면 ‘반민주’적인 당원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직선제를 광범위하게 도입하려던 분들의 진정성 자체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지배정파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대로 결과만 놓고 보면 직선제는 26%의 자주파가 100%를 가져가는 마법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연락 끊긴 대학동창부터 일가친척,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까지 입당시키면서 세를 늘리고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몰려다니는 패권주의의 ‘막장’을 연출하게 만든 배경이 됐습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토론을 제도화하지 않고 반대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채 당원들에게 투표권만 일방적으로 안겨준 직선제는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제도였습니다. 다수파의 독식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해주는 장치였을 뿐입니다.

직선이니까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와 무언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의 착각이 문제였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당원들에게 얼굴도 잘 모르는 후보자 20여명을 던져주고 서너명을 고르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과반투표라는 형식요건을 갖추기 위해 내용과 상관없이 무조건 참여를 읍소했습니다. 직선제는 다수결일 뿐입니다.

다수결이 한계가 있다는 것은 대학논술시험에도 나오는 시대입니다. 민주노동당의 민주주의는 한국사회 일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당이 대단히 민주적이고 실험적이라고 떠들었습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제도를 고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 제도를 통해 이미 이해관계가 형성된 후라면 제도를 손보는 것이 새로 만드는 것보다 몇 백배는 더 어렵다는 것을 민주노동당을 통해 배웠습니다. 또한 결과에만 집착한다면 민주주의는 명분일 뿐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민주주의가 실험이 되지 못하고 도구가 된 것은 다수파만의 책임은 아니었습니다.

4년 동안 밀린 숙제까지

이제 저에게 민주노동당은 ‘과거’가 됐습니다. 반성은 하되 그것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이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절대절명의 과제는 철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4년간 정지됐던 시간의 몫까지 얹어져 있어 더욱 무겁습니다.

그러나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혁신문제를 놓고 벌어진 논쟁과 지난 3일 임시당대회 이후의 흐름을 보면서 혹시 우리가 ‘주사파 없는 민주노동당’이면 무조건 옳다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듭니다.

새로 만들어진 신당은 민주노동당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뛰어넘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우선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를 노동계급이라고 착각했던 오류와 대중의 감수성도 따라잡지 못하면서 대중을 계몽하겠다던 오만을 버려야 합니다.

또 △원내 진출에 취해 선거가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과오 △강령에 기반한 정책을 대중조직의 표 때문에 포기하려했던 뻔뻔함 △당원만 늘리면 대중정당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실력을 키울 고민 대신 2012년 집권을 이야기했던 무지 등 이런 오류들은 종북주의, 패권주의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잘못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심.노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자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당운동이 민주노동당의 재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심상정, 노회찬 두 의원을 중심으로 재결집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두 분은 분명 훌륭한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알려진 지도자를 내세워서 당을 꾸리는 것이 그나마 쉽고 편한 길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두 분이 진보정치를 통해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망가를 중심에 놓고 당을 판단하려 했던 것도 민주노동당의 오류 중 하나였습니다.

심상정, 노회찬 두 의원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맙시다. 본질적으로 분명 다르지만 논리적으로는 북한의 눈으로 세계를 보려했던 종북주의자들의 오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당은 참여하는 당원 각자의 눈과 입을 통해 건설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당의 내용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있어야 대중들에게 설명하기 쉽다’는 식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2호기를 만들자는 주장일 뿐입니다.

이런 조급함에는 목전에 다가온 총선에 대한 걱정이 배어 있습니다. 정당을 만들자면서 총선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민의 기준과 시간표를 총선에 맞추는 순간 신당은 실패합니다. 총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진보의 꿈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시끄럽게 그러나 함께 전진하는 당을 만들자는 약속이 뒤로 밀리면서 신당은 실패합니다.

신당은 모든 종류의 실험이 가능한 당이어야 합니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득세하면서부터 민주노동당은 어떠한 실험도 불가능한 당이 됐습니다. 당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경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어야 합니다.

당의 민주주의는 한국사회에서 검증된 수준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합니다. 당은 단순한 정치부대가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방식들이 제안되고 공유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은 실험이 신당의 목표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대안을 한국사회에 제출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당운동이 제기한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구호는 적절한 것입니다. 진보운동을 뒤돌아볼 때, 녹색이 없는 적색은 위험했고, 적색이 없는 녹색은 공허했습니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 모두 서두르데 조급해하지 말고, 토론 없이 결정하지 않으면서 봄의 생명력으로 무장한 신당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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