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북주의 해체없이 진보미래 없다
    주체파 얘긴 그만, 허공과 싸우는 꼴
        2008년 01월 23일 02: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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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적 성찰, 변화, 십 년의 전망, 풀뿌리 운동, 적녹청 동맹, 대안 정치. 21세기 진보정당운동의 재구성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이같은 키워드가 강조됐다.  22일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주최하고 사회당 등 5개 단체가 참여한 ‘21세기 진보정당운동의 재구성’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단어들이 거듭 강조되며 반복됐다.

       
     ▲사진=김은성 기자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와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의 발제로 시작한 이날 토론회는 구갑우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금민 한국사회당 전 대표, 주요섭 초록정당을 만드는 사람들 집행위원, 오유석 여세연 대표,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이 참석해 4시간 가량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향후 진보 정당운동의 전략과 실천 과제를 놓고 다양한 측면의 고민이 제기됐으며, 70여명의 청중이 참여해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종북-패권주의 해체없이 당과 ‘진보’의 미래 없어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는 발제를 통해 종북, 패권주의 해체없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의 미래는 없다면서 새로운 10년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진보 신당 창당을 주장했다.

    조 교수는 "2004년 총선 이후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 역사적 궤적은 민주노동당이 유권자와 지지자들의 요구와 문제 제기에 응답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과정과 한 짝을 이루면서 진행되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자주파 전체가 종북주의 노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족지상주의, 통일지상주의, 반미자주화 일색으로 무장한 종북파가 자주파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비종북 자주파의 자유 선언이 없고, 민주노동당을 숙주로 해 종북파가 자신들의 숙원사업을 하나씩 전개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1년에 마련된 59쪽 분량의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이른바 9월테제라는 문건에 드러나있듯, 이른바 ‘일심회 사건’, ‘코리아연방공화국’, ‘미군철수 후 북핵폐기’ 파문은 필연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성찰과 혁신을 통한 새롭게 거듭나기는 평등파에게도 요구된다. 그동안 의도와는 상관없이 적대적 공존의 구도 속에서 절충을 통해 문제를 봉합하면서 공생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책임에도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어야 한다. 차원이 다른, 드러난 실체와 드러나지 않은 정체불명의 권력에 대한 구분도 필요하다. 당내 책임을 지지 않는 비가시적인 권력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섣부른 예단일지 모르지만, 종북, 패권주의에 대해 비대위가 준엄한 판정을 내리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과 진보 가치의 재구성과 관련한 혁신안이 임시당대회에서 수용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면서 "노동과 녹색, 평화와 인권, 여성과 소수자 등 다양한 진보의 가치를 수평적·개방적으로 접속하고 실질적으로 연대하는 진보 신당을 만들어나가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수구 진보’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붕괴를 인정하고 풀뿌리 공동체 운동에 기반한 적녹청 동맹을 제안했다.

    박 대표는 "회계장부조작, 위장전입, 파벌담합 등 민주노동당의 정치행태는 당 이름과 강령만 다를 뿐 다른 정당이 보여준 행태와 차이가 없었다“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거대한 소수 정당, 희망 정당이 아니라 수구 진보의 정당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노동운동이 공동체 성격을 잃어버리고 급기야 노동조합조차 장사꾼 조합으로 변질돼 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한국 노동운동은 다시 공동체운동이라는 시각을 회복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고 시민사회운동 또한 공동체 형성의 운동이란 점에서는 미흡하다"면서 "새로운 정당은 이런 풀뿌리 공동체 운동을 실제 지원하고 조직하는 과정을 통해 확고한 정당의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노동운동이 단순한 임금노동자로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운동,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주장하는 운동에서 나아가 이제 자신의 노동이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성찰하는 운동으로 전환돼 그러한 성찰이 전제될 때 초록가치와 시민사회운동과 함께 하는 적녹청 동맹의 새로운 정당정치 운동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운동, 생태주의, 시민사회운동이 공동체 형성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운동을 위해 더불어 가야 하는 숲 속의 적녹청 나무들"이라고 강조했다.

    전형적 운동권 과거를 보는 기분

    두 사람의 발제가 끝나자 진보정당운동의 재구성에 대해 참석자들의 고민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4월 총선은 비켜가야 한다”, “진보정당운동의 아류가 아니겠는가?”,“심상정 비대위가 잘 될 것 같은데, 신당은 어찌 되나?”는 등의 얘기들이 나왔다. 

    구갑우 교수는 "인구의 1%가 생각을 공유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예상 외로 오늘 모임이 1%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운을 뗐으나, 조현연 교수의 발제에 대해서는 "단어가 여전히 낡았고 전형적인 운동권의 과거를 보는 기분"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변화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진보운동 진영의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했다.

    구 교수는 "젊은이들 및 대중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과연 진보가 어느 정도를 보여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엄숙하게 최대한의 강령만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진보도 이젠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백 가지 최소한의 생활 윤리에 대해 사람들에게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예컨대, 최근 태안 사태에 대해 우리의 윤리는 적극적으로 대오를 조직해 자원봉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을 지금 대중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지 답이 잘 안 나오고, 또 최근 대중이 열중하는 펀드 투자 열풍에 대해서도 무조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는 다수자 담론 만드는 것

    구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평가에 대해 "종북주의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햇빛 정책의 성공으로 주체사상적 대북관은 이미 시대정신을 다해 그것과 싸우는 것 자체가 허공과 싸우고 있는 것"이라며 "왜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후보가 못 됐는지, 창조한국당이 왜 민주노동당보다 많이 득표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왜 계급 투표가 진행되지 않았는지 그 과정을 실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 교수는 "90년대를 관통하는 진보의 화두는 차이를 인정하고 같음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이제는 더 이상 단일한 대오가 만들어질 수 없다"면서 "운동과 정치는 다르다. 국가권력을 잡고자 한다면 정당을 통해 진보적 가치를 가진 클러스터의 네트워크 역할 등으로 다수자의 담론을 생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또 "지금까지 진보의 특징을 보면, 형식보다는 내용을 현상보다는 본질에 방점을 찍을 텐데, 오히려 무엇을 할것인가는 쉽다. 하지만 의미 있는 소수 집단이 아닌,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감정의 퍼포먼스를 연출할 수 있는지 등의 과정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또 이제는 누구까지 함께 할 건지, 왼쪽 누구, 오른쪽 누구 등 실명까지 거론해가며 애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민 사회당 전 대표는 양적 발전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쟁적 화두를 던지며, 정파 연합이 아닌 프로그램 연대에 입각한 대안정당을 주장했다.

    금민 전 대표는 "저는 성장론자이다. 양적 발전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21세기 좌파라면 어떤 성장 방식이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서 "대안신당은 종북파가 없고 민주노총 의존성도 탈피해야 한다. 또 복지생태평화동맹에 근거해 이명박 시대를 극복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연대에 입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비대위가 잘 될 것 같은데"

    주요섭 초록정당을 만드는 사람들 집행위원은 심상정 비대위가 잘 될 것 같다면서 신당파의 험난한 미래에 우려를 표했다.

    주 위원은 "국민들 시선에는 민주노동당에 참신한 여성 정치인이 등장하고, 또 무언가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당 지지기반 안팎에서는 그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진보 대안 신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유시민부터 손학규까지 모두 진보를 말하는데, 현실적으로 신당이 말하는 진보가 아류 다툼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주 위원은 "정치의 문화와 관습을 뛰어넘어 대안 정당으로서 질적 변화 및 새로운 차원의 변화를 위한 운동과 정치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수사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회운동, 시민운동,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대안 공동체운동 등이 만나 새로운 사회와 비전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전환의 전망 속에서 신당 창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유석 여세연 대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새로운 출발을 촉구했다. 오 대표는 "새 술을 헌 부대에 담는 것은 부대와 술 두 가지를 다 망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 술을 잘 빚어 남들이 맛을 보고 새 술이라는 것을 모두 체험적으로 알게 해야 하며, 신당이 진보정당 및 진보 운동의 대물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상정 비대위가 정말 잘 성공하기를 빌자. 민주노동당이 역사 속에서 과거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러한 자리가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대표는 "여성의 가치가 생태, 평화, 복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끼워맞추기식 구색이 아니라 여성을 대등한 연대의 주체로 생각하고 함께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새롭게 갈 수 있다"면서 "여성들도 이번 여성가족부 폐지 건 등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아 실질적으로 여성을 대변해줄 정치적 대표성을 갈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그릇 안에서는 안 돼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언어, 새로운 방식 등을 촉구하며 낡은 진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처장은 "모두가 새로운 진보를 말한다. 그러나 오늘 나와 보니 토론 의제, 얘기하는 방식과 언어, 그것을 주장하는 주체나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우려된다"면서 "민주노동당은 이래서 안 돼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얘기들을 갖고 같이 모아나가자"고 말했다.

    오 처장은 "있는 사람들을 다시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강호의 숨은 고수들을 찾아보려는 노력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풀뿌리 방식이나 시민과 밀착하는 시민운동 등을 통해 대안적 삶을 재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운동권 사투리가 아닌 새로운 언어로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신당의 내부 운영도 초록 정치가 하는 뽑기 등의 파격적인 방식으로 운영해 보자. 신당이 만들어 진다고 해도 새로운 정파가 만들어질 텐데, 그에 따른 문제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위의 토론 발제와 관련해 청중들은 "다양한 세력과 함께 한다면서 자주파를 배제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심상정 비대위가 제시한 진보의 재구성이 신당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금민 전 대표의 프로그램 연대는 또 다른 정파연합이 아닌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종북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조현연 교수는 "종북주의 및 민족지상주의는 진보라는 개념적 틀 속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으며, 심 비대위와의 차이점에 대해 "심상정 대표가 아무리 진정성이 있어도 민주노동당이라는 그릇 속에서는 실현이 가능하지 않으며, 이미 대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라는 틀에 대한 가치와 비전에 대한 심판은 끝났다. 다른 틀의 대안정당이 나와야 한다"고 답했다.

    금민 대표는 "민주노동당 식의 정파 연합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연대하는 전락적 대안 정당이다”면서 "그 어디에도 모범 답안은 없다. 대안 정당으로서 풀뿌리 조직을 기본적 좌표로 삼아 신당을 통해 실질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을 만나 새로운 기획이 제출되고 모델이 수립되는 등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조승수 전 진보정치연구소장은 "모든 범진보진영이 새로운 이명박 시대의 변화에 맞춰 지금 되돌아보지 않으면 한국의 진보운동과 정당운동은 왜소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오늘 토론회가 평론가의 자세가 아니라 정말 국가 권력에의 의지를 갖고 새롭게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같이 고민을 나누는 출발이 되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은 오는 26일 용산에서 이같은 문제의식으로 두 번째 토론회를 열고 연이어 공식기구를 출범시킨다. 또 오는 31일에는 초록정당, 한국사회당,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공동 주최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신당 추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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